ミリタリー

東南アジアマレー半島に位したボルネオばりばりにあるマレーシアに対して紹介します.マレーシア隣り国家ではシンガポール,インドネシア,タイ,ブルネイがあります.マレーシア歴史は最初でマレーシアに人間が居住したのは約 4万年前に, これらはオラン餓殺だと呼ばれます. マライ人たちはこれらを野蛮人やけだもの扱ったし奴隷になるとか殺害されたりしました. 今マレーシアの人口の 54%を占めるマレー系列の人々は 20,000年前からマラヤ半島で住み始めたと言います. 現在マレーシアにはこのマレー系列も多くの族で分けられるが, 普通ブミプトラに通り名されて一つのマレ異系で見ます.紀元後には多くの王国がこの地域に存在したと言います. 中国人たちが残した記録で存在可否と位置の確認される国々は “ラングアス”, “赤土国”, “つけたという” などとして, それぞれパタニ, クルランタン, トレングがヌ等地にあったことに推定されます(Andaua 2001: 22). この国々はおおよそ 6世紀から中国四書に現われるのに, 中国南朝国々が南方との交流に関心が高かったおかげさまだと思われます. 7世紀以後にはシュリービジュヤというマレ異系海上王国が今のインドネシアとマライ半島で盛んでもありました.しかしこの国々が古代国家の体制を取り揃えたと思うことは難しくて, 現マレーシア社会との連繋性・連繋性を証明するにも不足です. なによりもこれらは歴史にいて一番核心である “人” 科 “人の活動” に対する記録を捜すことができません. 結局マレーシアの歴史がはっきりと現われることは 1400年代初盤として, マラッカ王国の建設とともにでした.マラッカ王国の建国者は通常 “パレンバンの一王子であるパラメスワだと”であったとは言うのに, シュリービジュヤ王室家計の王子なのかは明らかではないです. ただ一般的な説明はパレンバンが者との攻撃を受けて敗れると, 彼が追従者を従えて脱出してマレー半島方面で定着したというのです. 初めて定着した所はマレー半島南端にあるテマセック島だったが, パラメスワというこちらを “獅子の都市” という意味で “シングアプだと” と呼んだから, すぐ今日のシンガポールです. こちらでまたムルラカ(Melaka)で移したのが 1402年の事です.マラッカ王国は海上国家と同時に貿易の中心地で大きく盛んだったが, その成功理由はだいたいこの位に要約されると言います. 先に, マラッカの支配者たちは国際商人たちの安全を保障するのに力を注ぎました. 今もところが当時マラッカ海峡は海賊たちが沸き立った所でした. マラッカはこんな海賊たちを相手で商人たちを保護するのに成功したのです. また交易施設を拡充して火事及び盗難防止のために地下倉庫まで建てたと言います. こんなに貿易を活性化させるために努力したし, 法と行政が非常に精巧に編まれていて商人たちの信頼を得ることができました. このおかげさまでマラッカ王国は 100年以上興盛することができました.しかし 1511年香料を探して出たヨーロッパのポルトガル人たちが香料を独占するために必ず必要な所としてマラッカを侵攻, 熾烈に対立して戦ったが結局滅亡あいます. その後ではオランダを含んだ多くのヨーロッパ勢力によって支配にあって結局イギリスの影響圏に完全に編入されました.ヨーロッパでナポレオン戦争が起こるとイギリスの東南アジア進出は急進展しました. オランダがナポレオンボナパルトの攻撃を受けて征服されて, 王はイギリスで亡命してアジア地域でのオランダ支配権を皆イギリスに委任しました(1795). するとイギリスはもっと大胆に東南アジア植民地経営に取り掛かってペナンにイギリス上官を設置して, マラッカ及びバタビアを受け付けたし, 香料制度に至るまでの制海権を掌握しました.イギリスはペナンを得たし, こちらを始まりに真書 1819年にシンガポールを建設するまでマレー半島地域での影響力を増大して行きました. 1824年にはオランダと結んだ条約(ロンドン協約)によってスマトラ, 定木と(韓国によく知られたジャバ(Java)は英文人) など現在のインドネシア地域はオランダが, マレー半島地域はイギリスが管轄することに決まりました. 結局ペナン, マラッカ, シンガポールを一所に縛って “海峡植民地(Straits Settlements)”を作るのに至ります(1826). しかしこの時までのイギリスの関心は貿易路掌握だっただけで, 特に重要なことは “中国への道” でありました. 海路上の拠点を掌握したらそれで十分でした. 当時まではマレー半島で収益性高い資源が生産されることでもなかったからです.19世紀からイギリスはマレー半島そのものに関心を置くようになりました. その中心には柱石があったが, 柱石を利用したトタン製造技術が発展して需要が増大することでマレー半島の柱石鉱山たちが黄金卵を生むが鳥になったのです.柱石鉱山の運営には三つの集団が係わっていました. 第一は柱石鉱山を保有したサルタンだったし, 二番目はそれを運営するイギリスの資本家たちだったし, 三番目はまさに柱石鉱山で働く中国人労動者たちでした. こんなにマレー半島に渡って来た中国人たちがすぐれた教育熱と真面目することでイギリス領マレーシアの中間公務員たちになったりマレーシアの経済圏を掌握したりしながら疏外されたマレ異系人々とますます反目するようになります. 当時イギリス人たちはマレー系列は善良でまじめだが単純で怠けで, 中国人たちは能力のあるが利害に抜け目がなくさといと評価しました. このような偏向的なマレ異系-中国係固定観念は東南アジアではまだ通じます. 甚だしくは遠く離れた南ア共和国でも通じます. イギリス人地主たちはマレ異系人々を下人にして家事をさせたし中国係を波止場や市場で働くようにしたが, このためにまだ南ア共和国の人口統計作成の時に “その他” 項目ではない別途項目に作成されるほどに数字が多いです.一方 19世紀末から急激に拡がり始めたゴムプランテーションもマラヤの経済に大きい役目をしました. 20世紀初になればゴムがマラヤの株輸出品目として柱石と競争するようになったし, 1920年代と 1930年代はマレー半島のゴム農場面積が全世界ゴム農場面積の半分に達するほどでした. 柱石の生産を主に中国係鉱山労動者たちが担当したら, ゴム生産は主に契約移民で越えて来た引導係農場労動者たちが担当しました. 20世紀初ゴム産業の急成長に歩調をあわせてマラヤの引導係移民者人口も急激に増加しました. ゴム農場は主にペラック, スルラングオル, 大きい, ジョホール, ヌグリスムビルと言う(のは) 5個株に集中されていました.こんなにイギリスのサルタンたちを通じる間接的な統治は続くのに, 日本が太平洋戦争を起こします. マレー半島を占領した日本は軍政体制を設立したし, 日本は結局敗れて降伏します. 以後に戻って来たイギリスはマレーシアに自治を, そして 1957年に独立を許容します.イギリスはマラヤの多くのサルタン国たちが一国になってマレ異系, 中国係, 引導係が一緒にマラヤ人として住むようになるという以上を持って独立をさせたのでした. しかしマライ人たちは不満を抱きました.  華僑係がマレーシアの経済を占領するようになったらマライ人たちは当然堪え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のです. それでもイギリス, マレ異系, 中国係リーダーたちの合心で独立はやりこなしました. マレ異系が軍人と警察, 公務員の方を占めるようになって, 公用語はマレー語で, 教育とエコノミックスポリシーはマレー系列を優待する一方で, 中国係や引導係も痩せると国民としてそのままマラヤで暮すことができました. そこに経済的既得権も奪わないでずっと認めてくれるということが要旨でありました.シンガポールとボルネオ島のサラワック, 娑婆地域はイギリスから独立した後マラヤ加入を計ってイッオッスブニダシングがポルが特に問題だったが, マレーシアはマレ異系が多数だがシンガポールだけは中国係華僑が圧倒的多数だったことです. そこにシンガポールは植民地時代からマレー半島の圧倒的な経済中心地. マラヤは中国人が多数人シンガポール人々が入って来て経済を曲げてつかもうか憂慮したからです. とにかくシンガポールはマレーシアとしばらく合しました. マラヤにシンガポール, サラワック, 娑婆が編入, 国が拡大, 改編されながら国名前もマレーシアで直しました.当時シンガポール注意総理だったリクァンユは “マレーシア人たちのマレーシア”(Malaysian Malaysia)を主唱した. 人種に構わなく “マレーシアである”というアイデンティティを持って, すべてのマレーシア人にはまったく同じな権利と責任があるという主張でした. マレ異系では到底受け入れることができない政策でした. 経済や学業面でマレ異系があまりおくれているからこのまままったく同じく平等だったらマレ異系はマレーシア社会から落伍されるしかないと判断されたのです. もちろんリクァンユ-シンガポール-中国係の主張も充分に理解するに値するのでした. とにかく国家的な中国係差別は中国係には悔しいうえ, 中国係とはしても何代目マレーシアで出て育った人々だからです.こんな熾烈な国家観の差は新生独立国の存立を振る危ない問題でした. 結局 1965年マレーシアはシンガポール株をマレーシア連邦で追い出す事にします. そしてシンガポール注意総理リクァンユは泣きながら独立を宣言します.マレーシア国土総面積は 329,847〓 総人口は 32,042,458人で一人当たり名目 GDPは 10,703ドルで 1人当り PPPは 30,815ドルです.

*マレーシア軍隊総兵力と地上軍総兵力

マレーシア軍隊総兵力は 120,000人で予備軍は 310,000人です.この中地上軍は 90,000人で予備軍は 300,000人です.兵役制度は徴兵制で男女共同で 3ヶ月服務です.

*TANK

マレーシアの保有した TANKはポーランド制 PT-91M 重戦車 48本,FV-101 スコルピオン軽戦車 26本を保有します.

マレーシア国軍の日に展示された PT-91M 重戦車.PT-91はポーランドの主力電車です. T-72M1を基盤で開発されたし 1995年から実践配置に入って行きました.

*諸原因

-開発国家 :ポーランドのギポルランド
-開発社 :OBRUM
-開発年も:1991年‾
-生産期間:1985年‾
-使用国家: ポーランドのギポルランド
            マレーシアのギマルレで
-生産台数:280台+
-乗務員:3人
-長さ:6.95 m
-高さ:2.19 m
-幅:3.50 m (11.5 ft)
-重量 :48.5t
-主務場:125 mm 2A46 ファルガングポ
-装填方式 :受動装填
-ブムザング:12.7 mm external AA MG, 500 rds,7.62 mm coaxial MG, 3000 rds ドゾング
-エンジン:PZL-Wola S-1000R diesel
-エンジン魔力 :1,000 hp (764 kW)
-出力/重量 :20.6 hp/t (16 kW/t)
-懸架装置: トーションバー
-路上速度: 70 km/h
-機動可能距離(通り): 500km

マレーシア陸軍 FV101 スコルピオン軽戦車( 主砲は Cockerill 90mm ライプルポです.)

*装甲車

マレーシア地上軍の保有した装甲車はトルコ制 ACV-300Adnan 歩兵戦闘のため 267台.トルコ制 AV-8 Gempita 歩兵戦闘のため 257台,韓国制 K-200A1 歩兵輸送のため,イギリス制 Alvis ストモ歩兵輸送のため 25台,ドイツ製コンドル歩兵輸送のため 400台,タイ制 AV4 Lipanbara 歩兵輸送のため34台,カナダ制がデ−アン歩兵輸送のため 9台,シロイタチ正札装甲車 92台,SIMBAS 正札装甲車 186台を保有します.

マレーシア陸軍シロイタチ正札装甲車


マレーシア独立記念日バレードに登場したマレーシア陸軍ストモ歩兵輸送のため

マレーシア軍事バレードに登場した  AV4 Lipanbara 歩兵輸送のため


マレーシア独立記念であるバレードに登場した K-200A1 歩兵輸送のため

2018年マレーシア独立記念であるバレードに登場したコドル歩兵輸送のため(写真の装甲車の搭載武将は FN-MAG 機関銃)

マレーシア軍事バレードで市街行進中のマレーシア陸軍コンドル 20mm 機関砲搭載歩兵輸送のため

マレーシア軍事バレードに登場した AV-8 Gempita 歩兵戦闘のため(搭載武将:25mm 機関砲搭載)

マレーシア軍事バレードに登場した ACV-300Adnan 歩兵戦闘のため(25mm M242 機関砲搭載)

展示されているがデ−アン歩兵輸送のため

マレーシア陸軍 SIMBAS 正札装甲車(搭載武将は Cockerill 90mm ライプルポ)

*砲兵(迫撃ポーポーし)

マレーシア地上軍が保有した砲兵武器は M109A5 155mm 自走砲 29門,南ア共和国際デネル G-5 155mm ギョンインポ 28門,FH-70 155mm ギョンインポ 15門,オトメルラサ Mod 56 105mm ギョンインポ 110門,M102 105mm ギョンインポ 40門,フランス製 LG-1 105mm ギョンインポ 18門,ブラジル制 Astros II 300mm ダリョンザングロケット砲 54ゲセトを保有します.歩兵を支援する迫撃砲は 60mm 鼻だけも軽薄格浦は 300門,ユーゴスラビヤ制 M69B 81mm 迫撃砲を保有します.

M109A5 155mm 自走砲

FH-70 155mm ギョンインポ

展示されている デネル G-5 155mm ギョンインポ

オトメルラサ M56 105mm サンアックポ

マレーシア陸軍 Astros II 300mm ダリョンザングロケット砲

60mm 鼻だけも 60mm 軽薄格浦を肩に上げてマレーシア軍人

M69B 81mm 迫撃砲砲弾を発射しているマレーシア軍人たち


말레이시아-지상군(1)

 

 동남아시아 말레이 반도에 위치한 보르네오섬 북북에 있는 말레이시아에 대해서 소개하겠습니다.말레이시아 이웃 국가로는 싱가포르,인도네시아,태국,브루나이가 있습니다.말레이시아 역사는 최초로 말레이시아에 인간이 거주한 건 약 4만 년 전으로, 이들은 오랑 아살이라고 불립니다. 말레이인들은 이들을 야만인이나 짐승 취급했으며 노예가 되거나 살해당하기도 하였습니다. 지금 말레이시아의 인구의 54%를 차지하는 말레이 계열의 사람들은 20,000년 전부터 말라야 반도에서 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현재 말레이시아에는 이 말레이 계열도 여러 족으로 나뉘지만, 보통 부미푸트라로 통칭되어서 하나의 말레이계로 봅니다.기원후에는 여러 왕국이 이 지역에 존재했다고 합니다. 중국인들이 남긴 기록으로 존재 여부와 위치가 확인되는 국가들은 "랑아수", "적토국", "단단" 등으로서, 각각 파타니, 끌란딴, 뜨렝가누 등지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Andaua 2001: 22). 이 국가들은 대략 6세기부터 중국 사서에 나타나는데, 중국 남조 국가들이 남방과의 교류에 관심이 많았던 덕분이라고 여겨집니다. 7세기 이후에는 스리비자야라는 말레이계 해상왕국이 지금의 인도네시아와 말레이반도에서 번성하기도 했습니다.그러나 이 국가들이 고대 국가의 체제를 갖추었다고 보기는 어렵고, 현 말레이시아 사회와의 연계성을 증명하기에도 부족합니다. 무엇보다도 이들은 역사에 있어 가장 핵심인 "사람" 과 "사람의 활동" 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 없습니다. 결국 말레이시아의 역사가 확실하게 드러나는 것은 1400년대 초반으로서, 말라카 왕국의 건설과 함께였습니다.말라카 왕국의 건국자는 통상 "팔렘방의 한 왕자인 파라메스와라"였다고는 하는데, 스리비자야 왕실 가계의 왕자인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일반적인 설명은 팔렘방이 자와의 공격을 받고 패하자, 그가 추종자를 거느리고 탈출하여 말레이 반도 방면으로 정착하였다는 것입니다. 처음 정착한 곳은 말레이 반도 남단에 있는 떼마섹 섬이었는데, 파라메스와라는 이 곳을 "사자의 도시" 라는 의미로 "싱아푸라" 라고 불렀으니, 바로 오늘날의 싱가포르입니다. 이곳에서 다시 믈라카(Melaka)로 옮긴 것이 1402년의 일입니다.말라카 왕국은 해상 국가이자 무역의 중심지로 크게 번성했는데, 그 성공 이유는 대강 이 정도로 요약된다고 합니다. 먼저, 말라카의 지배자들은 국제 상인들의 안전을 보장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말라카 해협은 해적들이 들끓던 곳이었습니다. 말라카는 이런 해적들을 상대로 상인들을 보호하는 데 성공한 것입니다. 또한 교역 시설을 확충하여 화재 및 도난 방지를 위해 지하 창고까지 지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무역을 활성화 시키기 위해 노력했고, 법과 행정이 매우 정교하게 짜여져 있어 상인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 덕분에 말라카 왕국은 100년 넘게 흥성할 수 있었습니다.그러나 1511년 향료를 찾아나선 유럽의 포르투갈인들이 향료를 독점하기 위해 꼭 필요한 곳으로서 말라카를 침공, 치열하게 맞서 싸웠으나 결국 멸망 당합니다. 그 이후로는 네덜란드를 포함한 여러 유럽 세력에 의해 지배를 당하다 결국 영국의 영향권으로 완전히 편입되었습니다.유럽에서 나폴레옹 전쟁이 일어나자 영국의 동남아시아 진출은 급진전했습니다. 네덜란드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공격을 받아 정복당하고, 왕은 영국으로 망명해 아시아 지역에서의 네덜란드 지배권을 모두 영국에게 위임했습니다(1795). 그러자 영국은 더욱 대담하게 동남아시아 식민지 경영에 착수하여 페낭에 영국 상관을 설치하고, 말라카 및 바타비아를 접수했으며, 향료 제도에 이르기까지의 제해권을 장악했습니다.영국은 페낭을 얻었고, 이 곳을 시작으로 해서 1819년에 싱가포르를 건설하기까지 말레이 반도 지역에서의 영향력을 증대해 갔습니다. 1824년에는 네덜란드와 맺은 조약(런던 협약)에 의해 수마트라, 자와(한국에 익히 알려진 자바(Java)는 영문명) 등 현재의 인도네시아 지역은 네덜란드가, 말레이 반도 지역은 영국이 관할하기로 결정되었습니다. 결국 페낭, 말라카, 싱가포르를 한데 묶어 "해협 식민지(Straits Settlements)"를 만들기에 이릅니다(1826). 하지만 이 때까지의 영국의 관심은 무역로 장악이었을 뿐이고, 특히 중요한 것은 "중국으로의 길" 이었습니다. 해로상의 거점을 장악했으면 그걸로 충분했습니다. 당시까지는 말레이 반도에서 수익성 높은 자원이 생산되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19세기부터 영국은 말레이 반도 그 자체에 관심을 두게 되었습니다. 그 중심에는 주석이 있었는데, 주석을 이용한 함석 제조 기술이 발전하고 수요가 증대함으로써 말레이 반도의 주석 광산들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었던 것입니다.주석 광산의 운영에는 세 집단이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첫째는 주석 광산을 보유한 술탄이었고, 둘째는 그것을 운영하는 영국의 자본가들이었으며, 셋째는 바로 주석 광산에서 일하는 중국인 노동자들이었습니다. 이렇게 말레이 반도로 건너온 중국인들이 뛰어난 교육열과 부지런함으로 영국령 말레이시아의 중간 공무원들이 되기도 하고 말레이시아의 경제권을 장악하기도 하면서 소외된 말레이계 사람들과 점점 반목하게 됩니다. 당시 영국인들은 말레이계열은 착하고 성실하지만 단순하고 게으르고, 중국인들은 능력있지만 영악하다고 평가했습니다. 이러한 편향적인 말레이계-중국계 고정관념은 동남아에선 아직도 통합니다. 심지어 멀리 떨어진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도 통합니다. 영국인 지주들은 말레이계 사람들을 하인으로 삼아 집안일을 시켰고 중국계를 부두나 시장에서 일하게 했는데, 이 때문에 아직도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인구 통계 작성시에 "기타" 항목이 아닌 별도 항목으로 작성될 정도로 숫자가 많습니다.한편 19세기 말부터 급격히 확대되기 시작한 고무 플랜테이션 역시 말라야의 경제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20세기 초가 되면 고무가 말라야의 주 수출품목으로서 주석과 경쟁하게 되었으며, 1920년대와 1930년대에는 말레이 반도의 고무 농장 면적이 전 세계 고무 농장 면적의 절반에 달할 정도였습니다. 주석의 생산을 주로 중국계 광산 노동자들이 담당했다면, 고무 생산은 주로 계약이민으로 넘어온 인도계 농장 노동자들이 담당하였습니다. 20세기 초 고무 산업의 급성장에 발맞추어 말라야의 인도계 이민자 인구도 급격하게 증가하였습니다. 고무 농장은 주로 페락, 슬랑오르, 크다, 조호르, 느그리슴빌란 5개 주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이렇게 영국의 술탄들을 통한 간접적인 통치는 계속되는데, 일본이 태평양 전쟁을 일으킵니다. 말레이 반도를 점령한 일본은 군정 체제를 설립하였고, 일본은 결국 패배하여 항복합니다. 이후에 돌아온 영국은 말레이시아에 자치를, 그리고 1957년에 독립을 허용합니다.영국은 말라야의 여러 술탄국들이 한나라가 되어 말레이계, 중국계, 인도계가 같이 말라야인으로서 살게 된다는 이상을 가지고 독립을 시킨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말레이인들은 불만을 품었습니다.  화교계가 말레이시아의 경제를 점령하게 되니 말레이인들은 당연히 참지 못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영국, 말레이계, 중국계 지도자들의 합심으로 독립은 해냈습니다. 말레이계가 군인과 경찰, 공무원 쪽을 차지하게 되고, 공용어는 말레이어로, 교육과 경제정책은 말레이 계열을 우대하는 한편으로, 중국계나 인도계도 말라야 국민으로서 그대로 말라야에서 살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 경제적 기득권도 빼앗지 않고 계속 인정해 준다는 것이 요지 였습니다.싱가포르와 보르네오 섬의 사라왁, 사바 지역은 영국에서 독립한 후 말라야 가입을 저울질하고 있었습니다싱가포르가 특히 문제였는데, 말레이시아는 말레이계가 다수이지만 싱가포르만은 중국계 화교가 압도적 다수였던 것입니다. 거기다가 싱가포르는 식민지 시절부터 말레이 반도의 압도적인 경제 중심지. 말라야는 중국인이 다수인 싱가포르 사람들이 들어와서 경제를 휘어잡을까 우려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와 잠시 합쳤졌습니다. 말라야에 싱가포르, 사라왁, 사바가 편입, 나라가 확대, 개편되면서 나라 이름도 말레이시아로 고쳤습니다.당시 싱가포르 주의 총리였던 리콴유는 "말레이시아인들의 말레이시아"(Malaysian Malaysia)를 주창했다. 인종에 상관 없이 "말레이시아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모든 말레이시아인에게는 똑같은 권리와 책임이 있다는 주장이었습니다. 말레이계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정책이었습니다. 경제나 학업면에서 말레이계가 너무 뒤쳐져 있으니 이대로 똑같이 평등하다면 말레이계는 말레이시아 사회에서 낙오될 수밖에 없다고 판단되었던 것입니다. 물론 리콴유-싱가포르-중국계의 주장도 충분히 이해할 만한 것이었습니다. 어쨌든 국가적인 중국계 차별은 중국계에겐 억울한데다가, 중국계라고는 해도 몇 대째 말레이시아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이런 치열한 국가관의 차이는 신생 독립국의 존립을 흔드는 위험한 문제였습니다. 결국 1965년 말레이시아는 싱가포르 주를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쫓아내기로 합니다. 그리고 싱가포르 주의 총리 리콴유는 울면서 독립을 선언합니다.말레이시아 국토 총면적은 329,847㎢ 총인구는 32,042,458명으로 일인당 명목 GDP는 10,703달러로 1인당 PPP는 30,815달러 입니다.

 

 

*말레이시아 군대 총병력과 지상군 총병력

 말레이시아 군대 총병력은 120,000명으로 예비군은 310,000명 입니다.이중 지상군은 90,000명으로 예비군은 300,000명 입니다.병역제도는 징병제로 남녀공동으로 3개월 복무 입니다.

*TANK

말레이시아가 보유한 TANK는 폴란드제 PT-91M 중전차 48대,FV-101 스콜피온 경전차 26대를 보유 합니다.

 

말레이시아 국군의날에 전시된 PT-91M 중전차.PT-91은 폴란드의 주력전차 입니다. T-72M1을 기반으로 개발됐으며 1995년부터 실전배치에 들어갔습니다.

*제원

-개발국가 :폴란드의 기폴란드
-개발사 :OBRUM
-개발년도:1991년~
-생산기간:1985년~
-사용국가: 폴란드의 기폴란드
                  말레이시아의 기말레이시아
-생산 대수:280대+
-승무원:3명
-길이:6.95 m
-높이:2.19 m
-폭:3.50 m (11.5 ft)
-중량 :48.5t
-주무장:125 mm 2A46 활강포
-장전 방식 :수동장전
-부무장:12.7 mm external AA MG, 500 rds,7.62 mm coaxial MG, 3000 rds 두정
-엔진:PZL-Wola S-1000R diesel
-엔진마력 :1,000 hp (764 kW)
-출력/중량 :20.6 hp/t (16 kW/t)
-현가장치: 토션바
-노상 속도: 70 km/h
-기동 가능 거리: 500km

 

말레이시아 육군 FV101 스콜피온 경전차( 주포는 Cockerill 90mm  라이플포입니다.)

*장갑차

말레이시아 지상군이 보유한 장갑차는  터키제 ACV-300Adnan 보병전투차 267대.터키제 AV-8 Gempita 보병전투차 257대,한국제 K-200A1 보병수송차,영국제 Alvis 스토머 보병수송차 25대,독일제 콘도르 보병수송차 400대,태국제 AV4 Lipanbara 보병수송차34대,캐나다제 가디안 보병수송차 9대,페렛 정찰 장갑차 92대,SIMBAS 정찰 장갑차 186대를 보유 합니다.

 

말레이시아육군 페렛 정찰 장갑차


말레이시아 독립 기념일 퍼레이드에 등장한 말레이시아 육군 스토머 보병수송차

 

 

말레이시아 군사퍼레이드에 등장한  AV4 Lipanbara 보병수송차


말레이시아 독립기념일 퍼레이드에 등장한 K-200A1 보병수송차

 

2018년 말레이시아 독립기념일 퍼레이드에 등장한 코도르 보병수송차(사진의 장갑차의 탑재무장은 FN-MAG 기관총)

말레이시아 군사퍼레이드에서 시가행진중인 말레이시아 육군 콘도르 20mm 기관포 탑재 보병수송차

말레이시아 군사퍼레이드에 등장한 AV-8 Gempita 보병전투차(탑재무장:25mm 기관포 탑재)

 

말레이시아 군사퍼레이드에 등장한 ACV-300Adnan 보병전투차(25mm M242 기관포 탑재)

전시되어 있는 가디안 보병 수송차

 

 말레이시아 육군 SIMBAS 정찰 장갑차(탑재무장은 Cockerill 90mm  라이플포)

*포병(박격포포함)

 말레이시아 지상군이 보유한 포병무기는 M109A5 155mm 자주포 29문,남아프리카 공화국제 데넬 G-5 155mm 견인포 28문,FH-70 155mm 견인포 15문,오토멜라사 Mod 56 105mm 견인포 110문,M102 105mm 견인포 40문,프랑스제 LG-1 105mm 견인포 18문,브라질제 Astros II 300mm 다련장 로켓포 54개세트를 보유 합니다.보병을 지원하는 박격포는 60mm 코만도 경박격포는 300문,유고슬라비아제 M69B 81mm 박격포를 보유 합니다.

 

M109A5 155mm 자주포

 

FH-70 155mm 견인포

 

전시되어 있는 데넬 G-5 155mm 견인포

 

 오토멜라사 M56 105mm 산악포

 

말레이시아 육군 Astros II 300mm 다련장 로켓포

60mm 코만도 60mm 경박격포를 어깨에 얹고 말레이시아 군인

 M69B 81mm 박격포 포탄을 발사하고 있는 말레이시아 군인들

 

 



TOTAL: 737

番号 タイトル ライター 参照 推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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マレーシア-地上軍(陸軍航空隊) kanoe_yuuko 2019-02-07 1248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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マレーシア-地上軍(5) kanoe_yuuko 2019-02-07 2233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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マレーシア-地上軍(4) (2) kanoe_yuuko 2019-02-07 1567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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マレーシア-地上軍(3) kanoe_yuuko 2019-01-30 1076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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マレーシア-地上軍(2) kanoe_yuuko 2019-01-30 1316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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イラク-海兵隊 kanoe_yuuko 2019-01-22 890 0
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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イラク-海軍 kanoe_yuuko 2019-01-22 1652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