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이야기다. 지금으로부터 ....그러니까 46년~47년전 것이라고
생각한다. 추억이다....
나이들면 추억으로 먹고산다고 했던가.추억으로 정서운동 한다고 하는가
나의 집안은 일본과 관계를 가지고있다. 불가에서는 인연법 한다.
인과 연으로 맺어진 어떠한 결과물로 만들어 진다.
소년시절 그리고 청년시절 그리고 40대넘어 중년으로 넘어서 여기까지
나는 일본이란 인연을 사실 별로....중요하게 생각없었다
아니였으면 청년시절 일본으로 건너가 어떤 생활을 할수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길을 선택없이 생활하고 살아왔다.
나이들어 이제 일본이 조금씩 나에게 닥아온다. 이것도 인연일까
서론으로 돌아가서....추억한다.
나는 부모님아래 늦게 태어났다.어린시절은 비교적 부유하고 생활이 좋았다
그당시 한국생활은 어려운 경제였다. 나의생활은 비교적 좋았다.
늦게 태어난 아들은 부모님은 생각많이했다.
그당시 한국 초등학교(국민학교)는 8세부터 입학하는 통례다.
나는 7세에 부모님이 입학시켰다. 나의 의지는 아니지만....
그때는 학생들이 가방이 없었다. 한국식 가방도 볼수없어...대도시에서도
어렵게 볼수있는 특히...초등학생 가방은 책보자기(일명 책보)였다.
천으로 대응해 감싸 어깨...그리고 허리에 감싸 메고 학교다녔다.
일본식 가방은 구경할수없는 한국경제 상황였다.
바로 이것이다.

아버님이 일본 형제에게 부탁해 물 건너온 초등학생 가방이다.
그당시 일본에서도 지금같이 볼수없는 가방인지....모르겠다.
포장되지않은도로(신작로)_길 따라서 입학하던 길에서 ...
부끄러워 도로밑으로 혼자서 걸어갔다.농토길....밭길....
왜냐면 혼자서 이런 가방을 메고 걸어가....사람들 보는거 같아...
그당시 바로위 누나가 6학년였다.졸업반...
부모님 지시로 내뒤 따라왔다. 보살폈다.
이 가방은 오래 메고 다닌 기억은 없다.집에서만 기다리는 가방으로
4학년때 도시로 전학으로 대응해....
1학년때 입학하던 시절.....포장없던 도로의 추억은 나에게 아직까지
나의 머리에 추억으로 강하게 남아있다.
그당시 학교건물도 지금같은 시멘트벽조 아니다.목조건물 일본식 건물로
대응했다. 지금 일본집(오래된) 건물과 같은 구조물....
공부도 못해 어떻게 공부가 흐르는지 몰랐다. 그냥~등교해~그리고
하교해서 집으로~....
3학년때 글씨을 몰라 받아쓰기 대응못해 남들은 하교하고 몇명 남아서
오후까지 공부로 대응한 기억은 있다.
오후에 포장되지않은 도로따라서 혼자 집으로 하교하던 시절에
나에게 아직도 추억으로 강하게 남아있다.
그때 늦게까지 배우고 공부한 인연으로 한국말 철자법으로 대응해
지금은 틀리지 않는다. 문법에는 지금도 좀 문제지만....철자법은
틀리지 않는다.
일본형제들 이제는 나이많아 돌아가시고. 나는 이제....
돌아가신 형제들에게 참배해야하는 생각으로 자리한다.
언젠간 나도 그길을 걸어가겠지만.먼저 돌아가신 분들에게
추억의 선물을 주어야한다.
빠르게 대응못해 살아있을때 인사을 못했다.
일본방문해서.... 빠르게 대응못한 댓가로.... 나는 .....
몇칠동안 참배를 할것이다. 그동안 나는 외부접촉을 피하고
혼자서 시간을 투자할것이다.
아무도 나의 주변에 오지말라. 나는 스스로 자신에게 추억의
정서운동을 하고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