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

일본의 구이
구이(도자기).그것은,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의 대표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세계에는 특징이 있는 여러가지 도자기가 존재합니다.그 도자기를 보는 것에 의해서, 사람은 과거에 생각을 달릴 수가 있습니다.
동시에, 도자기를 보는 것으로, 그 시대의 문화가 어느 정도 성숙했는가?어떠한 문화를 가지고 있었는지를 아는 단서가 됩니다.
그럼, 일본의 도자기를 소개해 가려고 합니다.

채색화 모란문 덮개있는 그릇
 


도자기란?
「도자기」라고 하는 말의 정의는,
「도기와 자기.넓은 의미에서는 점토를 가공해 성형·고온에서 군 제품」
입니다.
크게 나누면 토기·도기·자기로 대별됩니다.
일반적으로 「도자기」라고 하면, 유약이 베풀어진 「도기」나 「자기」를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토기
일본에서 발굴되는 토기는 세계 최고의 물건이라고 말해지고 있습니다.
 
승문식토기
승문식토기는 대략 12000년전에 만들어졌습니다.
당시는, 도자기를 고온에서 굽는 「가마」가 존재하지 않고, 야외에 겹쳐 쌓은 성형품의 주변에 신목을 축적불을 붙여 저화도에 고온에서 군 것이었습니다.
이 단계에서, 토기에는 「죠몽」이라고 불리는 장식이 실시해지고 있습니다.
당시 , 더 많이 제작된 것은, 취사용의 가마나 하치류, 거기에 고배, 술병등에서 했다.
동시에, 종교적인 의미를 가지는 인형(토우)도 양성해졌습니다.

 

 

3월식 토기

3월식 토기는 기원 전 3세기정도로 만들어졌습니다.
성형 기술이 진보해 녹노(녹로)에 가까운 것을 사용한 것이 많아졌습니다.
특징은 생활 양식의 안정으로부터 오는 매우 밝은 온화한 여성적미를 적지 않이 포함하고 있고, 균형을 잡힌 간소미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스에 토기 토기
5 세기무렵부터 많이 만들어진 토기입니다.
스에 토기 토기는 산의 경사를 이용한 오름가마를 닮은 방식에 의해서 소 이루어지고 있으므로, 딱딱하고, 비교적 파손하기 어렵고, 아무 문양도 없는 무유의 도기입니다.
이 시대, 일본과 (쿠다라)백제에는 친교가 있었습니다.그 때문에 (쿠다라)백제의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닌가?이렇게 말해집니다.

 

 

유약을 이용한 도기
자, 드디어 「도기와 자기」의 시대입니다.


유약이란
「유약」이란 도기의 「유약」입니다.
도자기의, 소지의 표면에 베푸는 유리질의 용액을 말합니다.도기를 고온에서 구우면 얇은 층을 이루어, 흡수를 막아, 광택을 띠고 장식을 겸하는 도기의 묘미 (참다운 즐거움)입니다.


나라 삼채
일본의 구이는 나라시대에 유약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8 세기).중국의 당문화의 파급에 의해, 연유도의 것이 출현해, 황색이나 녹색에 흰색(투명)의 유약을 사용하는 나라 삼채로 불리는 구이가 만들어졌습니다.

나라 삼채(8 세기)
 
 
회유도기
헤이안 시대에 들어가는 무렵, 높은 온도로 구워진, 초록 백색의 유를 걸친 회유도기가 제작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회유도기의 시대보다, 문양(모양)은 보다 복잡하게, 보다 정교하게 장식되게 되었습니다.

회유도기항아리
 
 
세토 도자기
9 세기에 들어가면 「세토 도자기」가 탄생했습니다.
「세토 도자기」는 다도의 「다입(가루차를 넣는 항아리)」로 유명합니다만, 이 시대에 그 원형이 태어났습니다.

세토 「요코타」

 


「6고요」
 13 세기로는 「6고요」라고 불리는 6개의 도자기(세토, 상활, 시가라키, 에츠젠, 탄바, 비젠)가 만들어지고 있었습니다.
이 「6고요」에 의해, 일본의 도자기의 기초가 완성되었습니다.
 
모모야마 시대.꽃 벌어지는 다도
16 세기의 모모야마 시대, 다도의 유행에 따라 도자기가 일본적인 특색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세토나 미노 지방에서, 시노, 키노세 토, 세토흑, 오리베라고 부르는 밥공기, 수지, 향그릇등 뛰어난 다도의 제작이 활발히 행해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기술은 매우 높은 레벨로, 현재의 일본의 다도의 기술은 이 시대에 확립되어 현재도 이러한 도기는 제작계속 되고 있습니다.
또 차인 센리큐우에 의해서 쿄토에서는 락소가 시작되었습니다.

센리큐우가 찾아낸 「락소」
 
고려의 밥공기의 하나
많은의 도자기가 완성하고, 생산되어 처음후, 히데요시의 한국 출병에 의해 조선 도공들이 일본에 왔습니다.그 도공들이 가져온(만들어 낸) 도자기가 일본에서 귀중한 보물 되게 되었습니다.
이 도자기는 조선 민중의 싸구려의 양산품으로, 유약(하는 태운다)의 거는 방법도 난폭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안에는 「소박한 일용품으로서의 아름다움」을 가지는 밥공기도, 수는 적으면서 존재했습니다.
그러한 「아름다움」을 가지는 도자기(고려의 밥공기의 하나)는 「소박한 아름다움을 가진다」라고 평가되고 있습니다.

 

 

자기
 
조선의 도공이 미친 영향

그런데, 17 세기에 들어가기 직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한국 출병으로 일본에 데려 올 수 있던 조선 도공안 한 명, 이참평(일본명:금강3 무관)에 의해서, 1610년대에 백자용의 자기의 원료가 되는  도석을 발견한 것이, 일본의 자기의 발전으로 연결되었습니다.
이 원료가 되는  도석은 일본안에 퍼져, 각지에서 여러가지 자기가 제작되게 되었습니다.
이 때의 자기는 무슨 그림부도 없는 무지의 백자이며, 별로 평가되지 않았습니다.
 
그림부의 시작
1644년에 명이 멸망 해, 명의 그림부 공예사가 일본에 망명했다.이 때, 「그림 붙여」의 기술을 배운 일본의 도예가들은, 자기에 「그림 붙여」를 베풀게 되었습니다.
이 「그림 붙여 된 자기」는 정교 화려를 특징으로 해, 온 세상에서 인기를 끌었기 때문에 일본의 「이마리」항으로부터, 온 세상에 수출되었습니다.
이것으로부터 통칭 「이마리」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이마리」는 온 세상의 도예에 영향을 미쳐, 유명한 마이센가마도 「이마리」로부터 다대한 영향을 받았습니다.
 

고이마리 「채색화춘도대하치」

 

이 단계에서, 일본의 도자기의 기술은 최고조에 이르러 완성했습니다.
후대가 되면 「이마리」의 파생인 「시미즈소」등의 염부자기가 만들어졌습니다.

 

어땠습니까?
일본의 구이에 대해 알아 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조선의 기술도, 일본의 구이의 기술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와 같이, 도자기의 역사는, 나라와 나라와의 관련되어 합 좋음 비추는, 문화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덧붙여 씀
어느 한국인은 「조선의 자기의 기술이 일본의 도예에 다대한 영향을 주었다」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그것은 「과대한 망상」입니다.
조선의 자기 기술은 류우센가마의 계통입니다.이것은 철회등의 청색 그림이 특징(농담은 있지만 단색)입니다.그리고 조선 독특한 상감 방법이 이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자기 기술은 친토첸의 계통입니다.이것은 다채로운 채색화가 특징으로, 명(중국)의 기술 유입에 의해서 일본에서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당스렛드의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도록(듯이) 일본의 자기는 많은 채색이 특징입니다.
일본의 자기 제작의 초기 단계에서는 일시적으로 조선의 도공의 기술 유입도 있었습니다.그러나 일본의 자기 기술 자체는 명의 기술 유입에 의해 크게 진보했습니다.
실제의 곳 「조선의 기술 유입」은 한정적이며, 「일본의 도예에 다소 영향을 주었다」정도입니다.
개인적으로, 소박한 조선 도자기는 나의 취향입니다.


日本の陶磁器

日本の焼き物
焼き物(陶磁器)。それは、その国の文化と歴史の代表だと言えるでしょう。
世界には特徴のある様々な陶磁器が存在します。その陶磁器を見ることによって、人は過去に思いを馳せる事ができます。
同時に、陶磁器を見ることにより、その時代の文化がどの程度成熟していたのか?どのような文化を持っていたのかを知る手がかりになります。
では、日本の陶磁器を紹介してゆこうと思います。

色絵牡丹文蓋物
 


陶磁器とは?
「陶磁器」という言葉の定義は、
「陶器と磁器。広い意味では粘土を加工し成形・焼成した製品」
です。
大きく分けると土器・陶器・磁器に大別されます。
一般に「陶磁器」というと、釉薬が施された「陶器」や「磁器」を指すようです。
 
土器
日本で発掘される土器は世界最古の物だと言われています。
 
縄文式土器
縄文式土器はおよそ12000年前に造られました。
当時は、陶磁器を焼成する「窯」が存在せず、野外に積み重ねた成形品の周辺に薪木を積み重ね火を付け、低火度に焼成したものでした。
この段階で、土器には「縄文」と呼ばれる装飾が施されています。
当時、もっと多く作製された物は、煮炊き用のかまや鉢類、それに高杯、徳利などでした。
同時に、宗教的な意味合いをもつ人形(土偶)も造られました。

 

 

弥生式土器

弥生式土器は紀元前三世紀ほどに造られました。
成型技術が進歩し轆轤(ロクロ)に近いものを使用したものが多くなりました。
特徴は生活様式の安定から来る非常に明るい温和な女性的美を多分に含んでいて、均衡のとれた簡素美を表現しています。

 

須恵器土器
五世紀頃から多く造られた土器です。
須恵器土器は山の傾斜を利用した登り窯に似た方式によって焼成されているので、硬く、比較的破損しにくく、なんの文様もない無釉の陶器です。
この時代、日本と百済には親交がありました。そのため百済の影響を受けたのではないか?と言われています。

 

 

釉薬を用いた陶器
さあ、いよいよ「陶器と磁器」の時代です。


釉薬とは
「釉薬」とは陶器の「うわぐすり」のことです。
陶磁器の、素地の表面に施すガラス質の溶液を言います。陶器を焼成すると薄い層を成し、吸水を防ぎ、光沢を帯びて装飾を兼ねる陶器の醍醐味です。


奈良三彩
日本の焼き物は奈良時代に釉薬を使い始めました(8世紀)。中国の唐文化の波及により、軟釉陶のものが出現し、黄色や緑色に白(透明)の釉薬を使う奈良三彩と呼ばれる焼き物が作られました。

奈良三彩(8世紀)
 
 
灰釉陶器
平安時代に入る頃、高い温度で焼かれた、緑白色の釉をかけた灰釉陶器が作製され始めました。
この灰釉陶器の時代より、文様(模様)はより複雑に、より精巧に装飾されるようになりました。

灰釉陶器壺
 
 
瀬戸焼
9世紀に入ると「瀬戸焼」が誕生しました。
「瀬戸焼」は茶の湯の「茶入(抹茶を入れる壺)」で有名ですが、この時代にその原型が生まれました。

瀬戸「横田」

 


「六古窯」
 13世紀では 「六古窯」と呼ばれる6つの陶磁器(瀬戸、常滑、信楽、越前、丹波、備前)が作られていました。
この「六古窯」により、日本の陶磁器の基礎が完成されました。
 
桃山時代。花開く茶陶
16世紀の桃山時代、茶の湯の流行にともなって陶磁器が日本的な特色を持つようになりました。
瀬戸や美濃地方で、志野、黄瀬戸、瀬戸黒、織部と呼ぶ茶碗、水指、香合など優れた茶陶の製作が盛んに行われるようになりました。
これらの技術は非常に高いレベルで、現在の日本の茶陶の技術はこの時代に確立され、現在もこれらの陶器は作製され続けています。
また茶人千利休によって京都では楽焼が始まりました。

千利休が見いだした「楽焼」
 
井戸茶碗
多くのの陶磁器が完成して、生産され初めた後、秀吉の朝鮮出兵により朝鮮陶工たちが日本にやってきました。その陶工達が持ってきた(作りだした)陶磁器が日本で重宝されるようになりました。
この陶磁器は朝鮮民衆の安物の量産品で、釉薬(ゆうやく)のかけ方も乱暴なものでした。
しかし、それらの中には「素朴な日用品としての美しさ」を持つ茶碗も、数は少ないながら存在しました。
それらの「美しさ」を持つ陶磁器(井戸茶碗)は「素朴な美しさを持つ」と評価されています。

 

 

磁器
 
朝鮮の陶工が及ぼした影響

さて、17世紀に入る直前、豊臣秀吉の朝鮮出兵で日本に連れてこられた朝鮮陶工の中一人、李参平(日本名:金ヶ江三兵衛)によって、1610年代に白磁用の磁器の原料となる陶石を発見したことが、日本の磁器の発展につながりました。
この原料となる陶石は日本中に広まり、各地で様々な磁器が作製されるようになりました。
このときの磁器はなんの絵付けもない無地の白磁であり、あまり評価されませんでした。
 
絵付けの始まり
1644年に明が滅亡し、明の絵付け工芸師が日本に亡命した。この時、「絵付け」の技術を学んだ日本の陶芸家たちは、磁器に「絵付け」を施すようになりました。
この「絵付けされた磁器」は精巧華麗を特徴とし、世界中で人気を呼んだため日本の「伊万里」港から、世界中に輸出されました。
このことから通称「伊万里」と呼ばれるようになりました。
「伊万里」は世界中の陶芸に影響を及ぼし、有名なマイセン窯も「伊万里」から多大な影響を受けました。
 

古伊万里「色絵椿図大鉢」

 

この段階で、日本の陶磁器の技術は最高潮に達し完成しました。
後代になると「伊万里」の派生である「清水焼」などの染付磁器が造られました。

 

どうでしたか?
日本の焼き物について知って頂けたと思います。
朝鮮の技術も、日本の焼き物の技術に影響を与えました。
このように、陶磁器の歴史は、国と国との関わり合いさえ映し出す、文化の象徴といえるでしょう。

 

 


追記
ある韓国人は「朝鮮の磁器の技術が日本の陶芸に多大な影響を与えた」と考えているようですが、それは「誇大な妄想」です。
朝鮮の磁器技術は龍泉窯の系統です。これは鉄絵などの青絵が特徴(濃淡はあるが単色)です。そして朝鮮独特の象眼方法が用いられています。
しかし日本の磁器技術は景徳鎮の系統です。これは多彩な色絵が特徴で、明(中国)の技術流入によって日本で作られるようになりました。当スレッドの写真を見れば分かるように日本の磁器は多くの彩色が特徴です。
日本の磁器製作の初期段階では一時的に朝鮮の陶工の技術流入もありました。しかし日本の磁器技術自体は明の技術流入により大きく進歩しました。
実際のところ「朝鮮の技術流入」は限定的であり、「日本の陶芸に多少影響を与えた」程度です。
個人的に、素朴な朝鮮陶磁器は私の好み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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