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시대 경덕왕조 (景德王組 재위 742년~765년)기록에 의하면 종래의 瓦器典을
도등국 (陶燈局)으로 기록했다는 기록이 있다
陶燈局은 기와나 그릇을 굽는 일을 맡아 보던 관청인데 신라는 이 陶燈局을 확대하여 관서(官署)로
승격시켜 도요 사업을 통할하여 감독하는 것으로 기간 (基間)요업이 발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신라의 요업은 선사시대 부터 발전해 왔던 토기에서 장족적으로 발전하여 여러가지 무늬를
그리거나 조각하고 유약을 사용한 제품을 생산하였다
유약을 입힌 도기를 시유도기 (施油陶器)라고 하는데 국내에서 제일 빠른 시기에 만들어진
施油陶器는 통일 신라시대의 전남 영암군 서구림리 가마터에서 확인되었다
통일 신라시대의 慶州의 안압지 황룡사지 미륵사지 부여 부소산 등 에서
唐代의 월주요 (越州窯) 청자와 형주요 (形州窯) 定窯 백자가 발견되고 있어
이 시대에 이미 청자나 백자에 대한 인식이 확대되어 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증거는 한국의 도자기 공예의 發祥期라고 하면
신라와 唐의 교역이 번성하던 8세기 중엽이 아닌가 추측된다
그러나 도자기의 예술적 발전과 함께 일반화한 문화로서 발전은 역시 고려시대
이후가 될 것이다

후삼국시대 부터 고려시대 초기에 형성된 고려청자 가마터 분포도

11세기 고려 백자 花形盞 盞 받침

12세기 고려 백자 象嵌 雷文馬上杯

12세기 고려 백자 참외 모양 주자와 승반 (承盤)

15세기 조선시대 백자 모란 무늬 대접
고려 백자의 전통을 이어 받은 작품으로 보입니다

18세기 북한 출토 문화재

18세기 북한 출토 문화재

19세기 龍 무늬 접시
고려시대는 9세기 중국으로 부터 받아들인 청자 제작 기술을 바탕으로 磁器요업이 확대되었고
또 陶器質과 磁器質로 양분되었다
청자 가마터는 西南 해안지방으로 널리 분포되어 있지만
백자 가마터는
경기도 용인시 西里 ..경기도 안양시 관악산 기슭 석수동 일대
경기도 여주 부평리 등 발굴되고 있다
중국의 경우 漢나라 시대 부터 백자가 제작되었다고 한다
고려에서 제작되던 연질 백자는 15세기 까지 생산되지만 드물게 있다
조선 초기에는 明의 영향을 받아 단단한 경질 백자가 나타났다
新羅時代景徳王組 (景徳王組 在位 742年‾765年)記録によれば従来の 瓦器典を
導燈国 (陶燈局)で記録したという記録がある
陶燈局は瓦や器を焼く事を引き受けて見ている官庁なのに新羅はこの 陶燈局を拡大して関西(官署)で
昇格させて陶窯事業を統轄して監督することで期間 (基間)窯業が発展していたことだ
新羅の窯業は先史時代から発展して来た土器で長足的に発展してさまざまな柄を
描くとか彫刻して上薬を使った製品を生産した
上薬を加えた陶器を市有陶器 (施油陶器)と言うのに国内で一番早い時期に作られた
施油陶器は統一新羅時代の全南霊岩郡西グリム里窯の焼き跡で確認された
統一新羅時代の 慶州の雁鴨池黄竜寺地彌箇寺地付与扶蘇山などで
唐代のワルズです (越州窯) 青磁瓦ヒョングズです (形州窯) 定窯 白磁が発見されていて
が時代にもう青磁や白磁に対する認識が拡がって行っていたことと見える
このような証拠は韓国の陶磁器工芸の 発祥期とすれば
新羅と 唐の交易が盛んだった 8世紀中葉ではないか推測される
しかし陶磁器の芸術的発展とともに一般化した文化として発展はやっぱり高麗時代
以後になるでしょう

後三国時代から高麗時代初期に形成された高麗青磁窯の焼き跡分布図

11世紀高麗白磁 花形盞 盞 下敷

12世紀高麗白磁 象嵌 雷文馬上杯

12世紀高麗白磁真桑瓜模様走者とスングバン (承盤)

15世紀朝鮮時代白磁牡丹柄もてなし
高麗白磁の伝統を受け継いだ作品と見えます

18世紀北朝鮮出土文化財

18世紀北朝鮮出土文化財

19世紀 竜 柄お皿
高麗時代は 9世紀中国にから受け入れた青磁製作技術を土台で 磁器窯業が拡がったし
また 陶器質と 磁器質で両分された
青磁窯の焼き跡は 西南 海岸地方に広く分布されているが
白磁窯の焼き跡は
京畿道竜仁市 西里 ..京畿道安養市冠岳山岸石手洞一帯
京畿道驪州富平里など発掘されている
中国の場合 漢奈良時代から白磁が製作されたと言う
高麗で製作された軟質白磁は 15世紀まで生産されるが珍しくある
朝鮮初期には 明の影響を受けて堅い更迭白磁が現われた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