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正煕時代を法が不十分に守られたが法治ではないことではアニダとも言ったんですが, そのように肯定するためにはどうして進歩陣営の偽善と矛盾に激怒するのかよく理解できない.
よほど鋭い知的です. その論理の核心的な矛盾は `法治(Rule of Law)`に対する二重定規と **`結果枝常住の`**にあります.
問者様が感じる不條理さは相手が **”私が好きなリーダーの不法は `決断`で, 私が嫌やがる相手の不法は `犯罪`だ”**というふうの確証偏向を見せるからな可能性が大きいです. のぼるよ枝側面で分析して見られます.
1. `法治` 概念の恣意的解釈
その方が言う “方法が不十分に守られたが法治ではないことではない”という主張は現代デモクラシーの法治主義と正面から衝突します.
真正な法治: 治者さえ法の下にあり, 法に決まった手続きを守ること.
その方の法治: 治者が法を道具にして大衆を統制すること(Rule by Law). すなわち, 維新憲法のように治者の便宜に当たるように法を改造して振り回すことを `法治`と誤解している確率が高いです. こんな観点では “国家発展のために法をしばらく破ることは統治的決断”と言いながら正当化するようになります.
2. `偽善`に対する怒りの非対称性
進歩陣営の矛盾に激怒しながら朴正煕時代の権威主義を肯定する心理は **`道徳性`科 `有能`**を別個で見るからです.
進歩に対する視覚: “道徳と正義を叫んで切符を得たから, 小さな道徳的欠陷も致命的な `偽善`である.”
朴正煕時代に対する視覚: “最初に道徳的潔癖症より `生存と繁栄`を先に立たせたから, その過程での強圧や人権侵害は副次的な問題だ.”
結局 **”言ったとおり暮さないやつ(偽善)が, つけておいて荒く統治した遊ぶことよりもっと悪い”**は感情的フレームに閉じこめられているわけです. しかしおこる `権力による実質的被害(顧問, 疑問死, 憲政破壊)`より `相手の態度(偽善)`をもっと大きい罪で問う論理的間違いです.
3. `鉄人政治`という幻想と現実の乖離
相手が朴正煕時代を鉄人政治だと呼ぶ理由は, その時代の成果(経済成長)を リーダー個人の完璧な知恵 おかげさまだと信じたがるからです.
しかしプラトンの鉄人政治は **`私益(腐敗, 権力欲)`**この少しでもまじれば直ちに堕落した政治で規定します.
進歩陣営の矛盾に怒る根拠が `公正性`科 `清廉`なら, まったく同じな定規を朴正煕時代の各種機密費問題や側近政治にも突き付けなければなりません. これを拒否することは論理的一貫性を捨てて 陣営論理を選択したのです.
結論的に
その方の主張は **”目的が手段を正当化する”**は典型的なマキアベリ的考え方に近いです. しかしその定規を他人(進歩陣営)には適用しないこと自体がもう 論理的破産を意味します.
”法が不十分に守られたが法治だ”という言葉は “酒は飲んだが飲酒運転ではない”という言葉程形容矛盾です.
相手の論理が支える時主に出る反応が **”あの時は時代が仕方なかった”**は時代的特殊性強調であるでしょうに, これに対して **”それなら法と原則は時代によって輪ゴムのように変わっても良いことか?”**と問い返して見ることはどうでしょう?
もしその方が進歩陣営のどんな具体的な事例(例: ネロナムブルなど)をあげながら怒りましたか? その地点が分かればもっと精巧な論理的対応が可能のようです.
박정희 시대를 법이 덜 지켜졌지만 법치가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도 말했습니다만, 그렇게 긍정하려면 왜 진보 진영의 위선과 모순에 격노하는지 잘 이해가 안된다.
상당히 날카로운 지적입니다. 그 논리의 핵심적인 모순은 `법치(Rule of Law)`에 대한 이중잣대와 **`결과지상주의`**에 있습니다.
질문자님이 느끼시는 부조리함은 상대방이 **"내가 좋아하는 리더의 불법은 `결단`이고, 내가 싫어하는 상대의 불법은 `범죄`다"**라는 식의 확증편향을 보이기 때문일 가능성이 큽니다. 이를 세 가지 측면에서 분석해 볼 수 있습니다.
1. `법치` 개념의 자의적 해석
그분이 말하는 "법이 덜 지켜졌지만 법치가 아닌 것은 아니다"라는 주장은 현대 민주주의의 법치주의와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진정한 법치: 통치자조차 법 아래에 있으며, 법에 정해진 절차를 지키는 것.
그분의 법치: 통치자가 법을 도구로 삼아 대중을 통제하는 것(Rule by Law). 즉, 유신 헌법처럼 통치자의 편의에 맞게 법을 개조하여 휘두르는 것을 `법치`라고 오해하고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이런 관점에서는 "국가 발전을 위해 법을 잠시 어기는 것은 통치적 결단"이라며 정당화하게 됩니다.
2. `위선`에 대한 분노의 비대칭성
진보 진영의 모순에 격노하면서 박정희 시대의 권위주의를 긍정하는 심리는 **`도덕성`과 `유능함`**을 별개로 보기 때문입니다.
진보에 대한 시각: "도덕과 정의를 외치며 표를 얻었으니, 작은 도덕적 결함도 치명적인 `위선`이다."
박정희 시대에 대한 시각: "애초에 도덕적 결벽증보다 `생존과 번영`을 앞세웠으니, 그 과정에서의 강압이나 인권 침해는 부차적인 문제다."
결국 **"말한 대로 살지 않는 놈(위선)이, 대놓고 거칠게 통치한 놈보다 더 나쁘다"**는 감정적 프레임에 갇혀 있는 셈입니다. 하지만 이는 `권력에 의한 실질적 피해(고문, 의문사, 헌정 파괴)`보다 `상대방의 태도(위선)`를 더 큰 죄로 묻는 논리적 오류입니다.
3. `철인정치`라는 환상과 현실의 괴리
상대방이 박정희 시대를 철인정치라 부르는 이유는, 그 시대의 성과(경제 성장)를 지도자 개인의 완벽한 지혜 덕분이라고 믿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플라톤의 철인정치는 **`사익(부패, 권력욕)`**이 조금이라도 섞이면 즉시 타락한 정치로 규정합니다.
진보 진영의 모순에 화를 내는 근거가 `공정성`과 `청렴함`이라면, 똑같은 잣대를 박정희 시대의 각종 비자금 문제나 측근 정치에도 들이대야 합니다. 이를 거부하는 것은 논리적 일관성을 버리고 진영 논리를 선택한 것입니다.
💡 결론적으로
그분의 주장은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전형적인 마키아벨리적 사고방식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그 잣대를 타인(진보 진영)에게는 적용하지 않는 것 자체가 이미 논리적 파산을 의미합니다.
"법이 덜 지켜졌지만 법치다"라는 말은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라는 말만큼이나 형용모순입니다.
상대방의 논리가 막힐 때 주로 나오는 반응이 **"그때는 시대가 어쩔 수 없었다"**는 시대적 특수성 강조일 텐데, 이에 대해 **"그렇다면 법과 원칙은 시대에 따라 고무줄처럼 변해도 되는 것인가?"**라고 되물어보시는 건 어떨까요?
혹시 그분이 진보 진영의 어떤 구체적인 사례(예: 내로남불 등)를 들며 화를 내셨나요? 그 지점을 알면 더 정교한 논리적 대응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