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


● 7세기 동아시아 최대의 전쟁을 고구려의 승리로 이끈 위대한 군사전략가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 외침(外侵)을 막아내고 국난(國難)을 극복한 대표적인 전쟁영웅(戰爭英雄) 세 명을 거론한다면 고구려(高句麗) 왕국의 을지문덕(乙支文德), 고려(高麗)의 강감찬(姜邯贊), 조선왕조(朝鮮王朝)의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을 이야기할 것이다. 이들 가운데서도 가장 위대한 전공(戰功)을 세운 최고의 영웅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한국인들은 대부분 이순신이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이순신이 활약했던 16세기 임진왜란(壬辰倭亂)보다 6세기 후반에 중원대륙을 통일한 수(隨) 제국이 모든 국력을 걸고 고구려를 침략했던 7세기 초반의 여수전쟁(麗隨戰爭)이 가장 규모가 크고 사상자가 매우 많았던 전란이라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612년 살수대첩(薩水大捷)으로 수조(隨朝)의 침략군을 격퇴한 을지문덕의 전공이야말로 우리 대외항쟁사(對外抗爭史)에서 가장 중요하고 의미가 컸다는 점을 깨달을 수 있다.


그러나 을지문덕은 우리에게 너무 암흑 같은 존재다. 역사 인물이 분명하지만 우리는 그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 그가 언제 태어나 어느 시기에 출장입상(出將入相)을 했으며 무슨 벼슬을 지냈는지, 심지어 언제 죽었는지도 모른다. 그의 아버지는 누구이며 그의 가문은 어떤 집안이었는지조차 알려져 있지 않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열전(列傳)에서도 을지문덕의 업적인 살수대첩에 대해서만 기술(記述)했을 뿐, 그의 개인 사료는 현재 남아있지 않는다. 야사(野史)로 분류되는 조대기(朝代記)·규원사화(揆園史話)·태백일사(太白逸史) 등과 해동명장전(海東名將傳)·고려을지공막리지제축문(高麗乙支公莫離支祭祝文) 등 조선왕조 시대의 문헌,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 선생이 1908년에 출간한 을지문덕전(乙支文德傳) 등만이 그와 관련된 설화(說話)를 전해주고 있을 뿐이다.


중국 정부는 2002년부터 2007년까지 동북공정(東北工程)을 진행하여 고조선·부여·옥저·고구려·발해를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 분리시키고 심지어 신라나 고려마저 중국 변방의 소수민족이 세운 위성국가였다는 주장을 펼치며, 만주 지역에 대한 통치력을 강화하고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공고히 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의 역사왜곡(歷史歪曲)을 추진하여 왔다. 동북공정은 공식적으로 완료되었지만 중국의 집권 공산당이 아직도 남한 측에 의해 주도되는 한반도 평화통일을 반대하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한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도 한국의 교육정책 책임자들은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더욱 우리 민족의 역사를 교육하는 일에 전력을 쏟아붓기는커녕, 대학입시에 별 도움이 안 되고 경제실용적인 학문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역사 교육을 축소하여 선택과목으로 전락시켰다.


나관중(羅貫中)의 삼국지(三國志:三國志演義)는 중국 후한(後漢) 말기부터 위(魏)·촉(蜀)·오(吳) 삼국시대까지 중원대륙에서 일어났던 다양한 정치적·군사적 분쟁을 표현한 명대(明代) 초기의 장편소설로 오늘날까지 동양 사람들에게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문학작품이다. 나관중의 삼국지에 가장 크게 열광하는 나라는 바로 대한민국이다. 한국인들이 중국인들보다 삼국지를 더 많이 사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기 184년에서부터 280년까지 이르는 이 시기에 중원대륙에서 무수히 많은 영웅호걸들이 각자 독특한 캐릭터를 뽐내며 등장했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삼국지연의에는 사내들의 호승심(好昇心)을 자극하는 마력이 숨어 있다. 그래서일까? 이문열(李文烈)·정비석(鄭飛石)·김홍신(金洪信)·황석영(黃晳映) 등 국내 문학의 거두들은 마치 연례행사를 치르듯이 삼국지연의를 옮겨서 각색하는 글쓰기를 반복하였다.


이렇게 되니 나관중의 삼국지는 국내 대학 입시 논술고사의 단골 메뉴로 등장하게 되었고 “삼국지를 세 번 이상 읽지 않은 사람과는 친구로 사귀지 말라”는 괴상한 소리까지 나오게 되었다. 삼국지연의의 배경, 즉 1백여년간의 시기에 활동했던 제갈량(諸葛亮)·관우(關羽)·장비(張飛)·조운(曺雲)·곽가(郭嘉)·허저(許楮)·하후돈(夏侯惇)·서황(徐晃)·여포(呂布)·주유(周瑜)·감택(鑒澤)·황개(黃蓋)·주태(周泰)·여몽(呂蒙) 등은 잘 알지만 고구려사(高句麗史)에 불꽃을 피운 온달(溫達)·강이식(姜以式)·을지문덕(乙支文德)·연개소문(淵蓋蘇文)·양만춘(楊萬春) 등은 모른다. 적벽(赤壁)·허창(許昌)·건업(建業)은 줄줄 외우지만 비류수(沸流水)·건안성(建安城)·오골성(烏骨城) 등은 어느 나라 영토인지도 모른다. 삼국지연의는 모두 60년도 못 간 보잘것없는 나라였던 위·촉·오 중국 삼국시대의 역사는 알아도 7백년에서 1천년까지 사직(社稷)을 유지했었던 고구려·백제·신라 우리 민족의 삼국시대를 모르고, 심지어 우리 역사에서 가장 강력한 국력을 자랑했던 고구려의 역사마저 망각해가는 정신없는 백성만을 양산했던 것이다.


중국 정부는 고구려가 한국인들의 조상에 의해 건국된 나라였다는 사실을 부정하면서 만주는 물론이거니와 북한의 영토마저 한국인들의 문화적 종속권에서 제외시키기 위한 교활하고 치밀한 계획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고 있는데, 정작 한국에서는 자국 역사의 교육을 소흘히 하면서 중국의 삼국지연의를 소중하게 여기고 있으니 장래 우리 민족의 생존권을 과연 누가 무슨 방법으로 보장받을 수 있단 말인가?


중국은 세계에서 두번째로 광활한 영토를 가진 나라이며 지구촌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지닌 강대국이다. 지금의 티베트 지역과 신강유오이자치구(新疆維吾爾自治區)에서 벌어지고 있는 독립운동을 무력(武力)으로 탄압하며 조심스럽게 한반도 북부 지역에 대한 야욕을 드러내고 있는 중국은 연변조선족자치주(延邊朝鮮族自治州)를 완전히 중국의 세력권에 귀속시키기 위해 한반도에서 평화통일이 이루어지는 일을 방해하려고 갖은 공작을 꾸몄으며, 동북공정(東北工程)은 그러한 공작 가운데 하나였을 뿐이다. 일본 정부는 독도(獨刀)를 다케시마[竹島]라는 명칭으로 부르며, 1945년 태평양전쟁(太平洋戰爭)의 종전(終戰) 당시 미국에 의해 자국의 영토로 인정받았으나 한국에서 70년 동안 불법적으로 점거중이라면서 국제사법재판(國際司法裁判)을 통해 시비(是非)를 가리자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중국인들이 이 같은 일본 측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지지함과 동시에 백두산(白頭山)이나 이어도(離於島)에 대한 영유권을 내세우는 이유는 무엇인가? 국제적으로 명분과 지지를 얻고 장차 정세가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전개된다면 한반도를 점령하겠다는 의도임에 틀림없다. 즉, 침략이다.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 파문에 이어 중국의 동북공정까지 한국인들의 대외적 이미지가 크게 손상되고 우리 민족의 자주권 유지에 대한 명분이 심각하게 훼손당하고 있는 오늘날, 외침(外侵)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고 민족의 생존권에 대한 위협을 막아낸 구국간성(救國干城)의 영웅을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 찾아내어 탐구하고 부각시키는 작업을 경기회복(景氣回復)에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고 하여 하찮은 일로 치부해도 되는 것인가?


한반도를 강점하고 36년간 식민지 지배를 했던 일본 제국주의 세력은 1910년 8월에 경술병탄늑약(庚戌倂呑勒約)을 체결하기 전부터 한국침략의 정당성을 완성하기 위해 한사군 한반도 북부 위치설(漢四郡韓半島北部位置說)·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附設) 등을 만들어 역사를 날조하였다. 이 시기에 우리 민족의 고대사를 복원하여 일본인들의 역사왜곡(歷史歪曲)에 대응하고, 중원 세력과 대등하게 경쟁했던 자랑스러운 역사를 민중에게 가르쳐서 민족해방운동(民族解放運動)의 정신적 토대를 구축한 천재사학자(天才史學者)가 등장했으니 그가 바로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 선생이었다.


선생이 가장 중요시하게 여기고 연구했던 것은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 가장 무력(武力)과 재력(財力)이 막강했던 시기인 고구려사(高句麗史)였으며, 그 가운데서도 선생이 매우 자랑스러운 영웅으로 숭상했던 역사인물이 바로 을지문덕(乙支文德)이었다. 그러나 선생께서 ‘우리 역사상 최고의 위인’이라며 극찬과 존경을 바친 을지문덕에 관련된 사료가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리 연구와 문장에 천부적인 자질을 갖추었던 선생이라고 해도 그의 전기를 쓰는 데 애를 먹을 수 밖에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은 을지문덕전(乙支文德傳)의 서론에서 “다행이구나, 을지문덕이여! 오히려 이 몇 줄의 역사가 전해 오고 있도다. 불행하구나, 을지문덕이여! 겨우 이 몇 줄의 역사만 전해 오고 있도다”라고 한탄했던 것이다.


우리는 학교에서 서양사(西洋史) 과목을 수업받을 때에 약소민족이 강대국의 침략을 물리쳐 승리한 대표적인 전쟁을 기원전 5세기의 그리스·페르시아 전쟁[Greco·Persian Wars]이라고 배웠다. 페르시아의 국왕 크세르크세스 1세[Khshayarsha]가 기원전 480년 50만 대군을 이끌고 그리스를 침공했을 때, 그리스 해군의 총사령관으로서 살라미스 해전[Battle of Salamis]에서 승리를 거두었던 테미스토클래스(Themistocles)는 고대의 역사인물 가운데 세계 최고의 영웅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서기 7세기의 여수전쟁(麗隨戰爭)을 고구려의 승리로 이끌었던 을지문덕이야말로 아테네의 테미스토클래스보다 더 위대한 전공(戰功)을 세운 탁월한 군사전략가였음을 누구에게도 내세울 수 있고 또 자부할 수 있다.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 자랑스러운 승리를 들추어내는 것은 조상들의 위대한 업적을 기림으로써 국민들에게 영웅을 숭배하는 마음을 고취시키고, 열성적이며 모험적이었던 고구려인들의 옛 발자취를 묘사하여 다시 영웅을 불러 일으켜 나라의 어지러움과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함이니 을지문덕에 대한 이 현대판 전기가 비열한 자들의 마음을 경계·각성시키고 민족의 자존감을 되살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계속}




『高句麗病魔大元帥乙支文徳将軍』1. 中原統一勢力と堂堂と競争した自負心の国高句麗 (1)


● 7世紀東アジア最大の戦争を高句麗の勝利に導いた偉い軍事戦略家


我が民族の歴史で叫び(外侵)を受け止めて国難(国難)を乗り越えた代表的な戦争英雄(戦争英雄) 三人の人を取り上げたら高句麗(高句麗) 王国の乙支文徳(乙支文徳), 高麗(高麗)の姜宛賛(姜邯賛), 朝鮮王朝(朝鮮王朝)の忠武公(忠武公) 李舜臣(李舜臣)を話すでしょう. これらの中にも一番偉い専攻(戦功)を立てた最高の英雄が誰なのと問ったら韓国人たちは大部分李舜臣と答える.


しかし李舜臣が活躍した 16世紀壬辰の乱(壬辰倭乱)より 6世紀後半に中原大陸を統一した数(隨) 帝国がすべての国力をかけて高句麗を侵略した 7世紀初盤の旅愁戦争(麗隨戦争)が一番規模が大きくて死傷者が非常に多かった戦乱という事実を勘案したら 612年撒水大勝(薩水大捷)で水槽(隨朝)の侵略軍を撃退した乙支文徳の専攻こそ私たち対外抗争社(対外抗争史)で一番重要で意味が大きかったという点を悟ることができる.


しかし乙支文徳は私たちにとても暗黒みたいな存在だ. 歴史人物が明らかだが私たちはそれに対して児はのがほとんどない. 彼がいつ生まれてどの時期に出張入賞(出将入相)をしたし何の官職を勤めたのか, 甚だしくはいつ死んだかも知れない. 彼のお父さんは誰で彼の家門はどんなジブアンイオッヌンジさえ知られていない. 三国史記(三国史記) 熱戦(列伝)でも乙支文徳の業績な撒水大勝に対してだけ技術(記述)しただけ, 彼の個人史料は現在残っていない. 外史(野史)で分類される粗大期(朝代記)・揆園史話(揆園史話)・太白日射(太白逸史) などと解凍名将前(海東名将伝)・ゴリョウルジゴングマックリジゼツックムン(高麗乙支公莫離支祭祝文) など朝鮮王朝時代の文献, 短才(丹斎) シン・チェホ(申采浩) 先生が 1908年に出刊した乙支文徳前(乙支文徳伝) などだけが彼と係わる説話(説話)を伝えているだけだ.


中国政府は 2002年から 2007年まで東北公正(東北工程)を進行して古朝鮮・付与・玉箸・高句麗・渤海を我が民族の歴史で分離させて甚だしくは新羅や高麗さえ中国辺方の少数民族が立てた衛星国家だったという主張を広げて, 満洲地域に対する統治力を強化して北朝鮮に対する影響力を強固にするための政治的目的の歴史歪曲(歴史歪曲)を推進して来た. 東北公正は公式的に完了したが中国の集権共産党がまだ南韓側によってくれても良い韓半島平和統一を反対する立場を固守している限りまだ現在進行形だと見なければならない. それなのに韓国の教育政策責任者たちは育つ青少年たちにもっと我が民族の歴史を教育する事に全力をソッアブッギどころか, 大学入試に別に役に立たなくて経済実用的な学問ではないという理由だけで歴史教育を縮小して選択科目で転落させた.


ナカンジュン(羅貫中)の三国志(三国志:三国志演義)は中国後漢(後漢) 末期から上(魏)・燭(蜀)・五(呉) 三国時代まで中原大陸で起きた多様な政治的・軍事的紛争を表現した名線(明代) 初期の長編小説で今日まで東洋人々に最高の人気を謳歌している文学作品だ. ナカンジュンの三国志に一番大きく沸き返える国はすぐ大韓民国だ. 韓国人たちが中国人たちより三国志をもっとたくさん愛すると言っても過言ではない. 西紀 184年から 280年まで至るこの時期に中原大陸で無数に多い英雄豪傑たちが各各独特のキャラクターを威張りながら登場してから消えるのを繰り返す三国志演義には男たちのホスングシム(好昇心)を刺激する魔力が隠れている. そのためだろう? 李文烈(李文烈)・整備席(鄭飛石)・キム・ホンシン(金洪信)・黄が暎(黄皙映) など国内文学の巨頭たちはまるで年例行事を行うように三国志演義を移して脚色する書き込みを繰り返した.


このようになったらナカンジュンの三国志は国内大学入試論述考査の行き付けメニューで登場するようになったし “三国志を三度以上読まない人とは友達に付き合わない”は変な音まで出るようになった. 三国志演義の背景, すなわち 1百余年間の時期に活動した諸葛量(諸葛亮)・カンウ(関羽)・装備(張飛)・漕運(〓雲)・グァックが(郭嘉)・ホゾ(許楮)・ハフドン(夏侯惇)・ソファング(徐晃)・濾胞(呂布)・注油(周瑜)・ガムテック(鑒沢)・黄ヶ(黄蓋)・ズテ(周泰)・ヨモング(呂蒙) などはよく分かるが高句麗社(高句麗史)に花火を咲かせたオンダル(温逹)・姜移植(姜以式)・乙支文徳(乙支文徳)・ヨンゲソムン(淵蓋蘇文)・梁マンチュン(楊万春) などは分からない. ゾックビョック(赤壁)・ホチァング(許昌)・建業(建業)はすらすら覚えるが非類数(沸流水)・ゴンアンソング(建安城)・オゴ−ルソング(烏骨城) などはどの国領土かも知れない. 三国志演義は皆 60年度行けなかったしがない国だった上の・燭・五中国三国時代の歴史は分かっても 7百年から 1千年まで辞職(社稷)を維持した高句麗・百済・新羅我が民族の三国時代が分からなくて, 甚だしくは国史で一番力強い国力を誇った高句麗の歴史さえ忘却海歌は気が抜ける民のみを量産したのだ.


中国政府は高句麗が韓国人たちの先祖によって建国された国だったという事実を否定しながら満洲は勿論で北朝鮮の領土さえ韓国人たちの文化的従属圏から除外させるための狡猾と緻密な計画を成功的に推進しているのに, いざ韓国では自国歴史の教育をおろそかにしながら中国の三国志演義を大事に思っているから将来我が民族の生存権を果して誰が何とか方法で保障受けることができるという話か?


中国は世界で二番目で広闊な領土を持った国や地球村で一番多い人口を持った強大国だ. 今のチベット地域と新彊油きゅうり自治で(新疆維吾爾自治区)で開かれている独立運動を無力(武力)で弾圧して控え目に韓半島北部地域に対する野慾を現わしている中国は延辺朝鮮族自治州(延辺朝鮮族自治州)を完全に中国の繩張に帰属させるために韓半島で平和統一が成り立つ事を邪魔しようといろいろな工作を構えたし, 東北公正(東北工程)はそういう工作の中一つだっただけだ. 日本政府は独島(独刀)を竹島[竹島]という名称と呼んで, 1945年太平洋戦争(太平洋戦争)の以前(終戦) 当時アメリカによって自国の領土で認められたが韓国で 70年の間不法的に占拠中だと言いながら国際司法裁判(国際司法裁判)を通じて是非(是非)を選り分けようと主張している. これに対して中国人たちがこのような日本側の立場(入場)を積極的に支持することと同時に白頭山(白頭山)や引き継いでも(離於島)に対する領有権を立てる理由は何か? 国際的に名分と支持を得て将来情勢が自分たちに有利に展開されたら韓半島を占領するという意図に違いない. すなわち, 打ってす.


日本の歴史教科書歪曲波紋に引き続き中国の東北公正まで韓国人たちの対外的イメージが大きく損傷されて我が民族の自主権維持に対する名分が深刻に毀損されている今日, 叫び(外侵)から国を守って民族の生存権に対する脅威を受け止めた救国干城(救国干城)の英雄を我が民族の歴史で捜し出して探求して浮上させる作業を景気回復(景気回復)に直接的な連関がないと言ってつまらない事で心に刻んでおいても良いことか?


韓半島を強点して 36年間植民地支配をした日本帝国主義勢力は 1910年 8月にギョングスルビョングタンヌックヤック(庚戌併呑勒約)を締結する前から韓国侵略の正当性を完成するために漢四郡韓半島北部位置説(漢四郡韓半島北部位置説)・任那日本府説(任那日本附設)などを作って歴史を捏造した. この時期に我が民族の古代史を修復して日本人たちの歴史歪曲(歴史歪曲)に対応して, 中原勢力と対等に競争した誇らしい歴史を民衆に教えて民族解放運動(民族解放運動)の精神的土台を構築した天才史学者(天才史学者)が登場したから彼がすぐ短才(丹斎) シン・チェホ(申采浩) 先生だった.


先生が一番重要視するように思って研究したことは我が民族の歴史で一番無力(武力)と富力(財力)が莫強した時期の高句麗社(高句麗史)であったし, その中にも先生が非常に誇らしい英雄に崇尚した歴史人物がすぐ乙支文徳(乙支文徳)だった. しかし先生が ‘私たち歴史上最高の偉人’と言いながら絶賛と尊敬を捧げた乙支文徳に係わる史料が残っていなかったからいくら研究と文章に天性の資質を取り揃えた先生だと言っても彼の伝記を書くことにてこずるしかなかった. そうだから先生は乙支文徳前(乙支文徳伝)の前書きで “幸いだね, 乙支文徳よ! むしろこの何竝びの歴史が伝えて来てい. 不幸だね, 乙支文徳よ! やっとこの何竝びの歴史だけ伝えて来てい”と嘆いたのだ.


私たちは学校で西洋史(西洋史) 科目を授業受ける時に弱小民族が強大国の侵略を退けて勝利した代表的な戦争をB.C. 5世紀のギリシア・ペルシア戦争[Greco・Persian Wars]と学んだ. ペルシアの国王クセルクセス 1歳[Khshayarsha]がB.C. 480年 50万大軍を導いてギリシアを侵攻した時, ギリシア海軍の総司令官としてサルラミス海戦[Battle of Salamis]で勝利をおさめたテミストクルレス(Themistocles)は古代の歴史人物の中世界最高の英雄で評価を受けている. しかし西紀 7世紀の旅愁戦争(麗隨戦争)を高句麗の勝利に導いた乙支文徳こそアテネのテミストクルレスよりもっと偉い専攻(戦功)を立てた卓越な軍事戦略家だったことを誰にも立てることができるしまた自慢することができる.


我が民族の歴史で誇らしい勝利を暴き出すことはご先祖の偉い業績を称えることで国民に英雄を崇拜する心を鼓吹させて, 熱誠的で冒険的だった高句麗人たちの昔の足跡を描いてまた英雄を催して国の乱れていることと難しさを乗り越えようとするだから乙支文徳に対するこの現代版電気が卑劣な者等の心を境界・覚醒させて民族の自尊感をいかすことができるのを期待する.


{引き続き}





TOTAL: 9736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추천
5416
No Image
「포경 진실 전한다」 (1) kusoboze♡ 2017-08-26 1184 0
5415
No Image
짖궂음 민죠크는 행정도 짖궂음 너무 ....... (1) kusoboze♡ 2017-08-25 1369 0
5414
No Image
하코네(hakone)·누마즈(numazu) 짧은 여행....... jlemon 2017-08-24 2573 0
5413
No Image
하코네(hakone)·누마즈(numazu) 짧은 여행....... (5) jlemon 2017-08-24 2532 0
5412
No Image
미의 재배 (350) sumatera 2017-08-20 2666 1
5411
No Image
★신임 주일대사의 송영용의 의장마....... tobaru888 2017-08-20 1254 0
5410
No Image
종이접기 1매로 여고생을 만드는 masamasa123 2017-08-19 966 0
5409
No Image
万里の長城にもハングル落書き。 (1) kusoboze♡ 2017-08-18 1111 0
5408
No Image
朝鮮的芸術作品 何故か公開中止に。 (1) kusoboze♡ 2017-08-14 1942 0
5407
No Image
아!박다 (10) ウソッキー 2017-08-14 2492 0
5406
No Image
만춘(Late Spring) (2) jlemon 2017-08-14 5345 1
5405
No Image
카마쿠라(kamakura)가 낡은 집 jlemon 2017-08-14 3153 0
5404
No Image
참숯을 제조하기 위한 화덕(ishigama) gar....... jlemon 2017-08-14 3305 0
5403
No Image
와카야마 타이지쵸·파로에 제도 제휴....... kusoboze♡ 2017-08-09 1310 0
5402
No Image
マヤ遺跡。 (2) kusoboze♡ 2017-08-09 1265 0
5401
No Image
일본의 국보를 손괴하는 조선인. (7) kusoboze♡ 2017-08-09 1721 0
5400
No Image
★눈이 흩날리는 나카가미주씨가 가....... (2) tobaru888 2017-08-06 1041 0
5399
No Image
일본 스키(skiing) 발전 역사 1 jlemon 2017-08-02 5734 1
5398
No Image
일본 스키(skiing) 발전 역사 2 jlemon 2017-08-02 3946 1
5397
No Image
한국 무용의 역사 4 (7) namgaya33 2017-08-01 2584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