피아니스트史에 길이 남을 희대의 기인이자 20세기 10대 피아니스트 중 한 명으로 선정되기도 했던 캐나다 출신의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에 대한 영화입니다.
각종 영화제에서 7개의 수상과 3개의 노미네이트를 기록하고 있는 이 영화는 일반적 전기영화의 형식을 가볍게 무시하고 있습니다.
제목에서 이미 알 수 있듯이 이 영화의 감독인 Francois Girard는 어줍잖은 일대기를 지루하게 늘어놓기보다는, 글렌 굴드라는 사람을 잘 나타내주는 32가지 장면을 모아 글렌 굴드의 음악을 배경으로 깐 단편영화식으로 제작해서 한데 묶어놓았습니다. 그 32가지 조각들을 연결해서 글렌 굴드라는 커다란 그림을 만들어내는 것은 전적으로 관객에게 달려있는 셈이지요.
영화가 32가지 단편으로 이루어진 것은, 글렌 굴드가 살아생전 가장 애착을 가졌던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32피스이기 때문입니다(30개의 바리에이션&2곡 추가).
이해하기 쉬운 영화는 아닙니다. 32개 단편 중 어떤 것은 글렌 굴드의 피아노음악을 배경으로, 의자 위에 앉아 하염없이 카메라를 바라보는 글렌 굴드(역의 배우)를 천천히 줌인해 들어가는 것만으로 끝이 나는 것도 있습니다.
특히 녹음실에서 막 녹음한 곡이 리플레이되는 가운데, 녹음실 안에서는 글렌 굴드가 무아지경에 빠져 지휘하듯 춤을 추고 있고 녹음실 밖에서는 녹음기사들이 간식을 먹으며 담소를 나누는 장면은, 글렌 굴드라는 음악에 미친 이의 탈현실적 세계를 단편적으로나마 보여주고 있습니다.
연주에 몰입한 글렌 굴드의 모습은 괴팍하기로 유명합니다.
http://blog.naver.com/ssun8206/130005720799
한글사이트는 이게 젤 괜찮은 것 같네요. 일단 한 번 보시고.
윗 블로그에서 언급된 문제의 "의자"는 글렌 굴드의 아버지가 어릴 적 만들어주신 의자라고 합니다. 굴드는 언제나 그 의자를 끼고 다녔지요.
문제의 음반을 들었을 때 저는 진짜 제가 무슨 귀신에라도 홀린 줄 알고 가슴이 철렁했었습니다. 모든 노이즈를 배제해야 할 클래식 스튜디오 레코딩 음반에 이게 웬 알 수 없는 남자의 희미한 음성이랍니까. 나중에서야 그게 윗 블로그에 언급된, 연주 중 무아지경에 빠졌을 때의 굴드의 이상한 버릇들 중 하나였음을 알게 되었지요.
똑같은 인간인데도 어떤 사람들은 저렇게 마음에 커다란 세상을 담고 태어난다는 것이 나는 항상 신기합니다. 아니면 정말 그들은 단지 인간의 몸만 빌고 있을 뿐 사실은 인간 이상의 존재인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