伝統文化

 お寺が山に行くようになった理由が朝鮮時代の仏教弾圧のためだと言う単純な人が 多いようだがそれは極めて小さな部分に通らない理由であるだけだ. 山寺には木造建物が朝鮮時代の物が大部分だと言っても塔や建物の気団, 石物たちは古代の物をよく見られるのに少なくともその時期からその席に引きずって行ったあったはずだ. お寺が警察取り締まりを被害通う屋台でもなくてどんなにそんなに単純に思うことができるか.

 新羅が統一事業をしたくらいに国境近くに新たに確張した領土を経営するために山にお寺を建立して経営したりしたが本格的に山寺の伝統の始まったことは禅宗が流入され始めた 9世紀時からだった. 禅宗は教宗とは違い経典にかたよらない主観的事由と自分の遂行を重視したから全国の住んだあちこちに 九山禅門という当時思想を主導した僧侶集団が生ずるようになる.

 引きずって行った初めて立てられた後にも必要によって, 思想によって新しい建物ができて消えたり戦乱の被害を被って弊社されるとかまた重唱されたりするのに時代によって引きずって行った多くの変化を経験して来た. 今私たちが見られる大部分の査察の姿は朝鮮時代に成り立った姿で古代に立てられた絶義姿とは多くの差がある.

 

 教科書に出る有名な国宝建築や遺物もなくて 884mの曹渓山を間に置いて反対側僧宝の寺である松広寺のあつい人気に選り分けられたお寺仙岩寺. とても有名なお寺ではないが分かる人々はこのお寺の価値を高く評価する隠された宝石とも同じ漬ける.

 このお寺へ行くには 1km 以上の長いフックギルをかけなければならない. 道は森と谷をはめているのに行ってから会う 2個の石になった虹橋とそこに重なった樓閣の姿は仙岩寺の代表的な場面だ.

 

 

 記録には 6世紀の時創建されたと伝えるがお寺が結構規模を取り揃えたことは高麗の時大覚国師義天が重唱してからで壬辰の乱の時大部分火に燃えてからまた立てられたし 18世紀には王室のワンチァルで多くのくだされ物を受けた時代もあったが社勢が徐徐に傾いて朝鮮戦争の時部分的に被害を被るなど多くの試練たちがあったが何回の重唱を経って現在の姿を持つようになる.

 

 

 仙岩寺配置の特徴は多くの建物が集まって一つの建物群を成して多くの建物群が集まって一つの寺を成すのにどの領域も中心軸に属しないで各自の中心軸を持って個性的で固有した空間を成しているというのにある.

 

 一つの建物群を見ても法堂と僧房が揃った一つの完成されている小さなお寺でありこんないくつかの小さなお寺が集まったのが仙岩寺で小さなお寺が加わっても抜けても仙岩寺のアイデンティティは消えない. 全体位価値のある部分が集まって作った山伏たちの回りなさいと言える.

 部分を全体で縛ってくれることは道と水だ. 建物君と建物だね間を受け継ぐ道は狭かったり広くなってつながっていながらも断絶される. まるで田舍村の道を歩くことのようななごやかさがある. そして山から流れて来る清い水はお寺あちこちにある池たちにとどまって行って谷に流れる.

 

 

 古代の引きずって行った主に都市中の広い平地に立てられて平面が左右対称的で数学的に計算された幾何的な配置をしているし四角形の歩廊が寺をくるんでいる. 統一新羅末期に初期の山寺の姿もこれとあまり違わなかったが徐徐に配置が地形や時代によって変わられた教理, 人間の必要によって自由な配置をたたえるようになる.

 朝鮮時代のお寺で一番有り勝ちに見られる 基本的な構造は北に法堂があって左右に僧房とファインプレーが配置されて南側には野外法堂や休息の空間で樓閣が配置される. そして主要信徒たちが貴族で平民たちに変わりながら彼らに人気ある病気を直してくれる薬剤師部処やメシアだと言える弥勒部処の面倒を見た法堂が多くのお寺でたくさん作られるようになって民間信仰とも結合が成り立つ. 韓国の引きずって行った多様な部処と下位信仰が結合した総合仏教の性格を持つようになる.

 

 

 

仙岩寺には多くの軒の僧房建物があるのに内部の庭先を中心に 口字の配置を持って 2階あるいは 2.5階の立体的な構成をしている. 4面中に 1面は広くて天井が高くて集まって食事をするとか遂行をする共同空間で使われて残り 3面は 2階で構成されて 1階は個人部屋, 台所, 床などが置かれて 2階は食料品倉庫や休息空間で使われる.

 こんな外部に閉鎖的な 構成は遂行に邪魔されないでプライバシーを保護するためで入口も人がよくいる台所を通じるようになっていて外部の通行を自然に見張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なる. この前に僧侶がとても多い時にはそれぞれの建物によって僧侶たちが独立された組職で属していた.

 

 

 僧侶たちの生活で労動も遂行過程の中に一つで相当部分が自給自足で成り立つ. 山奥から流れ出る水を飲み水で使いながらお皿を洗うとか洗うのに使う. この 4個のドルファックはすごい飾りや技巧は見えないが僧侶たちの日常が盛られている立派な芸術品だ. 手順によって一番目は仏様にあげる水や 茶を煎ずるのに使って二番目は飲み水やご飯を 炊く時, 三番目は野菜や果物を洗う時, 四番目は洗濯をするとか手を洗うのに使う.

 

 

 お寺あちこちを貫く水を汲んだあちこちに大きいとか小さな池成すのにこのお寺は過去に火事がよほど多かったから水を保存しておく事は重要だった.

 

 

 600年位になったという梅なのにこの外にも仙岩寺には古い木木が建物と一団となっている. 建物が集まって建物群を成して建物群が集まって領域群を成して領域群は自然と会って完結された巨大な建築を成す. 木も道も垣根も建物も水路も酸度皆建築の一部分であることだ.

 

 

 境内には多くの種類の花木たちが多いのに季節によって他の種類の花が咲き始めて特に春に花事態が起きる仙岩寺の風景は長官だと言える. この外にも秋には紅葉と銀杏が赤色と黄色で染まって季節ごとに絶義姿は変わる. お寺裏手にはツックバックナム森と野生茶畑があって絶義景観と一団となる.

 

 

 

 仙岩寺で有名なトイレで文化財資料に指定されている. T字の平面に 2階になっているのに 2階で座って用を足せば外にサルチァングで風が筒と外の森を鑑賞することができるのに 建築家金水芹が一番美しいトイレと言ったしトイレは芸術家たちに哲学的な空間であることか詩人正号僧衣 詩 など多くの作品にも登場する所でもある.

 


산사

 절이 산으로 가게 된 이유가 조선시대의 불교탄압 때문이라고 말하는 단순한 사람이 많은 듯하지만 그것은 극히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 이유일 뿐이다. 산사에는 목조건물이 조선시대의 것이 대부분이라고 하더라도 탑이나 건물의 기단, 석물들은 고대의 것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적어도 그 시기부터 그 자리에 절은 있었을 것이다. 절이 경찰 단속을 피해다니는 포장마차도 아니고 어떻게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할 수 있을까.

 신라가 통일사업을 하던 쯤에 국경 근처에 새로 확장한 영토를 경영하기 위해 산에 절을 건립하여 경영하기도 했지만 본격적으로 산사의 전통이 시작된 것은 선종이 유입되기 시작한 9세기 때부터였다. 선종은 교종과는 달리 경전에 치우치지 않은 주관적 사유와 자기 수행을 중시하였기 때문에 전국의 산 곳곳에 九山禪門이라는 당시 사상을 주도한 승려집단이 생기게 된다.

 절은 처음 세워진 뒤에도 필요에 따라, 사상에 따라 새로운 건물이 생겨나고 없어지기도 하고 전란의 피해를 입어 폐사되거나 다시 중창되기도 하는데 시대에 따라 절은 많은 변화를 겪어왔다.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대부분의 사찰의 모습은 조선시대에 이루어진 모습으로 고대에 세워진 절의 모습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교과서에 나오는 유명한 국보 건축이나 유물도 없고 884m의 조계산을 사이에 두고 반대편 승보사찰인 송광사의 유명세에 가려진 절 선암사. 아주 유명한 절은 아니지만 알만한 사람들은 이 절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숨겨진 보석과도 같은 절이다.

 이 절에 가려면 1km 이상의 긴 흙길을 걸어야 한다. 길은 숲과 계곡을 끼고 있는데 가다가 만나게 되는 2개의 돌로 된 무지개 다리와 거기에 겹쳐진 누각의 모습은 선암사의 대표적인 장면이다.

 

 

 기록에는 6세기 때 창건되었다고 전하지만 절이 제법 규모를 갖춘 것은 고려 때 대각국사 의천이 중창하면서부터이며 임진왜란 때 대부분 불에 탔다가 다시 세워졌고 18세기에는 왕실의 원찰로 많은 하사품을 받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사세가 점차 기울고 한국전쟁 때 부분적으로 피해를 입는 등 여러 시련들이 있었지만 여러 번의 중창을 거쳐 현재의 모습을 가지게 된다.

 

 

 선암사 배치의 특징은 여러 건물들이 모여 하나의 건물群을 이루고 여러 건물群이 모여 하나의 절을 이루는데 어느 영역도 중심축에 종속되지 않고 각자의 중심축을 가지고 개성적이고 고유한 공간을 이루고 있다는데 있다.

 하나의 건물群을 보아도 법당과 승방이 갖추어진 하나의 완성되어 있는 작은 절이며 이런 여러 개의 작은 절이 모인 것이 선암사이며 작은 절이 더해져도 빠져도 선암사의 정체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전체만큼 가치있는 부분이 모여 만든 수도자들의 도시라고 할 수 있다.

 부분을 전체로 묶어주는 것은 길과 물이다. 건물군과 건물군 사이를 이어주는 길은 좁다가 넓어지고 이어지다가도 단절된다. 마치 시골마을의 길을 걷는 것과 같은 포근함이 있다. 그리고 산에서 흘러오는 맑은 물은 절 곳곳에 있는 연못들에 머물다가 계곡으로 흘러간다.

 

 

 고대의 절은 주로 도시 중의 넓은 평지에 세워져 평면이 좌우대칭적이며 수학적으로 계산된 기하적인 배치를 하고 있으며 사각형의 회랑이 절을 감싸고 있다. 통일신라 말기에 초기의 산사의 모습도 이것과 별로 다르지 않았겠지만 점차 배치가 지형이나 시대에 따라 바뀌어진 교리, 인간의 필요에 따라 자유로운 배치를 띄게 된다.

 조선시대의 절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기본적인 구조는 북쪽에 법당이 있고 좌우에 승방과 선방이 배치되며 남쪽에는 야외법당이나 휴식의 공간으로 누각이 배치된다. 그리고 주요 신도들이 귀족에서 평민들로 바뀌면서 그들에게 인기있는 병을 고쳐주는 약사부처이나 메시아라고 할 수 있는 미륵부처를 모신 법당이 여러 절에서 많이 만들어지게 되고 민간신앙과도 결합이 이루어진다. 한국의 절은 다양한 부처와 하위신앙이 결합한 종합불교의 성격을 가지게 된다.

 

 

선암사에는 여러 채의 승방건물이 있는데 내부의 마당을 중심으로 口字의 배치를 가지며 2층 혹은 2.5층의 입체적인 구성을 하고 있다. 4면 중에 1면은 넓고 천장이 높아 모여서 식사를 하거나 수행을 하는 공동공간으로 쓰이고 나머지 3면은 2층으로 구성되어 1층은 개인방, 부엌, 마루 등이 놓이고 2층은 식료품 창고나 휴식공간으로 쓰인다.

 이런 외부에 폐쇄적인 구성은 수행에 방해받지 않고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기 위함이며 입구도 사람이 자주 있는 부엌을 통하게 되어 있어 외부의 통행을 자연스럽게 감시할 수 있게 된다. 예전에 승려가 아주 많을 때에는 각각의 건물에 따라 승려들이 독립된 조직으로 소속되어 있었다.

 

 

 승려들의 생활에서 노동도 수행과정 중에 하나이며 상당부분이 자급자족으로 이루어진다. 산 속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식수로 사용하며 설거지를 하거나 씻는데 사용한다. 이 4개의 돌확은 대단한 장식이나 기교는 보이지 않지만 승려들의 일상이 담겨있는 훌륭한 예술품이다. 순서에 따라 첫번째는 부처님에 올리는 물이나 茶를 달이는데 사용하고 두번째는 식수나 밥을 지을 때, 세번째는 채소나 과일을 씻을 때, 네번째는 빨래를 하거나 손을 씻는데 사용한다.

 

 

 절 곳곳을 관통하는 물길은 곳곳에 크거나 작은 연못 이루는데 이 절은 과거에 화재가 상당히 많았기 때문에 물을 저장해두는 일은 중요하였다.

 

 

 600년 정도 되었다는 매화나무인데 이 외에도 선암사에는 오래된 나무들이 건물들과 어우러져 있다. 건물이 모여 건물群을 이루고 건물群이 모여 영역群을 이루고 영역群은 자연과 만나 완결된 거대한 건축을 이룬다. 나무도 길도 담장도 건물도 물길도 산도 모두 건축의 일부분인 것이다.

 

 

 경내에는 여러 종류의 꽃나무들이 많은데 계절에 따라 다른 종류의 꽃이 피어나고 특히 봄에 꽃사태가 일어나는 선암사의 풍경은 장관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외에도 가을에는 단풍과 은행나무가 빨간색과 노란색으로 물들고 계절마다 절의 모습은 달라진다. 절 뒤편에는 측백나무 숲과 야생 차밭이 있어 절의 경관과 어우러진다.

 

 

 선암사에서 유명한 화장실로 문화재 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T字의 평면에 2층으로 되어있는데 2층에서 앉아서 볼일을 보면 바깥에 살창으로 바람이 통하고 바깥의 숲을 감상할 수 있는데 건축가 김수근이 가장 아름다운 화장실이라 했고 화장실은 예술가들에게 철학적인 공간인 것인지 시인 정호승의 詩 등 여러 작품에도 등장하는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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