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제에 의해 약 3년 6개월(1942~1945) 동안 점령당했습니다. 이 시기 일제는 자원 수탈은 물론, ”로무샤(강제 노역자)” 동원과 ”위안부” 강제 동원 등 수많은 전쟁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인도네시아 내에 남아있는 일제 침략의 흔적과 기념비적 장소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로무샤 기념비 (Monumen Romusha)
일제 강점기 가장 비극적인 수탈 중 하나인 강제 노역(로무샤) 희생자들을 기리는 곳입니다.
위치: 서부 자바, 수카부미(Sukabumi) 또는 반텐(Banten) 지역 등 노역 현장 인근
의미: 일본군은 철도 건설, 방어 시설 구축 등을 위해 수십만 명의 인도네시아인을 강제 동원했습니다. 이들 중 상당수가 굶주림과 과로, 질병으로 사망했습니다.
특징: 당시의 가혹한 노동 환경을 기록하고 있으며, 이름 없이 죽어간 수많은 현지인 노동자들의 넋을 기리는 장소입니다.
2. 수방 사태 기념비 (Monumen Peristiwa Subang)
일본군의 잔인한 민간인 학살을 증언하는 곳입니다.
위치: 서부 자바, 수방(Subang)
의미: 1942년 일본군이 상륙하는 과정에서 저항하거나 협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현지 민간인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징: 평화롭던 마을을 전쟁의 참화로 몰아넣은 일제의 폭력성을 보여주는 역사적 장소입니다.
3. 암바라와 위안소 유적 및 박물관 (Ambarawa / Semarang)
일제가 저지른 성노예 피해의 증거가 남아있는 지역입니다.
위치: 중부 자바, 스마랑(Semarang) 인근 암바라와
비극적 역사: 이곳은 네덜란드인 여성들과 현지 여성들을 강제로 억류하여 위안소로 운영했던 “스마랑 위안소 사건(네덜란드 여성을 강제 동원한 사건)”의 배경이 된 지역입니다.
특징: 당시 일본군이 수용소나 위안소로 사용했던 건물들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일제가 아시아 전역에서 저지른 성범죄의 기록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4. 팡카산 동굴 (Goa Jepang - 일본 동굴)
일본군이 인도네시아 전역을 군사 요새화하며 현지인들을 동원해 판 동굴들입니다.
위치: 반둥(Bandung), 비악 섬(Biak Island), 부키팅기(Bukittinggi) 등 전국 곳곳
의미: 연합군의 공격에 대비해 구축한 지하 요새입니다. 이 거대한 동굴들을 파기 위해 수많은 “로무샤”들이 도구도 제대로 없이 맨손으로 동굴을 파다 죽어 나갔습니다.
특징: 부키팅기의 “루방 제팡(Lubang Jepang)”은 그 길이가 수 킬로미터에 달하며, 내부에는 고문실과 감옥 등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일제의 군사주의적 광기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5. 블리타르 항일 봉기 기념비 (Monumen PETA Blitar)
일본군이 조직한 보조군(PETA) 내에서 일제의 압제에 견디다 못해 일어난 저항의 현장입니다.
위치: 동부 자바, 블리타르(Blitar)
역사적 사건: 1945년 2월, 수프리야디(Supriyadi)를 중심으로 한 인도네시아 청년들이 일본군의 가혹한 처우와 자국민 수탈에 반대하여 총을 들고 봉기했습니다.
의미: 비록 봉기는 진압되고 주동자들은 처형당했지만, 일제의 통치가 얼마나 참혹했으면 일본이 직접 훈련시킨 군대마저 등을 돌렸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소입니다.
6. 국립 독립 기념관 (Monumen Nasional - Monas) 지하 역사 박물관
인도네시아의 전체 역사를 다루는 곳이지만, 일제 강점기 섹션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습니다.
위치: 자카르타 중심부
관람 포인트: 일본군이 인도네시아의 자원을 공수해 가는 모습, 강제 노역 장면, 그리고 일본군이 항복하고 인도네시아가 독립을 선언하는 과정이 디오라마로 상세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 일본은 처음에는 “아시아의 해방자”를 자처하며 들어왔으나, 곧바로 본색을 드러내어 식량 수탈(쌀 공출), 강제 노역(로무샤), 성노예(위안부) 동원 등 네덜란드 식민 시대보다 더 짧고 강렬한 고통을 안겨주었습니다. 위 장소들은 인도네시아인들이 결코 잊지 못하는 일제의 침략과 범죄의 기록들입니다.
インドネシアは第2次世界大戦当時日製によって約 3年 6ヶ月(1942‾1945) 間占領されました. この時期日製は資源収奪は勿論, "ロムシャ(強制労役者)" 動員と "慰安婦" 強制動員など幾多の戦争犯罪をやらかしました. インドネシア内に残っている日帝侵略の跡と記念碑的場所たちは次の通りです.
1. ロムシャ記念碑 (Monumen Romusha)
日帝強点期一番悲劇的な収奪中の一つの 強制労役(ロムシャ) 犠牲者たちを称える所です.
位置: 西部ジャバ, スカブミ(Sukabumi) またはバンテン(Banten) 地域など労役現場隣近
意味: 日本軍は鉄道建設, 防御施設構築などのために数十万人のインドネシア人を強制動員しました. これらの中でかなり多い数が飢えと過労, 疾病で死亡しました.
特徴: 当時の苛酷な労動環境を記録しているし, のぼることなしに死んだ幾多の現地人労動者たちの魂を称える場所です.
2. 水防事態記念碑 (Monumen Peristiwa Subang)
日本軍の残忍な民間人虐殺を証言する所です.
位置: 西部ジャバ, 水防(Subang)
意味: 1942年日本軍が上陸する過程で抵抗するとか協調しないという理由で現地民間人たちを無差別的に虐殺した事件を記録しています.
特徴: 平和だった村を戦争の惨禍に追いこんだ日製の暴力性を見せてくれる歴史的場所です.
3. アムバラと慰安所遺跡及び博物館 (Ambarawa / Semarang)
日帝がやらかした性奴隷被害の証拠が残っている地域です.
位置: 中部ジャバ, スマと(Semarang) 隣近アムバラと
悲劇的歴史: こちらはオランダである女性たちと現地女性たちを強制に抑留して慰安所で運営した "スマと慰安所事件(オランダ女性を強制動員した事件)"の背景になった地域です.
特徴: 当時日本軍が収容所や慰安所で使った建物の跡が残っていて, 日製がアジア全域でやらかした性犯罪の記録を確認することができます.
4. パングカサン洞窟 (Goa Jepang - 日本洞窟)
日本軍がインドネシア全域を軍事この頃化して現地人たちを動員して版洞窟たちです.
位置: バンデュン(Bandung), ビアック島(Biak Island), ブキティングギ(Bukittinggi) など全国あちこち
意味: 連合軍の攻撃に備えて構築した地下この頃です. この巨大な洞窟たちをほるために数多い "ロムシャ"らが道具もまともになしに素手で洞窟をほって死んで行きました.
特徴: ブキティングギの "ルバングゼパング(Lubang Jepang)"はその長さが数キロメートルに達して, 内部には顧問室と監獄などがそのまま保存していて日製の軍事主義的狂気をいきいきと見せてくれます.
5. ブルリタル抗日一揆記念碑 (Monumen PETA Blitar)
日本軍が組織した補助だね(PETA) 内で日製の圧制に耐えれなくなり起きた抵抗の現場です.
位置: 東部ジャバ, ブルリタル(Blitar)
歴史的事件: 1945年 2月, スプリヤデ−(Supriyadi)を中心にしたインドネシア青年たちが日本軍の苛酷な処遇と自国民収奪に反対して鉄砲を持って一揆しました.
意味: たとえ一揆は押えられて主動者たちは処刑されたが, 日帝の統治がいくら血なまぐさかったら日本が直接訓練させた軍隊さえ背を向けたのかを見せてくれる象徴的な場所です.
6. 国立独立記念館 (Monumen Nasional - Monas) 地下歴史博物館
インドネシアの全体歴史を扱う所だが, 日帝強点期セクションが別に用意されています.
位置: ジャカルタ中心部
観覧ポイント: 日本軍がインドネシアの資源を空手して行く姿, 強制労役場面, そして日本軍が降伏してインドネシアが独立を宣言する過程がジオラマに詳しく説明されています.
インドネシアで日本は初めには "アジアの解放者"を自任しながら入って来たが, ゴッバで本色を現わして 食糧収奪(米供出), 強制労役(ロムシャ), 性奴隷(慰安婦) 動員 などオランダ殖民時代よりもっと短くて強烈な苦痛を抱かれてくれました. 上の場所たちはインドネシア人たちが決して忘れることができない日帝の侵略と犯罪の記録たちで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