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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鎭海)에 사는 정병(正兵) 전풍상(全風上)이 왜적의 진중에서 도망해 와서 아뢰었다.

”저는 지난 임진년(1592) 8월 산골로 피란했다가 왜적에게 잡혔는데 왜장 산도(山道)의 진중에 소속되어 안골포(安骨浦)에 한달 남짓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산도를 따라 바다를 건너 일본의 국도(國都)에서 동쪽으로 하룻길인 진역군리(鎭域軍里)에 도착했는데 진역군리는 바로 산도가 다스리는 고을이었습니다. 또 산도에게 딸린 부장(副將) 우다능기(尤多凌其)의 종이 되어 복역하면서 이따금 문서(文書)를 선소(船所)에 송달하기도 했는데 대체로 우다능기는 바로 산도가 관할하는 전선(戰船)의 장수였습니다. 선척의 숫자는 1백 20여 척으로 지난해 6월 산도가 재차 자기 소속 군대를 거느리고 와서 부산포(釜山浦)에 정박하였고, 7월 사이에는 한산도(閑山島)에서 접전한 뒤에 하동(河東) 앞 포구에서 하륙(下陸)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구례(求禮) 지방을 거쳐 남원(南原)을 함락시키고 전주(全州)에 도착했다가 즉시 하동으로 돌아왔는데 대개 갔다가 돌아온 기간이 20여 일이었습니다.

또 하동에서 열흘 간 머문 뒤에 산도(山道)가 선척을 다 거느리고 수로(水路)를 따라 순천(順天)·흥양(興陽)을 거쳐 우수영(右水營) 앞 바다에 도착했는데, 거기서 통제사(統制使)와 접전을 하여 왜적의 반이 죽거나 부상당했습니다. 그리하여 무안(務安) 지방으로 후퇴하여 정박하면서 날마다 분탕질을 한 뒤에 다시 순천으로 들어와서 왜교(倭橋)에다 성을 쌓고 주난궁(走難宮)에게 지키도록 한 다음 산도는 즉시 일본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래서 우다능기를 따라 광양(光陽) 지방의 장도(獐島)에 옮겨 정박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또 우다능기가 일본으로 다시 들어간다는 기별을 듣고 고향 생각을 이기지 못하여 밤을 타서 도망와 현감(縣監)에게 자수(自首)해 온 것입니다.”

선조실록 선조 31년(1598) 2월 11일 -


先手の船ともハ敵船にあひ手負あまたいでき申し候。中にも来島出雲殿, 討死にて御ざ候。其の外ふね手の衆めしつれられ候。家老のもの共も過半手負い討死に仕り候処に、毛利民部大夫殿, 関船にて、番船へ御かゝり成され候.
ばん船へ十文字の鎌を御かけ候処に、ばん船より弓鉄炮は撃ち申し候に付き、船をはなれ海へお入りなされ、危うく候処に、藤堂孫八郎、藤堂勘解由両人船をよせ、敵船をおいのけ、たすけ申し候。
朝の五時分より酉の刻まで御合戦にて御座候。港の様子、ばん船能く存じ候に付き、風を能く見すまし、其のせと口をぬけ、津をひきかけ、はしらせ申すについて、是非なく追っかけ申す儀もまかりならず、いつみ(和泉守)も手をニか所, 負はれ候.
선봉의 배들은 적선을 만나 부상자가 숱하게 나왔다. 그 중에 특히 구루지마 이즈모노카미(来島出雲殿)[64]님은 전사하고 말았다. 그 밖에 선수(船手)[65]도 함께하였다. 가로(家老)[66]의 과반수가 부상당하거나 사망하였으며 모리 민부다이부 님(毛利民部大夫殿)[67]은 세키부네(関船)에서 적의 판옥선에 십자 낫을 걸고(도선) 공격했으나 판옥선에서 화살과 철포를 퍼부어 배에서 뛰어내려 바다에 빠져 위험에 처해 있던 것을 도도 마고하치로(藤堂孫八郎)[68], 도도 가게유(藤堂勘解由)[69] 두 장군이 배를 대어 적선을 쫓아내고 구해내었다. 아침 5각 반[70]부터 유시까지[71] 전투가 벌어졌다. 항구의 상태는 판옥선들이 잘 알고 있었기에, 바람을 잘 파악한 뒤 그 해협을 빠져나가 만에 가까이 대고 도주했는데 (일본군 측은)이를 어쩔 수 없어 추격하는 것도 불가능한 처지였다. 이즈미[72]도 손에 두 군데 부상당했다.

ㅡ 『고산공실록(高山公實錄)』


근래 또 삼도 수군 통제사 이순신이 치계하길, “한산도에서 패배한 이래로 병선과 무기가 흩어져서 거의 사라졌는데, 신이 전라 우도 수군 절도사 김억추 등과 전선 13척, 초탐선 32척을 수습하여 해남현의 바닷길에서 길목을 지키고 있자니 전선 130여 척이 이진포 앞바다로 들어왔습니다. 신이 수사 김억추, 조방장 배흥립, 거제 현령 안위 등을 거느리고 각기 병선을 정돈하여 진도 벽파정 앞바다에서 적과 교전하여 죽음을 무릅쓰고 힘껏 싸웠는데, 대포로 적선 20여 척을 깨부수고 쏘아 죽인 것이 매우 많아 적들이 바닷속으로 가라앉았고 머리를 벤 것도 8급이었습니다. 적선 가운데 큰 배 1척이 있어서 우보(羽葆)와 홍기(紅旗)를 세우고 푸른 비단 장막을 둘렀으며, 적들을 지휘하여 아군 전선을 에워싸므로[79] 녹도 만호 송여종과 영등포 만호 정응두가 잇따라 와서 힘껏 싸워 또 적선 11척을 격파하자 적이 크게 꺾이어 남은 적들이 멀리 물러났습니다. 진중의 항왜가 홍기를 단 적선을 가리켜 안골포의 적장 마다시라고 하였습니다. 획득한 적의 물건은 화문의(畫文衣), 금의(錦衣), 칠함(漆函), 칠목기(漆木器), 장창(長槍) 두 자루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 “”“소방(小邦)의 수군이 다행히 작은 승리를 거두어서 적의 예봉을 조금 꺾었으니, 이로 말미암아 적선이 서해에는 진입하지 못할 것입니다.

선조실록 선조 30년(1597) 11월 10일 기사[80][81]



서해 보급로를 확보하여 총궐기해 한양 재탈환을 목표로 북으로 진군할 계획이였던 일본군은

명량해전 패퇴 소식과 함께 겨울까지 다가오는 바 전진은 커녕 충청도에서 조차 있기 힘들다고 판단 또 다시 보급을 걱정하여 경상도로 후퇴할 수 밖에 없었고 경상도에서 왜성을 쌓고 존버하게 되었으며

이순신은 명량에서 서해 진출을 막기는 했으나 명량해협은 조선군 조차도 위험한 해협이였기 때문에 계속 방어를 할 수 없었으며 [일본군 133척 중 31척을 침몰시키고 대부분의 함선을 운영 불능으로 만들었지만 일본군은 아직 수백여척의 함선이 건재했기에 죽음을 각오하고 계속 공격해온다면 조선군도 버틸 수 없었다.] 일본 육군이 전라도를 침범 중이였기 때문에 안전을 위해 정비를 하며 북쪽으로 후퇴를 한다.

일본군이 한양을 공격하고 서해 보급로를 통해 올라온다면 한양 근처에서 해양 방어를 할 계획이였으나
일본군 철수소식을 듣고 우수영 본진으로 되돌아오게 된다.

조선군의 걱정과는 달리 일본수군은 10배나 많은 병력으로 단 한척도 손실시키지 못하고 패배하였기 때문에 엄청난 정신적 충격을 받고 있었음으로 서해 진출에 대한 의지를 완전 상실.

다음해 봄엔 이순신이 이미 엄청난 속도로 기존 해군의 절반 가량을 복구시킨 상황이라 더더욱 의지가 상실되어 공격적인 태도는 완전히 상실되게 된다. 




鳴梁海戦以後の話.

鎭海(鎭海)に暮す精兵(正兵) 前風霜(全風上)が外敵のチンの中で逃げて来て申し上げた.

"私は去る壬辰年(1592) 8月山里に避乱してから外敵につかまったが倭将酸度(山道)の陣中に属してアンゴ−ルポ(安骨浦)に一ヶ月余りとどまっていました. そうするうちに酸度に付いて海を渡って日本の国道(国都)で東にハルッギルである震域群吏(鎭域軍里)に到着したが震域群吏はすぐ酸度が治める村でした. また酸度に付いた部長(副将) ウダヌングギ(尤多凌其)の鐘になって服役しながら時々文書(文書)をソンソ(船所)に送逹したりしたが概してウダヌングギはすぐ酸度が管轄する電線(戦船)の長寿でした. 先尺の数字は 1百 20余尺で去年 6月酸度が再び自分の所属軍隊を従えて来て釜山浦(釜山浦)に停泊したし, 7月の間には閑山島(閑山島)でせめより戦った後に河東(河東) 前潟で下陸(下陸)しました. そして求礼(求礼) 地方を経って南原(南原)を陷落させて前週(全州)に到着してから直ちに河東に帰って来たがほとんど行ってから帰って来た期間が 20余仕事でした.

また河東から十日間とどまった後に酸度(山道)が先尺をすべて従えて水路(水路)に付いてスンチョン(順天)・フングヤング(興陽)を経って右水営(右水営) 前海に到着したが,そこで統制使(統制使)と合戦をして外敵の半分が死ぬとか負傷されました.そして無顔(務安) 地方で後退して停泊しながら日々にブンタングジルをした後にまたスンチョンに入って来てウェギョ(倭橋)に城を積んでズナングング(走難宮)に守るようにした後酸度は直ちに日本に帰りました. それでウダヌングギに付いて光陽(光陽) 地方の雄途(〓島)に移して停泊していました. あの時またウダヌングギが日本にまた入って行くという便りを聞いて故郷考えを勝つことができなくて夜を乗ってドマングワ県監(県監)に自首(自首)して来たのです."

先祖実録先祖 31年(1598) 2月 11日 -


先手の船ともハ敵船にあひ手負あまたいでき申し候。中にも島出雲殿, 討死にて御ざ候。其の外ふね手の衆めしつれられ候。家老のもの共も過半手負い討死に仕り候に′毛利民部大夫殿, 船にて′番船へ御かり成され候.
ばん船へ十文字の鎌を御かけ候に′ばん船より弓はち申し候に付き′船をはなれ海へお入りなされ′危うく候に′藤堂孫八′藤堂勘解由人船をよせ′敵船をおいのけ′たすけ申し候。
朝の五時分より酉の刻まで御合にて御座候。港の子′ばん船能く存じ候に付き′風を能く見すまし′其のせと口をぬけ′津をひきかけ′はしらせ申すについて′是非なく追っかけ申す儀もまかりならず′いつみ(和泉守)も手をニか所, 負はれ候.
先鋒のお腹たちは賊船に会って負傷者が多く出た. その中に特にグルジマ伊豆モノー加美(島出雲殿)[64]様は戦死してしまった. その他に選手(船手)[65]も一緒にこんにちはだった.(家老)[66]の過半数が負傷されるとか死亡したし森閔部多異部様(毛利民部大夫殿)[67]は関部だね(船)で時の板屋船に十字鎌をかけて(導線) 攻撃したが板屋船で矢とチォルポを浴びせてお腹から飛びおりて海におぼれて危険に処していたことをドドマゴハチで(藤堂孫八)[68], ドド店油(藤堂勘解由)[69]二つの将軍がお腹をつけて賊船を追い出して求め出した. 朝 5脚はん[70]から流れ矢まで[71]戦闘が起った. 港の状態は板屋船たちがよく分かっていたから, 望むことをよく把握した後その海峡を抜けてぶりに近くつけて逃走したが (日本軍側は)早い仕方なくて追撃することも不可能な立場だった. 和泉[72]も手に2ケ所負傷された.

『ゴサンゴングシルロック(高山公実録)』


近来また三道水軍統制使李舜臣がチギェするのを, "閑山島で敗れた以来で兵船と武器が散らばってほとんど消えたが, 神さまが全裸牛島水軍節度使ギムオックツなどと電線 13尺, チォタムでは 32尺を収まって海南県の海岸道路で町角を守っていようとすると電線 130余尺がイジンポ沖合に入って来ました. 神さまが捜査ギムオックツ, 粗放場ベ・フンリプ, 巨済県令安危などを従えてそれぞれ兵船を整理して進度ビョックパゾング沖合で敵と交戦してたまらないことをかえりみず勢いよく争ったが, 大砲で賊船 20余尺をぶち壊してうって殺したのが非常に多くて敵方が海中に沈んだし頭を枕にしたことも 8級でした. 賊船の中大きい船 1尺があって牛歩(羽)と紅旗(紅旗)を立てて青い仮に帳幕をかけたし, 敵方を指揮して我軍電線を囲むので[79]さびも万戸宋汝鐘と永登浦万戸ゾングウングドが続いて来て勢いよく争ってまた賊船 11尺を撃破すると少なく大きく折れて残った敵方が遠く退きました. 陣中のハングウェが紅旗をつけた賊船を示してアンゴ−ルポの賊将厭いなさいと言いました. 獲得した時の品物は火門の(文衣), 錦衣(錦衣), 漆函(漆函), 漆塗木製器(漆木器), 長槍(長槍) 二つの袋です."と言いました. (…) """火消し(小邦)の水軍が幸いに小さな勝利をおさめて時の鋭鋒を少し折ったから, これによって賊船が西海には進入することができないだろう.

先祖実録先祖 30年(1597) 11月 10日記事[80][81]



西海補給路を確保して総決起して漢陽再奪還を目標で北に進軍する計画だった日本軍は

鳴梁海戦敗退消息とともに冬まで近付くところ前進はどころか忠清道でさえありにくいと判断再び普及を心配して慶尚道で後退するしかなかったし慶尚道でわい星を積んでゾンボするようになったし

李舜臣はミョングリャングで西海進出を阻むことはしたが鳴梁海峡は朝鮮軍すら危ない海峡だったからずっと防御ができなかったし [日本軍 133尺の中で 31尺を沈沒させて大部分の艦船を運営不能で作ったが日本軍はまだ数百余隻の艦船が健在だったから死を覚悟してずっとゴングギョックヘオンダなら朝鮮軍も堪え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 日本陸軍が全羅道を侵犯中耳だから安全のために整備をして北に後退をする.

日本軍が漢陽を攻撃して西海補給路を通じて上って来たら漢陽近くで海洋防御をする計画だったが
日本軍撤収消息を聞いて右水営本陣で戻るようになる.

朝鮮軍の心配とは違い日本水軍は 10倍も多くの兵力でただ一隻も損失させることができずに敗れたからおびただしい精神的な衝撃を受けていたことで西海進出に対する意志を完全喪失.

次して見ることには李舜臣がもうおびただしい速度で既存海軍の半分ほどを復旧させた状況だからもっと意志が喪失されて攻撃的な態度は完全に喪失されるようにな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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