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문화

일본은 한국에서(보다) 빨리 개국했기 때문에 차이가 났다고 하는 한국인에.

개국전의 에도시대의 일본은···.


●세계 제일의 문맹퇴치율

일본의 문맹퇴치율은 수백년에 걸쳐 세계 제일이다.에도시대(1603~1867)를 보면, 무사는 거의100%, 글자의 읽고 쓰기가 가능했다.서민층의 경우에서도, 남성의49~54%는 읽고 쓰기가 가능했다.


에도시대, 영국의 하층의 서민층의 경우, 런던 지역에서도 읽고 쓰기를 할 수 있는 아이는10%도 안 되었다.에도시대의 일본은 서민의 취학률이 문맹퇴치율과 함께 세계 최고였다.1850년경의 에도의 취학률은 70~86%로, 변두리에 사는 아이라도, 공부하지 않는 아이는 남녀 모두에 드물었다.


니혼바시, 아카사카, 혼고등의 지역에서는, 공부하는 인원수가 남자 보다 여자가 보다 많았다고 하는 기록이 있다.당시의 「서당(에도 서민의 아이가 다니는 사설의 교육기관)」는 의무 교육은 아니었다.


「서당」제도는 서민 서 스스로의 열의에 의해서 자발적으로 발생한 것으로, 세계적으로도 드문 케이스다. 당시의 일본은 「중요한 (일)것은 국가(관청)가 해결해 주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하는 발상과 같은 것을 하지 않고, 자기 자신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이면, 스스로가 자치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는 사고를 하고 있었다.


이것에 대해서, 1837년경의 영국의 목수업 도시의 취학률은 불과20~25%였다.19 세기 중순의 영국의 최전성기의 빅토리아 시대조차, 런던 하층계급의 문맹퇴치율은10% 정도에 머무르고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프랑스는 1794년에 초등교육의 수업료가 무료가 되었지만, 10~16세의 취학률은 불과 1.4%에 지나지 않았다.


많은 외국인이 일본의 문맹퇴치율이 높은 것에 놀라, 이것에 관한 기록을 남겼다.미국으로부터 외국 함선을 인솔해 1853년에 일본을 방문한「페리」제독은, 자신의 일기(일본 원정기)에 「일본은 문장의 읽고 쓰기가 보편화 해, 견문을 얻는 것에 열심이다」라고 썼다.

페리는 당시의 일본의 시골에까지 책방(서점)이 존재하고 있던 것과 일본인등이 독서를 좋아하는 것에 놀랐다.


1860년에 통상조약을 맺기 위해서 일본을 방문한Pruisen 해군의 「라인홀트·베르나」(엘베호함장)은 항해기에 이와 같이 적었다.

 아이의 수학 연령은 7세 또는 8세로 보이지만, 아이들은 일찍부터 학습하고 있다.민중의 학교 교육은 중국보다 넓게 보급되어 있었다.중국에서는 민중 중의 대체로 남자만이 취학하는 것 과는 달리,일본의 경우는 중국 같이, 사립학교 밖에 없는데도 관계없이, 여자도 공부하고 있다.일본에서는 잡무를 하는 낮은 계층의 여자끼리도 서로 문장을 써 편지를 교환해, 하층의 육체 노동자라도 읽고 쓰기가 가능하고, 우리를 놀래켰다.


일본의 민중 교육에 관해서, 우리가 관찰한 곳에 의하면, 문장을 전혀 읽고 쓰기할 수 없는문맹은1%에 지나지 않는다.이 세상의 어느 나라가 이런 일(문맹율1%)을 주장할 수 있을까?

1861년에 하코다테의 러시아 영사관 소속의 주임 사제로서 일본에 부임한러시아 정교회의 선교사 「니코라이는 8년간, 일본에 체재했다.그는 귀국후, 러시아의 잡지 「러시아 보고」에 일본에 도착해 이렇게 썼다.

 전계층에 건너, 지역을 불문하고, 거의 동일 레벨의 교육이 실시되고 있다.일본은 「공자(유교·유학)」가 학습 지식의 상당히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학문을 거둔 일본인은 일언일구까지 암기 있어, 신분이 가장 낮은 서민조차, 그 내용을 꽤 알고 있다.어느 변두리나 산간부에 갔다고 해도, 뢰조, 의경,구스노키 마사시게등의 역사적 인물을 모르는 케이스는 없었다.


읽고 쓰기를 할 수 있고 독서를 할 수 있는 사람의 수로 추측하면, 일본은 서유럽 제국의 어디에도 끌 수 있는을 취하지 않는다.일본인은 문자를 배우는데 정말로 열심이다.


트로이 유적의 발굴로 유명한독일의 고고학자 「쉬리-맨」은 1865년에 일본을 방문했을 때에 받은 인상을 자신의 저서에 이렇게 썼다.

 교육은 유럽의 문명 국가의 수준 이상으로 실시되고 있다.중국을 포함한 다른 아시아의 나라들의 경우, 여자가 무지의 한가운데에 방치되어 있는데 반하고, 일본에서는 여자와 남자가 보는거야 「가명(일본 문자)」이라고 한자로 읽고 쓰기할 수 있다.



世界一の識字率

日本は韓国より早く開国したから差がついたという韓国人に。

開国前の江戸時代の日本は・・・。


●世界一の識字率

日本の識字率は数百年にわたり世界一だ。江戸時代(1603~1867)を見ると、武士はほぼ100%、字の読み書きが可能だった。庶民層の場合でも、男性の49~54%は読み書きが可能だった。


江戸時代、英国の下層の庶民層の場合、ロンドン地域でも読み書きが出来る子どもは10%にもならなかった。江戸時代の日本は庶民の就学率が識字率とともに世界最高だった。1850年頃の江戸の就学率は70〜86%で、下町に住む子供でも、勉強しない子供は男女ともに珍しかった。


日本橋、赤坂、本郷などの地域では、勉強する人数が男子より女子の方がより多かったという記録がある。当時の「寺子屋(江戸庶民の子どもが通う私設の教育機関)」は義務教育ではなかった。


「寺子屋」制度は庶民たち自らの熱意によって自発的に発生したもので、世界的にも珍しいケースだ。 当時の日本は「重要なことは国家(官庁)が解決してくれ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発想のようなものをせず、自分自身にとって重要なことであれば、自分たちが自治的に運営するのが当然だという思考をしていた。


これに対して、1837年頃の英国の大工業都市の就学率はわずか20~25%だった。19世紀中頃の英国の最全盛期のビクトリア時代でさえ、ロンドン下層階級の識字率は10%程度にとどまっていたと知られている。フランスは1794年に初等教育の授業料が無料となったが、10〜16歳の就学率はわずか1.4%に過ぎなかった。


多くの外国人が日本の識字率が高いことに驚き、これに関する記録を残した。米国から黒船を率いて1853年に日本を訪れた「ペリー」提督は、自身の日記(日本遠征記)に「日本は文章の読み書きが普遍化し、見聞を得ることに熱心だ」と書いた。

ペリーは当時の日本の田舎にまで本屋(書店)が存在していたことと、日本人らが読書を好むことに驚いた。


1860年に通商条約を結ぶために日本を訪問したプロイセン海軍の「ラインホルト・ヴェルナー」(エルベ号艦長)は航海記にこのように記した。

 子供の修学年齢は7歳または8歳に見えるが、子供たちは早くから学習している。民衆の学校教育は中国よりも広く普及していた。中国では民衆の内の大抵男子のみが就学するのとは異なり、日本の場合は中国同様、私立学校しか無いのにも拘わらず、女子も勉強している。日本では雑用をする低い階層の女子同士もお互いに文を書いて手紙をやり取りし、下層の肉体労働者でも読み書きが可能で、私たちを驚かせた


日本の民衆教育に関して、私たちが観察した所によると、文章を全く読み書きできない文盲は1%に過ぎない。この世のどの国がこんなこと(文盲率1%)を主張できるだろうか?

1861年に函館のロシア領事館所属の主任司祭として日本に赴任したロシア正教会の宣教師「ニコライは8年間、日本に滞在した。彼は帰国後、ロシアの雑誌「ロシア報告」に日本についてこう書いた。

 全階層に渡り、地域を問わず、ほぼ同一レベルの教育が実施されている。日本は「孔子(儒教・儒学)」が学習知識の相当部分を占めているのだが、学問を修めた日本人は一言一句まで暗記しており、身分が最も低い庶民でさえ、その内容をかなり知っている。どの下町や山間部へ行ったとしても、頼朝、義経、楠木正成などの歴史的人物を知らないケースはなかった。


読み書きができ、読書が出来る人の数で見積もると、日本は西ヨーロッパ諸国のどこにもひけを取らない。日本人は文字を習うのに本当に熱心だ。


 トロイ遺跡の発掘で有名なドイツの考古学者「シュリーマン」は1865年に日本を訪問した時に受けた印象を自分の著書にこう書いた。

 教育はヨーロッパの文明国家の水準以上で実施されている。中国を含む他のアジアの国々の場合、女子が無知のど真ん中に放置されているのに反して、日本では女子と男子がみな「仮名(日本文字)」と漢字で読み書きでき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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