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 시대의 철기는 鍛造鐵으로 농기구가 많지만, 아직 농민에게 본격적으로 보급된 것은 아니라고 여겨지고 있다. 무기류에 대해서는 아직 청동이 주류, 철제 무기는 矛나 도끼가 대부분, 철검은 중국 수입품이 다수라고 하는 것 같다. 철검제조에는 더 높은 기술력이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의 야요이 시대와 유사한 상황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 이후 B.C.2세기경부터 송화강과 桓仁 지역을 중심으로 夫餘式의 銅炳鐵劍이 등장하기 한다. pommel 부분은 連鈴柄式가 주류, 일부 觸角式이 있지만, 주목해야 할 부분은 pommel이 아니라 劍身이다.
얇고 긴 1m 이상의 강철 장검의 출현은 기술이 고도화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衛氏조선 멸망 이후, 漢의 炒鋼法과 環首刀가 고구려에 도입된다. 초기에는 環首刀는 量産型, 銅炳鐵劍은 고급형으로 나타난다.
A.D.2세기 이후부터는 銅炳鐵劍이 사라지고 量産型과 고급형 모두가 環首刀로 대체된다.
고구려 시대의 후반기가 되면 탄소 비율 0.51%로 중국 이상으로 균일한 강철이 量産되고, 연료로 석탄도 활용되기 시작한다.
古朝鮮時代の鉄器は 鍛造鉄で農機具が多いが, まだ農民に本格的に普及されたのではないと思われている. 武器類に対してはまだ青銅が主類, 鉄製武器は 矛や斧が大部分, 鉄剣は中国輸入品が多数と言うようだ. 鉄剣製造にはもっと高い技術力が必要だからだでしょう.
日本の彌生時代と類似の状況だったと言える.
その後 B.C.2世紀頃から宋花崗と 桓仁 地域を中心に 夫余式の 銅炳鉄剣が登場するする. pommel 部分は 連鈴柄式が主類,一部 触角式があるが, 注目しなければならない部分は pommelではなく 剣身だ.
薄くて長い 1m 以上の鋼鉄長剣の出現は技術が高度化になったということを意味する.
衛氏朝鮮滅亡以後, 漢の炒鋼法と環首刀が高句麗に導入する. 初期には 環首刀は 量産型, 銅炳鉄剣は高級型で現われる.
A.D.2世紀以後からは 銅炳鉄剣が消えて 量産型と高級型皆が 環首刀で取り替えられる.
高句麗時代の後半期になれば炭素の割合 0.51%で中国以上に均一な鋼鉄が 量産になって, 燃料で石炭も活用され始め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