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게시물에서 살펴 보았듯이
일본이 임진왜란을 통해서 조선의 여러 선진 문물을 입수한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제지기술 두부제조 직조 활자 의서 의학 유학 외에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임진왜란으로 일본에 끌려간 한국인 기술자)이야기가
더 있을 것입니다만
임진왜란을 도자기 전쟁이라고 부르는 만큼 일본은 당시 도자기 분야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에도 잘 알려진 沈壽官 李參平은 임진왜란으로 일본에 끌려간 한국인 도공이다
당시 수백명의 한국인 도공이 일본으로 끌려가게 되었는데
그 결과 현재 규슈 (九州)일대 도예 종사자 대부분이 그 후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합니다

李參平의 碑

李參平의 비문
사가현 (佐賀縣) 도자기 산지 아리타 (有田)는 일본 최대 도자기 지역이며 이 지역은 이삼평
(李參平)이 활동했던 지역으로 유명하다
이삼평의 비문에는
우리 陶祖 李參平은 조선의 충청남도 금강 사람으로 우리 아리타(有田)의 陶祖일 뿐 아니라
일본 도요계의 대은인 이라고 새겨져 있다
이삼평 (李參平)은 임진왜란 당시 사가현의 始祖 나베시마 나오시게 (過島直茂)에 의해
일본에 왔다
1616년 이삼평은 白磁를 만들 수 있는 좋은 胎土가 없어 佐賀縣 일대를 뒤지던 중에 아리타의 泉山에서
白磁 제조의 좋은 흙을 발견하였다
이 흙의 발견으로 李參平은 아리타에 정착하게 되었는데
이 李參平의 소문을 듣고 흩어져 있던 약 900여명의 한국인 도공들이 아리타 (有田)에 모여 들었다
이렇게 아리타는 일본 최대의 도자기 산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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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15세기 明나라 도자기

조선시대 15세기 분청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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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18세기 청화백자

1700년 일본 아리타 도자기

일본 아리타 도자기
17세기초 까지 白磁 제조의 기술을 가진 나라는 중국 한국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데 일본은 임진왜란으로 끌려 왔던 한국인 도공 李參平에 의해
드디어 白磁 도자기의 문화를 열게 되었다
일본에서의 李參平의 白磁 제조의 흙 발견은 일본 도자기 문화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 도자기 문화의 발전은 다도 그림 등 근대 일본 문화가 한층 더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前掲示物でよく見たように
日本が壬辰の乱を 通じて朝鮮の多くの先進文物を手に入れたことを分かりました
製紙技術豆腐製造織造活字医書医学留学 外に
私たちによく知られない (壬辰の乱で日本に引かれて行った朝鮮人技術者)話が
もっとあるでしょう
壬辰の乱を陶磁器戦争だと呼ぶ位日本は当時陶磁器分野に対して
大きい関心を持っていたことと見えます
韓国にもよく知られた 沈寿官 李参平は壬辰の乱で日本に引かれて行った朝鮮人陶工だ
当時数百人の朝鮮人陶工が日本に引かれて行くようになったが
その結果現在九州 (九州)一帯陶芸従事者大部分がその後裔と言っても過言が
ないと言います

李参平の 碑

李参平の碑文
佐賀県 (佐賀県) 陶磁器山地有田 (有田)は日本最大陶磁器地域でこの地域はイサムピョング
(李参平)が活動した地域で有名だ
イサムピョングの碑文には
私たち 陶祖 李参平は朝鮮の忠清南道金剛人で私たち有田(有田)の 陶祖であるのみならず
日本陶窯係の大隠であると刻まれている
イサムピョング (李参平)は壬辰の乱当時佐賀県の 始祖 ナベシマ出るように (過島直茂)によって
日本へ来た
1616年イサムピョングは 白磁を作ることができる良い 胎土がなくて 佐賀県 一帯を探した中に有田の 泉山で
白磁 製造の良い土を見つけた
が土の発見で 李参平は有田に定着するようになったが
が 李参平のうわさを聞いて散らばっていた約 900人余りの朝鮮人陶工たちが有田 (有田)に集まって来た
こんなに有田は日本最大の陶磁器山地になった
中国 15世紀 明国陶磁器

朝鮮時代 15世紀粉青沙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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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時代 18世紀青華白瓷

1700年日本有田陶磁器

日本有田陶磁器
17世紀初めまで 白磁 製造の技術を持った国は中国韓国位だったと言う
ところで日本は壬辰の乱でひかれて来た朝鮮人陶工 李参平によって
いよいよ 白磁 陶磁器の文化を開くようになった
日本での 李参平の 白磁 製造の土発見は日本陶磁器文化 発展に大きい影響を 与えた
が陶磁器文化の発展は茶道絵など近代日本文化がいっそうもっと発展するきっかけが
になったこと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