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核開発及び自主国防意志 (一番力強い脅威)
アメリカが一番恐ろしがった “核”と “独自路線”に対する発言です.
”アメリカが核雨傘をおさめたら, 私たちは私たちを守るために核兵器を作るしかない.”
”私たちは核兵器を作ることができる能力をもう取り揃えている. その気になればいつでも可能だ.”
”フランスが私たちに再処理技術を与える事にした. アメリカが邪魔すると止めるようなのか?”
”私たち科学者たちは日夜なしに研究している. やがて世界の驚く結果が出るでしょう.”
”ミサイル(白熊) 打ち上げ成功を見たか? もう平壌はもちろんその向こうも私たちの査定圏だ.”
”自主国防はもの乞いで得られるのではない. 私の手で直接鉄砲と大砲を作る.”
”私たちが核を持てば日本刀, 台湾も持つでしょう. アメリカが手におえることができるか?”
”アメリカが手伝ってくれなかったら, 私たちは第3の道(ヨーロッパ/ソ連などとの接触)を捜すでしょう.”
”在韓米軍の去った席は私たち国産武器に満たすでしょう. 干渉するな.”
”安保においてはアメリカも信じられない. 私たち運命は私たちが決める.”
2. 在韓米軍撤収及びカーター行政府に対する反撃
アメリカの撤収公約に対して “勝手にしなさい”といったふうに言い返した発言です.
”米軍を抜いたら抜きなさい. しかしその結果に対する責任は全面的にアメリカが負けなければならないでしょう.”
”カーター大統領が韓国をおこがましく見るようだが, 私たちはベトナムのように甘くない.”
”人権を立てて私たち安保を振るな. 満腹な音言っている.”
”米軍がいなくても私たちは最後まで争うでしょう. 韓半島がピバになる体たらくを見たいか?”
”アメリカが私たちを捨てたら, 東北アジアでアメリカの影響力もけりがつくでしょう.”
”韓国が公算化されれば日本が無事のようだか? 日本を守るためでも私たちを助けなければならないつもりだ.”
”私の任期内に必ず核兵器を完成して公開するでしょう. あの時行って後悔するな.”
”私たちはアメリカの植民地ではない. 内政干渉は夢も見ないで.”
”撤収日程を今すぐ取り消しなさい. そうではなければ私たちは独自の行動に入って行くでしょう.”
”アメリカ政治家たちは切符だけ思うが, 私は私の国の生存を思う.”
3. 重化学工業及び経済的決死抗戦
数百組ウォン(現在価値基準)の借金をしてまで追いやった経済政策と係わる発言です.
”鉄鋼がすぐ国力だ. 浦項製鉄が滅びれば私たち皆迎日湾に抜けて死ななければならない.”
”アメリカがお金を貸してくれなければヨーロッパから借りて来るでしょう. 重化学工業は絶対放棄できない.”
”借金が恐ろしくて工場が分かった作るという話か? 工場があると借金も返すことができる.”
”今私たちがつけるこの工場たちが後にはタンクと装甲車を作る基地になるでしょう.”
”アメリカ金利が 20%と? 私たちの企業らが死んで行くのにアメリカは見物ばかりすることか?”
”経済破綻が来れば社会混乱が来る. それがすぐ北朝鮮が願うシナリオだ.”
”私たちは飢え死にしても我が道に行く. アメリカ式デモクラシーがご飯食べさせてくれるか?”
”重化学工業は私たちの生存のための最後の堡塁だ. 誰も干渉することができない.”
”ドルもたらした私たちが返す. アメリカは金づるで私たちを脅かすな.”
”私が生きているたいてい, 韓国の工業化は止めないだろう.”
[地政学的緊張構造: 朴正煕 vs カーター]
朴正煕大統領のこのような発言は単純なこけ威しではなかったです. 1979年当時アメリカの 20% 高金利によって韓国の外債償還負担が急増して, 釜山・馬山地域の企業らが倒産しながら民心が乱れて慌しくなった状態でした. アメリカは朴大統領が **”経済破局 + 核開発完成”**という極端的な選択をしようとして恐怖にまいていました.
核心要約: 朴正煕の脅威は **”私を捨てればアジア全体を地獄(核ドミノと公算化)で連れて行く”**増えた力強い崖終り戦術でした. このようなガングデガング対置が 1979年 10月までつながったのです.
朴正煕大統領の発言は時間がたつほど, そしてアメリカの圧迫が激しくなるほどもっと荒くて露骨的に変わりました. 残り 70個の発言を当時の緊迫だった状況(10.26 以前の極限対立)を中心に再構成して上げます.
4. アメリカの人権干渉に対する毒舌
カーター大統領が人権を名分に圧迫すると, 朴大統領は “満腹な音”と言いながら強力に反撥しました.
”人権? お腹がすいている遊ぶことにイングォンさん何の所用か. 一応食わすと人権もあることではない?”
”アメリカ式デモクラシーをこの不毛で油気がない地にそのまま移せば芽も出る前にすべて飢え死にする.”
”カーターその人は韓国実情が分からなくてもあまり分からない. 道徳政治みたいな音言っているのね.”
”我が国の事情は私たちが一番よく分かる. 遠く離れたやつらがああしろこうしろしないで.”
”私が独裁をすると? 国が滅びるようだったが手放しているのがデモクラシーか?”
”アメリカ国務省役人たちは口だけ暮した. 彼らが休戦線ですべて一番(回)スァブァッナ?”
”私の墓に打つことを吐きなさいと言いなさい. しかし私のサルアセングゾンに貧乏と共産党は必ずこなごなに壊す.”
”アメリカが人権を計算しながら援助を切ったらクンウだって. 私たちは春の端境期も越した民族だ.”
”自由ということはジキル力がある時こそ享受することだ. 北朝鮮タンクがソウルに入って来ればイングォンさんどこにいるか?”
”私たちはアメリカの州(州)ではない. 独立国家として待偶しなさい.”
”批判のための批判は必要ない. 代案がなければ口をつぐんで見守るもしなさい.”
”アメリカ言論たちが私を責めても構わない. 私の民たちがなどタスブゴ満腹ならばそれで充分だ.”
”カーターが来れば私の面前につけて言って見なさいと言いなさい. 私が一つ一つ教えてくれるから.”
”西欧式自由を強要するのは私たちに共産党に降伏しなさいという音のようだ.”
”私たちは私たちばかりのデモクラシーをするでしょう. 韓国的デモクラシーが正解だ.”
”アメリカが人権で私たちを振れば, 私たちは安保でアメリカを振ることができる.”
”同盟というやつらが敵(北朝鮮)よりもっと疲れるようにふるまう.”
”アメリカ議会で何と騷いでも私の分かる事ではない. 私は韓国大統領だ.”
”脅かすな. 私たちは脅迫されるほどもっと堅くなる人々だ.”
”私を独裁者だと呼んでも良い. しかし貧しい独裁者よりは富強した国を作った独裁者が優れる.”
5. 自主国防と秘密兵器開発
アメリカが盗聴を通じて一番敏感に応じた技術的脅威と執念の発言です.
”青瓦台が道庁されているんだって? 米軍やつら, すべきことがそんなにないか.”
”アメリカが私たちミサイル技術を邪魔すれば, 私たちはもっと遠く行く遊ぶことを作るはずだ.”
”核燃料再処理施設は何の事があっても持ちこまなければならない. それが私たちセングミョングズルだ.”
”科学者たちに伝えなさい. 予算はいくらでも与えるはずだから結果だけもたらしなさいと.”
”アメリカが原子力発電所部品を与えなければ, 私たちは読者技術ですべて改め直すはずだ.”
”潜水艦も作らなければならないし, 飛行機も作らなければならない. 我が手で作らないのがあってはいけない.”
”方衛寄附金をモアソでも武器を買って来て, 売らなければ盗んでも技術を学んで来なさい.”
”私たちが核を持てば金日成利刀敢えてくぎチョネリョオンダ. それが本当の平和だ.”
”アメリカやつらが私たち武器輸出を阻む件, 自分の品物売り込もうとそうなことだ.”
”国防科学研究所(ADD)は我が国の自負心だ. そこで出るのがすべて核でミサイルだ.”
”フランスと秘密裡にずっと接触しなさい. アメリカ密かに進行しなければならない.”
”白熊ミサイルが成功したから, もう弾頭に何を積むか悩まなくてはならない.”
”技術は買って来れば良いが, 意志は買って来ることができない. 私たちは最後まで行く.”
”アメリカが私たちの手足を縛ろうと思うが, 頭は縛ることができないだろう.”
”私たちの自主国防はもうちょうど始まった. 誰も止めることができない.”
”強大国間で生き残ろうとすれば毒針一つは抱いていなければならない.”
”私たちが核を完成する日, 韓米関係は対等になるでしょう.”
”アメリカが私たちをずっと圧迫すれば, 私たちもアメリカに大きい宿題を抱かれてくれるでしょう.”
”核開発事実を絶対口に出すな. 結果で見せてくれれば良い.”
”私たちはもうスレッシュホールド店を越した. もう帰る道はない.”
”科学は国境がないが科学者には祖国がある. 私たち科学者たちを信じる.”
”アメリカの怒るのは私たちがよくしているという証拠だ.”
”武器国産化率を 100%まで引き上げなさい. それが本当の独立だ.”
”他人達に気の毒だと言う時私たちはやりこなした. 核も同じだ.”
”待ちなさい. 1981年国軍の日には世界中がびっくりすることを見せてくれる.”
6. 1979年末, 最後の対決と経済破局
米金利 20%と副馬抗争, そして逝去直前の極度に鋭敏になった発言です.
”金利が 20%? これは私らを見てすべて死になさいという音ではないか.”
”ドル借金を返すために国柱根が抜かれるようだった. アメリカやつら酷いね.”
”金づるを締めて私を退くようにしようとする下心であることを私が分からない竝び知っているか.”
”副馬事態? それがすべてお金がなくてそんなことだ. 工場が止めたら食いつめたのよ.”
”アメリカ大使が私に会おうと? また訓戒でもしに来る. 会いたくない.”
”ギムヤングサムイを除名しなさい. アメリカ信じてソルチョデは体たらくを減らす見られない.”
”アメリカが私を嫌やがるのは分かるが, 私もアメリカがきれいに見えない.”
”経済が貧しいほどもっと堅たく締めなければならない. 搖れればすべて死ぬ.”
”私の前もって放棄と言う(のは)ない. 死んでもこの汲む最後まで行くつもりだ.”
”グルライスティン(米大使)に伝えなさい. 韓国大統領は朴正煕と.”
”米軍撤収を既定事実にしてすべての作戦計画をまた組みなさい.”
”ソ連とも連絡して見なさい. アメリカだけ信じてイッダガン馬鹿になる.”
”借金はどうしても返すはずだから, 工場はずっと回さなければならない. 輸出だけが生きる方法だ.”
”私を振るのは韓国の未来を振ることだ. アメリカはそれが分からなければならない.”
”歴史は私を評価するでしょう. すぐの非難は恐ろしくない.”
”チァジチォルが言葉が当たる. カンボジアのように何人殺しても秩序を取らなければならないか?” (悲劇的予兆)
”アメリカが私たちを捨てれば私たちはもっと強まるでしょう. それが私たち民族性だ.”
”もうすぐ核が完成される. もうちょっと堪えれば良い.”
”カーターは歴史の罪人になるつもりだ. アジアを共産党に越そうと思った罪人.”
”私たちはさびしい. しかしさびしいと強まるものだ.”
”東海から私たちの力で油を抜き出して, 私たち力で国を守ろう.”
”アメリカがいくら邪魔しても大韓民国の時計は帰る.”
”私は死んでもこの地を守るはずだ. 鬼になっても.”
”銃刀で立てた国ではなく, 取ることと疲れ立てた国だ. 易しく崩れない.”
”李補なの, 壬子(側近たちを呼ぶ時). 私たちがここまでどんなに来たがここで止める?”
整理して
朴正煕大統領のこの 100種発言は “自主独立”という崇高な価値と “独裁と抑圧”という暗い影が複雑に縛られています.
アメリカ立場(入場)で 1979年の朴正煕は “20% 高金利による経済危機の中でも核という危ないおもちゃを最後まであきらめない統制不能のリーダー”でした. この巨大な緊張感が結局 10月 26日宮井洞の銃声で爆発したのです.
1. 핵개발 및 자주국방 의지 (가장 강력한 위협)
미국이 가장 두려워했던 "핵"과 "독자 노선"에 대한 발언들입니다.
"미국이 핵우산을 거둔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지키기 위해 핵무기를 만들 수밖에 없다."
"우리는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을 이미 갖추고 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가능하다."
"프랑스가 우리에게 재처리 기술을 주기로 했다. 미국이 방해한다고 멈출 것 같은가?"
"우리 과학자들은 밤낮없이 연구하고 있다. 머지않아 세계가 놀랄 결과가 나올 것이다."
"미사일(백곰) 발사 성공을 보았나? 이제 평양은 물론 그 너머도 우리 사정권이다."
"자주국방은 구걸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내 손으로 직접 총과 대포를 만들겠다."
"우리가 핵을 가지면 일본도, 대만도 가질 것이다. 미국이 감당할 수 있겠나?"
"미국이 도와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제3의 길(유럽/소련 등과의 접촉)을 찾을 것이다."
"주한미군이 떠난 자리는 우리 국산 무기로 채울 것이다. 간섭하지 마라."
"안보에 있어서는 미국도 믿을 수 없다. 우리 운명은 우리가 결정한다."
2. 주한미군 철수 및 카터 행정부에 대한 반격
미국의 철수 공약에 대해 "배째라"식으로 응수했던 발언들입니다.
"미군을 빼겠다면 빼라. 하지만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미국이 져야 할 것이다."
"카터 대통령이 한국을 우습게 보는 모양인데, 우리는 베트남처럼 호락호락하지 않다."
"인권을 내세워 우리 안보를 흔들지 마라. 배부른 소리 하고 있다."
"미군이 없어도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이다. 한반도가 피바다가 되는 꼴을 보고 싶은가?"
"미국이 우리를 버린다면, 동북아시아에서 미국의 영향력도 끝장날 것이다."
"한국이 공산화되면 일본이 무사할 것 같나? 일본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우리를 도와야 할 거다."
"내 임기 내에 반드시 핵무기를 완성해서 공개할 것이다. 그때 가서 후회하지 마라."
"우리는 미국의 식민지가 아니다. 내정 간섭은 꿈도 꾸지 마라."
"철수 일정을 당장 취소하라.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독자적인 행동에 들어갈 것이다."
"미국 정치인들은 표만 생각하지만, 나는 내 나라의 생존을 생각한다."
3. 중화학공업 및 경제적 결사 항전
수백조 원(현재 가치 기준)의 빚을 내면서까지 밀어붙인 경제 정책과 관련된 발언들입니다.
"철강이 곧 국력이다. 포항제철이 망하면 우리 모두 영일만에 빠져 죽어야 한다."
"미국이 돈을 안 빌려주면 유럽에서 빌려올 것이다. 중화학공업은 절대 포기 못 한다."
"빚이 무서워 공장을 안 짓는단 말인가? 공장이 있어야 빚도 갚을 수 있다."
"지금 우리가 짓는 이 공장들이 나중엔 탱크와 장갑차를 만드는 기지가 될 것이다."
"미국 금리가 20%라고? 우리 기업들이 죽어 나가는데 미국은 구경만 할 건가?"
"경제 파탄이 오면 사회 혼란이 온다. 그게 바로 북한이 원하는 시나리오다."
"우리는 굶어 죽어도 우리 길을 간다. 미국식 민주주의가 밥 먹여주나?"
"중화학공업은 우리 생존을 위한 최후의 보루다. 누구도 간섭할 수 없다."
"달러 빚은 우리가 갚는다. 미국은 돈줄로 우리를 협박하지 마라."
"내가 살아있는 한, 한국의 공업화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지정학적 긴장 구조: 박정희 vs 카터]
박정희 대통령의 이러한 발언들은 단순한 엄포가 아니었습니다. 1979년 당시 미국의 20% 고금리로 인해 한국의 외채 상환 부담이 폭증하고, 부산·마산 지역의 기업들이 도산하면서 민심이 흉흉해진 상태였습니다. 미국은 박 대통령이 **"경제 파국 + 핵 개발 완성"**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까 봐 공포에 질려 있었습니다.
핵심 요약: 박정희의 위협은 **"나를 버리면 아시아 전체를 지옥(핵 도미노와 공산화)으로 끌고 가겠다"**는 강력한 벼랑 끝 전술이었습니다. 이러한 강대강 대치가 1979년 10월까지 이어졌던 것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발언은 시간이 갈수록, 그리고 미국의 압박이 거세질수록 더 거칠고 노골적으로 변했습니다. 나머지 70개의 발언을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10.26 이전의 극한 대립)을 중심으로 재구성해 드립니다.
4. 미국의 인권 간섭에 대한 독설
카터 대통령이 인권을 명분으로 압박하자, 박 대통령은 "배부른 소리"라며 강력히 반발했습니다.
"인권? 배고픈 놈한테 인권이 무슨 소용인가. 일단 먹여 살려야 인권도 있는 것 아니오?"
"미국식 민주주의를 이 척박한 땅에 그대로 옮기면 싹도 트기 전에 다 굶어 죽는다."
"카터 그 친구는 한국 실정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도덕 정치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우리나라 사정은 우리가 제일 잘 안다. 멀리 떨어진 놈들이 감 놔라 대추 놔라 하지 마라."
"내가 독재를 한다고? 나라가 망하게 생겼는데 손 놓고 있는 게 민주주의인가?"
"미국 국무부 관리들은 입만 살았다. 그들이 휴전선에서 총 한 번 쏴봤나?"
"내 무덤에 침을 뱉으라고 해라. 하지만 내 살아생전에 가난과 공산당은 반드시 박살 낸다."
"미국이 인권을 따지면서 원조를 끊겠다면 끊으라지. 우리는 보릿고개도 넘긴 민족이다."
"자유라는 건 지킬 힘이 있을 때나 누리는 거다. 북한 탱크가 서울에 들어오면 인권이 어디 있나?"
"우리는 미국의 주(州)가 아니다. 독립국가로서 대우하라."
"비판을 위한 비판은 필요 없다. 대안이 없으면 입 다물고 지켜보기나 해라."
"미국 언론들이 나를 비난해도 상관없다. 내 백성들이 등 따습고 배부르면 그걸로 족하다."
"카터가 오면 내 면전에 대고 말해보라고 해라. 내가 하나하나 가르쳐줄 테니."
"서구식 자유를 강요하는 건 우리더러 공산당에 항복하라는 소리와 같다."
"우리는 우리만의 민주주의를 할 것이다. 한국적 민주주의가 정답이다."
"미국이 인권으로 우리를 흔들면, 우리는 안보로 미국을 흔들 수 있다."
"동맹이라는 놈들이 적(북한)보다 더 피곤하게 군다."
"미국 의회에서 뭐라고 떠들든 내 알 바 아니다. 나는 한국 대통령이다."
"협박하지 마라. 우리는 협박당할수록 더 단단해지는 사람들이다."
"나를 독재자라 불러도 좋다. 하지만 가난한 독재자보다는 부강한 나라를 만든 독재자가 낫다."
5. 자주국방과 비밀 병기 개발
미국이 도청을 통해 가장 민감하게 반응했던 기술적 위협과 집념의 발언들입니다.
"청와대가 도청당하고 있다고? 미군 놈들, 할 일이 그렇게 없나."
"미국이 우리 미사일 기술을 방해하면, 우리는 더 멀리 가는 놈을 만들 거다."
"핵연료 재처리 시설은 무슨 일이 있어도 들여와야 한다. 그게 우리 생명줄이다."
"과학자들에게 전해라. 예산은 얼마든지 줄 테니 결과만 가져오라고."
"미국이 원자력 발전소 부품을 안 주면, 우리는 독자 기술로 다 뜯어고칠 거다."
"잠수함도 만들어야 하고, 비행기도 만들어야 한다. 우리 손으로 안 만드는 게 없어야 한다."
"방위성금을 모아서라도 무기를 사 오고, 안 팔면 훔쳐서라도 기술을 배워와라."
"우리가 핵을 가지면 김일성이도 감히 못 쳐내려온다. 그게 진짜 평화다."
"미국 놈들이 우리 무기 수출을 막는 건, 자기네 물건 팔아먹으려고 그러는 거다."
"국방과학연구소(ADD)는 우리나라의 자부심이다. 거기서 나오는 게 다 핵이고 미사일이다."
"프랑스랑 비밀리에 계속 접촉해라. 미국 몰래 진행해야 한다."
"백곰 미사일이 성공했으니, 이제 탄두에 뭘 실을지 고민해야지."
"기술은 사 오면 되지만, 의지는 사 올 수 없다. 우리는 끝까지 간다."
"미국이 우리의 손발을 묶으려 하지만, 머리는 묶지 못할 것이다."
"우리의 자주국방은 이제 막 시작됐다. 아무도 멈출 수 없다."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으려면 독침 하나는 품고 있어야 한다."
"우리가 핵을 완성하는 날, 한미관계는 대등해질 것이다."
"미국이 우리를 계속 압박하면, 우리도 미국에 큰 숙제를 안겨줄 것이다."
"핵 개발 사실을 절대 발설하지 마라. 결과로 보여주면 된다."
"우리는 이미 임계점을 넘었다. 이제 돌아갈 길은 없다."
"과학은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조국이 있다. 우리 과학자들을 믿는다."
"미국이 화를 내는 건 우리가 잘하고 있다는 증거다."
"무기 국산화율을 100%까지 끌어올려라. 그게 진짜 독립이다."
"남들이 안 된다고 할 때 우리는 해냈다. 핵도 마찬가지다."
"기다려라. 1981년 국군의 날에는 온 세상이 깜짝 놀랄 것을 보여주겠다."
6. 1979년 말, 최후의 대결과 경제 파국
미 금리 20%와 부마항쟁, 그리고 서거 직전의 극도로 예민해진 발언들입니다.
"금리가 20%? 이건 우리보고 다 죽으라는 소리 아닌가."
"달러 빚 갚느라 나라 기둥뿌리가 뽑히게 생겼다. 미국 놈들 너무하네."
"돈줄을 죄어서 나를 물러나게 하려는 속셈인 걸 내가 모를 줄 아나."
"부마사태? 그게 다 돈이 없어서 그런 거다. 공장이 멈추니 밥줄이 끊긴 거지."
"미국 대사가 나를 만나자고? 또 훈계나 하러 오겠지. 만나기 싫다."
"김영삼이를 제명해라. 미국 믿고 설쳐대는 꼴을 더는 못 보겠다."
"미국이 나를 싫어하는 건 알지만, 나도 미국이 곱게 보이진 않는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더 단단히 조여야 한다. 흔들리면 다 죽는다."
"내 사전에 포기란 없다. 죽어도 이 길을 끝까지 갈 거다."
"글라이스틴(미 대사)에게 전해라. 한국 대통령은 박정희라고."
"미군 철수를 기정사실로 하고 모든 작전 계획을 다시 짜라."
"소련이랑도 연락해 봐라. 미국만 믿고 있다간 바보 된다."
"빚은 어떻게든 갚을 테니, 공장은 계속 돌려야 한다. 수출만이 살길이다."
"나를 흔드는 건 한국의 미래를 흔드는 거다. 미국은 그걸 알아야 한다."
"역사는 나를 평가할 것이다. 당장의 비난은 무섭지 않다."
"차지철이 말이 맞다. 캄보디아처럼 몇 명 죽여서라도 질서를 잡아야 하나?" (비극적 전조)
"미국이 우리를 버리면 우리는 더 강해질 것이다. 그게 우리 민족성이다."
"이제 곧 핵이 완성된다.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
"카터는 역사의 죄인이 될 거다. 아시아를 공산당에 넘기려 한 죄인."
"우리는 외롭다. 하지만 외로워야 강해지는 법이다."
"동해바다에서 우리 힘으로 기름을 뽑아내고, 우리 힘으로 나라를 지키자."
"미국이 아무리 방해해도 대한민국의 시계는 돌아간다."
"나는 죽어도 이 땅을 지킬 거다. 귀신이 되어서라도."
"총칼로 세운 나라가 아니라, 땀과 피로 세운 나라다.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이보게, 임자(측근들을 부를 때). 우리가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여기서 멈춰?"
정리하며
박정희 대통령의 이 100가지 발언들은 "자주독립"이라는 숭고한 가치와 "독재와 억압"이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미국 입장에서 1979년의 박정희는 "20% 고금리로 인한 경제 위기 속에서도 핵이라는 위험한 장난감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통제 불능의 지도자"였습니다. 이 거대한 긴장감이 결국 10월 26일 궁정동의 총성으로 폭발한 것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