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63723
https://www.kukinews.com/article/view/kuk202403250005
호두는 고려시대 유청신이 원나라에서 호두 묘목을 가져와 천안 광덕사에 심은 것이 시초이며, 이때부터 천안은 호두 주산지가 되었습니다.
호두과자는 1931년 천안역앞 시무라제과점 주인 시무라 마츠타로(志村松太郞)가 부산에서 열린 전국과자·사탕품평회에서 구루미야끼(くるみやき)로 一等賞을 탔다는 신문기사가 있다.
처음으로 호두과자를 만든 사람이 일본인에게 기술을 전수받아 생과자가게를 운영하던 故 조귀금 할아버지와 심복순 할머니라는 설도 있다.
https://ncms.nculture.org/long-standing-shops/story/12929?jsi=
당시 천안역에는 철도 여행객과 온양온천을 찾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일본인 식당에서 판매하는 도시락 표지에는 온양온천과 함께 호두과자를 “천안 명물 호두과자(天安 名物 くるみ燒)”라는 선전 문구로 소개할 정도였다. 그러나 당시 일본인이 만들었던 호두과자는 일본인이 좋아하는 붉은 팥을 사용하며 호두 조각도 들어 있지 않아 일본 화과자(和菓子)의 일종인 만주(饅頭, まんじゅう)에 가까운 형태였다. 이러한 배경하에서 조귀금 씨는 학화과자점의 기술자로 있으면서 일본에서 배운 최신의 과자 기술과 본인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접목해서 조귀금 씨만의 호두과자를 만들어냈다. 그렇게 탄생한 호두과자 상품은 엄청난 히트를 하면서 월급 120원을 받는 대접을 받았다. 당시 도지사 봉급이 80원, 경찰서장은 60원, 순사는 12원을 받을 때였으니 요즘 말로 ‘고액 연봉자’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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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kukinews.com/article/view/kuk202403250005
ホドヌンゴリョシデ柳清臣が元国でくるみ苗木を持って来て天安光徳社に植えたことが始めであり, この時から天安はくるみ本場になりました.
くるみお菓子は 1931年天安駅の前シムラゼグァゾム主人御用始めだとマツタで(志村松太郎)が釜山で開かれた全国お菓子・キャンディー品評会でグルミヤキ(くるみやき)で 一等賞に乗ったという新聞記事がある.
初めてくるみお菓子を作った人が日本人に技術を伝授受けて生菓子店を運営した 故 ゾグィグムお爺さんとシムボックスンお婆さんという説もある.
https://ncms.nculture.org/long-standing-shops/story/12929?jsi=
当時チョナン駅には鉄道旅行客と温陽温泉を捜す観光客を対象で日本人食堂で販売するお弁当表紙には温陽温泉とともにくるみお菓子を “天安名物くるみお菓子(天安 名物 くるみ焼)”という宣伝文具で紹介するほどだった. しかし当時日本人が作ったくるみお菓子は日本人が好きな赤い小豆を使ってくるみ切れも入っていなくて日本和菓子(和菓子)の一種である満洲(饅頭, まんじゅう)に近い形態だった. このような梨敬賀でゾグィグムさんはハックファグァザゾムの技術者でいるのに日本で学んだ最新のお菓子技術と本人の創意的なアイディアを組み合わせてゾグィグムさんばかりのくるみお菓子を作り出した. それほど誕生したくるみお菓子商品はおびただしいヒットをしながら月給 120ウォンをもらうもてなしを受けた. 当時道知事給料が 80ウォン, 警察署長は 60ウォン, 巡使は 12ウォンをもらう時であったからこのごろ末路 ‘高額年俸者’になったこと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