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

 

시가현 타카하마시, 쿠츠키에 있는 「흥성사」에 갔습니다.조동종의 사원이다.

 

 

1770년대 건조의 흥성테라모토전.본댁과 복도에서 접속되고 있다.이것은 조동종인것 같은 형식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단지, 칸사이는 조동종의 사원이 적고, 매우 드문 인상을 받았다.

 

본전의 내부.앞이 마루의 Gejin, 그 안쪽이 첩간의 Gejin.Naijin에는 중요문화재의 아미타 여래좌상(후지와라 시대)을 안치한다.

그런데, 이 사원을 방문한 목적은, 이러한 건물이나 불상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다.

 

목적은, 이 정자의 안쪽에 있는 정원을 보기 (위해)때문이다.

 

 

 

그것이, 이 「구수린사정원」,1528~31년작 정, 나라의 명승이다.

 

전란을 피하기 위해서 쿄토를 떠나 이 땅에 체재한 장군·아시카가 요시하루를 맞이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정원에서, 작 정자는 호소카와 다카쿠니의 추정.

 

파일:Hosokawa Takakuni.jpg

호소카와 다카쿠니(1484년~1531년).전국시대의 무장, 영주.

 

이 정원 이외에, 그의 작 정으로 되어 있는 것에 미에현의 기타바타케씨관적정원이 있다.양정원은 토지 분할이나 배석등이 유사하고 있어, 동시대, 동작자의 뜰이라고 생각된다.

단가·연가·서도 등 교양이 뛰어나 전진의 사이에도 연가회나 옛 예술제등을 개최하는 다취미인 무장으로 알려진다.잡혀 자해 하기 직전에도 「그림에 찍어 돌을 만들어 미야마를, 후세까지도 눈그않고나 보지 않아」라고 노래했던 것이 알려져 작 정에도 뛰어난 무장인 것을 알 것이다.

 

 

 

그런데, 정원의 전경이다.약간 좀 작은 정원이지만, 전경을 찍기 어렵다.폭포의 앞의 이 포지션이 가장 타당한가.

앞이 롱석조, 오른손에 있는 돌에서 짜여진 섬이 카메시마, 그 안쪽에 나무가 난 섬이 츠루시마.정원은 곡수식에서, 물은 사진 앞의 롱석조로부터 떨어져 카메시마 방면으로 흐르고 이시바시를 기어들어, 츠루시마 방향으로 흘러 간다.

호안석조는 호쾌한 타테이시나 평천석등을 교묘하게 조합하고 변화가 풍부하고 있어 강력함과 교묘함을 느끼게 한다.이 근처는 확실히, 전국 무장의 정원이라고 말할 수 있자.

 

 

카메시마.왼쪽의 돌이 머리.

 

신선 호라이 사상의 영향을 받은 일본 정원에서는, 장수의 상징인 학과 거북이를 형태로서 연못안에 쌓아 올리는 경우가 많아, 이것이 츠루시마, 카메시마가 된다.또, 카메시마는 호안의 석조를 거북이의 머리나 다리, 꼬리 등에 진단하는 것이 많다.

덧붙여서, 사진의 카메시마는 왼쪽의 타테이시가 머리로, 꼬리는 뒤로 조금 보이고 있는 돌이 거기에 맞는다.

 

 

츠루시마.츠루시마에는 츠바키와 모미지가 나 있다.넓은 면을 보이고 있는 거대한 돌이 보이지만, 이 석면의 정면 방향으로 저택이 있던 것은 아닐까 추정하는 의견이 있다.

 

석가산 방향을 본다.중앙에 롱석조가 있지만, 석가산은 완만하고, 폭포도 쵸로쵸로 한 느낌으로 기세는 없다.볼만한 곳은 츠바키.장군을 위로하기 위해서 심어진 츠바키로, 500년 가깝게 존재하고 있는 로춘이다(츠루시마의 츠바키도, 그렇다).

 

 

정원 중앙에 가설되는 세이세키의 다리.비 안오는 장마철이기 때문에인가, 물의 양은 생각했던 것보다 적었다.배후의 히라 산계의 산맥과 잘 조화를 이루고 있지만, 이것을 차경으로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고 부정하는 설도 있다.이 시대의 정원은 굳이 차경을 차단해, 뜰의 경관만으로 승부하는 것도 많았다고 한다.그 때문에 화도인가는 모르지만, 절의 팜플렛에는 차경이 전혀 쓰여지지 않았었다.

정원은 사람에 의해서 해석이 여러가지이고 전혀 정리가 없지만, 반대로 자기만으로 해석하는 여지도 크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다.일본 정원의 재미는, 그쯤도 있는 것일까.

 

 

연못의 하부에도 다리가 가설된다.산 중턱의 다리에 비해, 두께가 얇다.

 

 

호소카와 다카쿠니는 1531년 6월 8일에 자해 한다.전란에 항상 전국 무장들이었지만, 전국 무장이 양성한 이 구수린사정원은, 약 500년 지난 지금도, 빛을 잃지 않고 이 땅에 존재하고 있는 것에서 만났다.

 

마지막

 

 

 


興聖寺と戦国武将の庭園

 

滋賀県高浜市、朽木にある「興聖寺」に行きました。曹洞宗の寺院である。

 

 

1770年代建造の興聖寺本殿。本宅と廊下で接続されている。これは曹洞宗らしい形式と言えるかもしれない。ただ、関西は曹洞宗の寺院が少なく、非常に珍しい印象を受けた。

 

本殿の内部。手前が板敷きのGejin、その奥が畳間のGejin。Naijinには重要文化財の阿弥陀如来坐像(藤原時代)を安置する。

さて、この寺院を訪問した目的は、これらの建物や仏像を見るためではない。

 

目的は、この東屋の奥にある庭園を見るためだ。

 

 

 

それが、この「旧秀隣寺庭園」、1528~31年作庭、国の名勝である。

 

戦乱を逃れるために京都を離れ、この地に滞在した将軍・足利義晴を迎えるために造られた庭園で、作庭者は細川高国の推定。

 

ファイル:Hosokawa Takakuni.jpg

細川高国(1484年~1531年)。戦国時代の武将、大名。

 

この庭園以外に、彼の作庭とされているものに三重県の北畠氏館跡庭園がある。両庭園は地割や配石などが類似しており、同時代、同作者の庭だと考えられる。

和歌・連歌・書道など教養に優れ、戦陣の合間にも連歌会や猿楽などを催す多趣味な武将で知られる。捕らえられて自害する直前にも「絵にうつし石をつくりし海山を、後の世までも目かれずや見ん」と歌ったことが知られ、作庭にも秀でた武将であったことが分かるだろう。

 

 

 

さて、庭園の全景である。やや小ぶりの庭園だが、全景を撮りにくい。滝の手前のこのポジションが最も妥当かな。

手前が滝石組、右手にある石で組まれた島が亀島、その奥に木が生えた島が鶴島。庭園は曲水式で、水は写真手前の滝石組から落ちて亀島方面に流れ、石橋を潜り、鶴島方向へと流れていく。

護岸石組は豪快な立石や平天石などを巧みに組み合わせ、変化に富んでおり、力強さと巧みさを感じさせる。この辺はまさに、戦国武将の庭園だと言えよう。

 

 

亀島。左の石が頭。

 

神仙蓬莱思想の影響を受けた日本庭園では、長寿の象徴である鶴と亀を形として池の中に築く場合が多く、これが鶴島、亀島となる。また、亀島は護岸の石組を亀の頭や足、尾などに見立てることが多い。

因みに、写真の亀島は左の立石が頭で、尾は後ろで少し見えている石がそれに当たる。

 

 

鶴島。鶴島には椿とモミジが生えている。広い面を見せている巨大な石が見えるが、この石面の正面方向に屋敷があったのではないかと推定する意見がある。

 

築山方向を見る。中央に滝石組があるが、築山は緩やかで、滝もチョロチョロした感じで勢いはない。見所は椿。将軍を慰めるために植えられた椿で、500年近く存在している老椿である(鶴島の椿も、そうだ)。

 

 

庭園中央に架かる青石の橋。空梅雨のためか、水の量は思ったより少なかった。背後の比良山系の山並みとよく調和しているが、これを借景としているわけではないと否定する説もある。この時代の庭園はあえて借景を遮り、庭の景観だけで勝負することも多かったという。その為かどうかは知らないが、お寺のパンフレットには借景のことが全く書かれていなかった。

庭園は人によって解釈が様々で全くまとまりがないが、逆に自分流に解釈する余地も大きいと言えるかも知れない。日本庭園の面白さは、その辺にもあるのだろう。

 

 

池の下方にも橋が架かる。中腹の橋に比べ、厚みが薄い。

 

 

細川高国は1531年6月8日に自害する。戦乱に明け暮れた戦国武将達だったが、戦国武将が造ったこの旧秀隣寺庭園は、約500年経った今も、輝きを失わずにこの地に存在しているのであった。

 

終わ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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