뻥튀기 장수가 외친다. "뻥이오!!" 그러면 주변을 지나가던 사람들은 귀를 막고, 마음은 조마조마해진다. "뻥~!" 0.5초의 정적이 흐르고 다시 시장은 시끄러워진다.
이곳은 의성 장터, 장터는 정겹다. 장터에 가면 웃음소리가 있고 멋쟁이 할머니도 있고, 이웃들이 있고 있을 것은 다 있고 없을 것은 없다.
동네 할머니 삼총사께서는 미장원에서 파마를 단체로 하시고선 머리에 보자기를 감고 장터 구경을 하시고 살짝 낮술을 하신 할마버지는 흥얼거리시면서 할머니가 적어준 물건은 다 샀나 주머니의 쪽지를 뒤적인다. 각설이 엿장수가 틀어놓은 카세트 노래 소리에 어깨는 들썩거리고 농담이 섞인 흥정에 웃음소리가 피어난다.
장터는 온갖 물건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람이 모이는 곳이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랬는데 좁은 시장길에 많은 사람들이 이리저리 부딪치면서 장터의 인연을 만든다.
옛날부터 곰탕을 맛보려면 시장에 가라고 했다. 장터가 열리는 새벽, 새벽공기는 꽤 차갑다. 숨을 쉴 때마다 입에서 코에서 수증기가 새어나온다. 이른 시간임에도 주황색 가로등 불빛 아래로 한사람, 두사람씩 움직이기 시작하고 장터의 아침은 서서히 열린다. 그즈음 장터 한켠에 위치한 허름한 곰탕집 굴뚝 위로 연기가 피어오른다.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맛으로 수십년간 장터를 지켜왔던 곰탕집의 솥은 이른 시간부터 펄펄 끓고 있다. 장작을 집어삼킨 빨간 불덩이는 춤을 춘다. 꼬릿하면서도 구수한 냄새가 솥뚜껑 틈으로 새어나온다.
장터가 열리는 날 새벽이면 할머니는 재료 준비로 분주하다. 커다란 소머리, 흐물흐물한 내장, 허파, 우랑 등은 보기에는 징그럽지만 모두 한 솥에 어우러져 오랜 시간 끓으면 구수하고 진한 맛을 내는 넉넉한 장터인심이 담긴 소머리 곰탕이 된다.
장작에 불을 지펴 꼬박 5시간, 손님들이 대부분 나이가 많은 어른들이라서 먹기 좋도록 흐물흐물해지도록 오래 끓인다. 새벽 3시부터 푹 끓여질 때까지 망부석처럼 앉아 늘 그랬던 것처럼 수십년된 화덕을 지킨다.
이 일은 장터가 서는 2일과 7일에만 한다. 이 집의 소머리 곰탕은 한달에 딱 6번밖에 먹을 수 없는 귀한 음식인 셈이다.
곰탕이 제맛을 우려내는 동안 장터가 펼쳐졌다. 옛날부터 마늘과 고추로 유명세를 떨쳐온 의성장은 인근 제일의 풍물 장터였다. 특히 의성은 마늘로 유명한데 전국의 마트에 가면 의성 마늘햄도 절찬리인지는 모르겠지만 팔고있고 곳곳에 마늘모양의 조형물도 만들어 마늘의 고장임을 알리고 있다.
인근 고을에서 몰려든 물건들이 폼을 내며 여기저기 자리를 잡으면 장터 손님들의 눈도 이리저리 바빠진다. 볼거리 많고 먹을거리 많은 떠들썩한 장날은 시골사람들의 풍족한 동네잔치날이다. 활기찬 장날의 신명이 무르익으면 사람들은 슬슬 배고픔을 느끼고 하나 둘 곰탕집으로 모여든다.
"빨리빨리 준비해라. 손님 올 시간됐다." 할머니가 외치면 방에 상이 깔린다. 할머니는 장날이 되면 안방을 주막처럼 장돌뱅이들에게 내주었다. 부산사람들이 이곳으로 오면 밤 12시 차로 오는데 시간도 어중간하고 여관갈 돈이 없으니깐 이 집에 오면 안방은 물론 여러 방을 내주었다고 한다. 할머니도 그 틈에 끼어 잤다고.
할머니는 펄펄 끓는 솥을 확인한다. 의성 곰탕의 막걸리처럼 하얀 색은 소머리 뼈에서 우러난 진국이다. 흐물어질 듯 잘 고아진 고기들은 숭덩숭덩하게 썰어 국밥에 푸짐하게 들어차는 얹은 고기가 된다. 내장, 허파, 머리 등 소의 여러 부위의 고기를 썰고 고기를 한 곳에 모아 섞는다. 할머니 말로는 이렇게 해야 더 맛있다고 한다.
방은 장터사람들로 하나 둘 채워진다. 할머니는 5시간동안 정성껏 끓인 기름진 국으로 손님을 맞는다. 고슬고슬한 밥을 뚝배기 그릇에 푸짐하게 담고 묵직하게 우려낸 소머리 곰탕을 퍼서 여러번 국물을 그릇에 담고 다시 솥에 부어내어 따뜻하게 하는 토렴을 한 다음 손님상에 낸다.
모르는 사람들이 일행인 것처럼 한 상에 둘러앉아 곰탕을 먹는다. 한 쪽에만 빛이 드는 어두운 방은 구수한 곰탕 냄새와 뚝배기에서 피어오르는 뜨거운 수증기로 채워진다. 사람들은 뚝배기를 들고 마시든 떠서 먹든 곰탕 맛에 집중하면서 연신 땀을 흘린다.
따끈한 국물은 더울 때는 더운대로 좋고 추울 때는 추운대로 좋다. 뜨거운 국물이 가슴 속을 따뜻하게 데우며 속을 든든하게 만들어준다. 곰탕의 뿌옇고 진한 국물은 구수한 장터인심을 닮았다.
이 집은 의성 사람이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집인데 장터가 열리는 날에만 맛볼 수 있다는 소머리 곰탕도 점심 늦은 시간에 가면 다 팔리고 없다. 낡고 허름한 시골 집을 개조한 가게하며 장작불을 직접 때어 가마솥에 끓여내는 것하며 상의 구별없이 한 상에 둘러앉아 먹는 시스템 등등 예전 시골마을에서 동네잔치나 모임에서 어른들이 곰탕을 먹던 정서를 간직한 천연기념물같은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옛날에는 농사를 짓는 소가 귀한 음식이라서 잔치나 특별한 날에만 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었고 그런 날이면 마을 사람들은 소를 잡아 서로 나누어 먹었다. 의성의 곰탕은 익숙하고 친근하지만 점차 사라지고 있는 시골의 정서가 남아있는 음식이자 농경사회 역사와 이어지는 어우러짐의 미학, 두레정신과 연결되는 두레탕이라 할 수 있다.
곰탕은 전국적으로 먹었겠지만 곰탕으로 유명한 고장이 있으니 그곳은 해주, 현풍, 나주다. 해주야 지금 북한 황해도인지라 갈 수 없어 알수 없다쳐도 현풍과 나주의 곰탕은 스타일이 아예 다르다. 현풍곰탕은 약간 노란 빛깔이 감도는 하얀 국물을 하고 있다면 나주곰탕은 투명한 국물을 하고 있다.
현풍이라고 하면 우선 어디인가하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현풍은 100년전에는 군이었던 적도 있지만 이후 달성군에 속했고 지금은 대구 안에 있다. 현풍면 내에는 현풍향교나 석빙고가 있고 도동서원이 있다. 그리고 곽재우는 현풍곽씨이다. 작은 고을치고는 꽤 유서가 깊은 곳인데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아마도 곰탕일 것이다.

현풍곰탕에는 소꼬리와 양지머리, 소의 다리, 내장이 들어간다. 이곳에서 가장 이름난 곳은 박소선 할머니의 곰탕집인데 박소선 할머니가 처음 장사를 시작할 때만해도 이 집은 곰탕전문점이 아니었다.
원래 이 주변은 먼지가 날리던 비포장도로가 태반이었던 한적한 벽촌이었다. 이 집을 드나드는 손님은 정미소, 양조장, 면사무소, 파출소, 수리조합 직원 정도 뿐이었는데 이들에게 정식이나 닭백숙, 아니면 원하는 음식을 그때그때 만들어서 팔았다. 물론 곰탕도 있었지만 지금과 달리 牛足 육수에 김치와 함께 내놓은 소박한 메뉴였다.
그러다가 70년대 주변에 고속도로 공사가 시작되었는데 워낙 벽촌인지라 거의 유일한 식당이었던 이곳이 공사 근로자의 단체 식당이 되었다. 그 쯤 아들이 어머니가 잘 하는 곰탕만 전문으로 팔자고 했고 대구의 도축장에서 양질의 소 부산물을 떼와 곰탕 전문점을 시작하였다. 그후 맛이 소문나 금방 바닥이 나 버릴 정도로 인기였다. 고속도로 뿐만 아니라 주변에 부곡하와이같은 관광단지도 생기게 되면서 전국적으로 입소문이 나게 되었고 현풍곰탕은 유명해지게 되었다.
현풍곰탕에 들어가는 소뼈는 종류만 해도10여종이 넘는다. 소머리, 사골(소 다리뼈), 소꼬리에 여러 잡뼈가 들어간다. 물론 소머리뼈 등 잡뼈는 설렁탕에 주로 들어간다. 가장 골수가 풍부한 부위는 사골이다. 흔히 사골은 끓여선 안되고 고아야(膏) 된다고 하는데 고는(膏) 것과 끓이는 게 다르기 때문이다. 끓이는 건 소고기 국처럼 한두시간 양지머리와 같은 고기로 육수를 내는 것이고, 고는 건 끓이는 시간이 12~24시간으로 무척 길다. 물론 사골은 한번 고고 버리지 않고 3번까지 골 수 있다. 여기에 소의 위인 양을 넣는다.
고우기(膏) 시작하기 전엔 가장 중요한 절차가 있다. 그것은 참기름을 뜨거운 솥 안에서 몇 번 휘두르는데 이는 고기 특유의 냄새인 누린내를 제거하기 위해서다. 누린내 제거는 곰탕 요리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이다. 보통 소금물로 씻으면 가장 빠른 시간내 누린내가 사라진다고 한다. 하지만 완전하게 제거할 순 없다.
그래서 나주에선 무명천 속에 마늘, 양파, 파, 무 등을 넣고 흐물흐물해질 때까지 육수 속에 넣어둔다. 하지만 현풍식은 참기름이 스며들도록 하고 있다. 그래서 나주식에 비해 더 고소한 맛이 난다고 한다. 그리고 현풍곰탕은 나주와 다르게 국과 밥을 따로 내놓는다. 이렇듯 이름은 같은 곰탕이라도 지역에 따라 많은 차이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