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国最初建設鉄道
1. 京仁線
我が国の最初の鉄道である京仁線は初めにアメリカが主導しました.
手始め: 1896年アメリカ人 **モールス(James R. Morse)**が敷設権を獲得しました.
反転: モールスが資金難に逢着すると, 日本の “京人鉄道引受調合”が 1898年に至る仕こみました. 結局 1899年日本の技術と資本で開通しました.
2. 京義線
ソウルと新義州を引き継ぐ京義線は西欧圏と大韓帝国の自強努力が引き立った路線です.
手始め: 1896年フランスのフィブリル(Fives-Lille)社が敷設権を得ました.
自強努力: フランスが資金問題に着工することができないと, 大韓帝国政府は敷設権を回収して **”内臓院北風鉄道国”**を設置して直接工事を推進しました.
結末: しかし露日戦争が起こると日本軍が軍事的目的に建設中の鉄道敷地を無断占領して強制で完工させました.
3. 京釜線 (日本の執拗な攻略)
京釜線ははじめから日本が一番念を入れた路線です.
過程: 日本は 1894年 “朝日暫定合同條款”を 通じて京釜線敷設権を約束受けたし, 1898年に契約を締結しました.
強要された条約: 朝日暫定合同條款は日本軍が 1894年 7月 23日, 無力で景福宮を占領大闕を掌握してからわずか一月ぶりの 8月 20日に締結されました. すなわち, 大韓帝国(当時朝鮮)が自発的に締結したのではなく, 銃刀を先に立たせた強要によって結ばれた不平等条約でした.
名分: 条約第5条には “警部鉄道は日本政府が資金を用意して敷設権を得て行う”と言う内容が込められました. これは日本軍が韓半島内で日清戦争で兵力と物資を早く移動させるための軍事的通路を合法化しようとする意図でした.
日本はもう 1880年代から京釜線路線を秘密裡に測量するほどに執拗でした.
利権先行獲得: 当時アメリカ, フランスなど西欧列強たちが韓半島鉄道敷設権に関心を見せると, 日本は戦争という混乱を乗じてこれを先行獲得しようと思いました.
大陸侵略の手始め: 京釜線は日本列島と釜山港を引き継いで, またソウルを経って満洲に進む “大陸侵略の動脈”でした. これを確保することで日本は韓半島を自分たちの経済的・軍事的影響力の下完全に置こうと思ったのです.
土地掠奪と強制労動: 日本は鉄道敷地を確保するという名目で農民たちの地を捨値に奪うとか初めから補償なしに強奪しました. また, 隣近村住民たちを工事現場に強制に動員して無賃金労動と幾多の命を失いました
日本外務省記録 (韓国鉄道関係書類): 日本が当時大韓帝国の自力敷設をどんなに見張って邪魔したのか, そして露日戦争勃発後どんなに強奪したのかに大韓日本側の内部報告書が存在します.
# 無力と侵奪”が近代化なら, その論理はブーメランになる#
日本人たちの主張どおり “無力で株券を奪って施設を敷いてくれたことが近代化”なら, その論理は非常に危ない自家撞着に抜けます.
もし無力と強奪が近代化の正当な根拠ができれば, 後日誰か日本を無力に占領して彼らのシステムを破壊した後自分たちの便宜のための施設を設置しても日本はそれを “近代化の恩恵”と言いながら感謝しなければならないでしょう.
しかし 人類文明社で他人の生命と財産を踏み付けて株券をさんだつした行為を “発展”と呼び方はないです. それは近代化ではなく **”犯罪”**であり, 日本の残した鉄道は近代化の遺産ではなく **”収奪の傷あと”**仕事だけ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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いつか日本を近代化してくれる側だから, 韓国に感謝する準備やしてください. ^^
한국 최초 건설 철도
1. 경인선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은 처음에 미국이 주도했습니다.
시작: 1896년 미국인 **모스(James R. Morse)**가 부설권을 획득했습니다.
반전: 모스가 자금난에 봉착하자, 일본의 "경인철도인수조합"이 1898년에 이를 사들였습니다. 결국 1899년 일본의 기술과 자본으로 개통되었습니다.
2. 경의선
서울과 신의주를 잇는 경의선은 서구권과 대한제국의 자강 노력이 돋보였던 노선입니다.
시작: 1896년 프랑스의 피브릴(Fives-Lille)사가 부설권을 얻었습니다.
자강 노력: 프랑스가 자금 문제로 착공하지 못하자, 대한제국 정부는 부설권을 회수하여 **"내장원 북풍철도국"**을 설치하고 직접 공사를 추진했습니다.
결말: 하지만 러일전쟁이 터지자 일본군이 군사적 목적으로 건설중인 철도 부지를 무단 점령하고 강제로 완공시켰습니다.
3. 경부선 (일본의 집요한 공략)
경부선은 처음부터 일본이 가장 공을 들인 노선입니다.
과정: 일본은 1894년 "조일잠정합동조관"을 통해 경부선 부설권을 약속받았고, 1898년에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강요된 조약: 조일잠정합동조관은 일본군이 1894년 7월 23일, 무력으로 경복궁을 점령 대궐을 장악한 지 불과 한 달 만인 8월 20일에 체결되었습니다. 즉, 대한제국(당시 조선)이 자발적으로 체결한 것이 아니라, 총칼을 앞세운 강요에 의해 맺어진 불평등 조약이었습니다.
명분: 조약 제5조에는 "경부 철도는 일본 정부가 자금을 마련하여 부설권을 얻어 실행한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이는 일본군이 한반도 내에서 청일전쟁에서 병력과 물자를 빠르게 이동시키기 위한 군사적 통로를 합법화하려는 의도였습니다.
일본은 이미 1880년대부터 경부선 노선을 비밀리에 측량할 정도로 집요했습니다.
이권 선점: 당시 미국, 프랑스 등 서구 열강들이 한반도 철도 부설권에 관심을 보이자, 일본은 전쟁이라는 혼란을 틈타 이를 선점하려 했습니다.
대륙 침략의 시작: 경부선은 일본 열도와 부산항을 잇고, 다시 서울을 거쳐 만주로 나아가는 "대륙 침략의 동맥"이었습니다. 이를 확보함으로써 일본은 한반도를 자신들의 경제적·군사적 영향력 아래 완전히 두려 했던 것입니다.
토지 약탈과 강제 노동: 일본은 철도 부지를 확보한다는 명목으로 농민들의 땅을 헐값에 뺏거나 아예 보상 없이 강탈했습니다. 또한, 인근 마을 주민들을 공사 현장에 강제로 동원해 무임금 노동과 수많은 목숨을 잃었습니다
일본 외무성 기록 (한국철도관계 서류): 일본이 당시 대한제국의 자력 부설을 어떻게 감시하고 방해했는지, 그리고 러일전쟁 발발 후 어떻게 강탈했는지에 대한 일본 측의 내부 보고서가 존재합니다.
# 무력과 침탈"이 근대화라면, 그 논리는 부메랑이 된다#
일본인들의 주장대로 "무력으로 주권을 뺏고 시설을 깔아준 것이 근대화"라면, 그 논리는 매우 위험한 자가당착에 빠집니다.
만약 무력과 강탈이 근대화의 정당한 근거가 될 수 있다면, 훗날 누군가 일본을 무력으로 점령하고 그들의 시스템을 파괴한 뒤 자신들의 편의를 위한 시설을 설치하더라도 일본은 그것을 "근대화의 혜택"이라며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인류 문명사에서 타인의 생명과 재산을 짓밟고 주권을 찬탈한 행위를 "발전"이라 부르는 법은 없습니다. 그것은 근대화가 아니라 **"범죄"**이며, 일본이 남긴 철도는 근대화의 유산이 아니라 **"수탈의 흉터"**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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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일본을 근대화해 줄 테니, 한국에 감사할 준비나 하세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