さつまいもはスペイン人々によってメキシコでフィリピンに, 以後中国(明)を経って当時独立国だった沖繩に伝えたが倭寇がさつまいもを盗ん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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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リュク王国(沖繩)は日本ではなかった
さつまいもが沖繩に入って来た 1605年当時, 沖繩は日本の領土ではない リュク王国という厳然な独立国でした. 明と朝貢関係を結んで独自の海上貿易をした所でした.
論理: さつまいもはリュクインドルが中国との正当な交流を通じて持ちこんだ **リュクの国家資産**引き継ぎました. 当時日本(サツマ番(回))はこれを見守っている途中無力で介入し始めます.
2. サツマ番(回)の侵攻と栽培技術強奪
1609年, 日本のサツマ番(回)(現鹿島現)がリュク王国を侵略して属国で作ります. この過程でリュクが念を入れて普及したさつまいも栽培技術と種子が日本本土に移るようになります.
論理: これは平和な文化交流ではなく, 侵略戦争を通じる戦利品獲得に近いです. 日本がさつまいもを自分たちの象徴のようにサツマイモ(サツマのじゃがいも)と呼ぶこと自体が, 原住人であるリュクの名前を消して掠奪した品物に自分名付けた行為と批判することができます.
3. 機密維持と独占的地位
日本はさつまいもを本土に持って行った後, 飢饉を解決する力強い手段にしながらも外部への流出を極度に憚りました.
論理: もしさつまいもが人類愛的な電波だったら周辺国に喜んで共有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 しかし日本はこれを独占して勢力を育てたし, 朝鮮のゾオムが 1763年にはやっと種子を密搬入するように持って来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状況は当時日本がさつまいもを **掠奪した後独占した臓物**のように扱ったことを見せてくれる傍証です.
さつまいものアジア伝播経路 (実際歴史)
| 段階 | 経路 | 時期 | 備考 |
| 1段階 | メキシコ → フィリピン | 16世紀中盤 | スペインガルレオン貿易 |
| フィリピン → 中国(人) | 1590年代 | ジンジンリョング(濃い陣輪) などが密かに持ちこみ | |
| 3段階 | 中国 → リュク(沖繩) | 1605年 | 老身だからソカンが中国で導入 |
| 4段階 | 17世紀以後 | サツマ番(回)のリュク侵攻以後本格化 |
結論的フレーム
”さつまいもは中南米で始めて中国とリュク王国が平和的に定着させた人類の遺産だった. しかし日本(サツマ番(回))は無力でリュクを屈服させた後彼らの 救荒作物ノーハウを丸ごと吸収(Steal) したし, 名前さえ本人たちの番(回)名をつけてサツマイモで遁甲させた.”
고구마는 스페인 사람들에 의해 멕시코에서 필리핀으로, 이후 중국(명나라)을 거쳐 당시 독립국이었던 오키나와에 전파 되었지만 일본인가 고구마를 훔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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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류쿠 왕국(오키나와)은 일본이 아니었다
고구마가 오키나와에 들어온 1605년 당시, 오키나와는 일본의 영토가 아닌 류쿠 왕국이라는 엄연한 독립국이었습니다. 명나라와 조공 관계를 맺으며 독자적인 해상 무역을 하던 곳이었죠.
논리: 고구마는 류쿠인들이 중국과의 정당한 교류를 통해 들여온 **류쿠의 국가 자산**이었습니다. 당시 일본(사츠마 번)은 이를 지켜보고 있다가 무력으로 개입하기 시작합니다.
2. 사츠마 번의 침공과 재배 기술 강탈
1609년, 일본의 사츠마 번(현 가고시마 현)이 류쿠 왕국을 침략하여 속국으로 만듭니다. 이 과정에서 류쿠가 공들여 보급하던 고구마 재배 기술과 종자가 일본 본토로 넘어가게 됩니다.
논리: 이는 평화로운 문화 교류가 아니라, 침략 전쟁을 통한 전리품 획득에 가깝습니다. 일본이 고구마를 자신들의 상징처럼 사츠마이모(사츠마의 감자)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원주인인 류쿠의 이름을 지우고 약탈한 물건에 자기 이름을 붙인 행위라고 비판할 수 있습니다.
3. 기밀 유지와 독점적 지위
일본은 고구마를 본토로 가져간 뒤, 기근을 해결할 강력한 수단으로 삼으면서도 외부로의 유출을 극도로 꺼렸습니다.
논리: 만약 고구마가 인류애적인 전파였다면 주변국에 기꺼이 공유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일본은 이를 독점하며 세력을 키웠고, 조선의 조엄이 1763년에야 겨우 종자를 밀반입하듯 가져와야 했던 상황은 당시 일본이 고구마를 **약탈한 뒤 독점하던 장물**처럼 취급했음을 보여주는 방증입니다.
📊 고구마의 아시아 전파 경로 (실제 역사)
| 단계 | 경로 | 시기 | 비고 |
| 1단계 | 멕시코 → 필리핀 | 16세기 중반 | 스페인 갈레온 무역 |
| 2단계 | 필리핀 → 중국(명) | 1590년대 | 진진룡(진진륜) 등이 몰래 들여옴 |
| 3단계 | 중국 → 류쿠(오키나와) | 1605년 | 노구니 소칸이 중국에서 도입 |
| 4단계 | 류쿠 → 일본 본토 | 17세기 이후 | 사츠마 번의 류쿠 침공 이후 본격화 |
💡 결론적 프레임
"고구마는 중남미에서 시작해 중국과 류쿠 왕국이 평화적으로 정착시킨 인류의 유산이었다. 그러나 일본(사츠마 번)은 무력으로 류쿠를 굴복시킨 뒤 그들의 구황 작물 노하우를 통째로 흡수(Steal) 했고, 이름마저 본인들의 번 이름을 따서 사츠마이모로 둔갑시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