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jpg)
먼저 다식판 [茶食板 ]입니다
한쪽은 돌출되어 있고 다른 한쪽은 구멍으로 되어 있는데
곡식의 가루 [쌀가루 밀가루 송화가루 등 ]와 참기름 꿀 술 등 재료를 반죽하여 틀에 넣어
박아낸다
한국은 농경문화권으로 곡식을 재료로 이용하는 음식의 역사는 길다
한과를 만든 시기는 삼국시대 기록으로 삼국유사 가락국기 수로왕의 제사 음식으로
果를 썼다는 기록이 있고
신라 683년 왕비 폐백 음식으로 쌀 꿀 술 된장을 사용했다는 기록으로 그 당시 부터 한과를
제조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茶와 함께 먹는 음식으로 飮茶 풍속이 성행했던 신라 고려시대에는 불교문화와 관련된다
신라시대에는 다과상 [茶果床] 다정 [茶庭] 모임이 형성되었고
고려시대 한과는 국가 행사로 팔관회 [八關會]에 한과의 유밀과 [油蜜果]는 高林床으로
높게 쌓아 올려졌다
고려의 한과 중에서 油蜜果는 고려餠으로 중국에 알려졌다

중국인이 감동했다는 油蜜果의 대표적 과자 약과 [藥果]입니다
藥果의 과다 소비로 곡식 꿀 술 참기름의 소비가 많아져 폐해를 막기 위해 1179년 1192년에는
油蜜果 제조 금지령이 내려졌다

고려 찻잔
茶와 함께 먹는 과자를 茶果라고 한다
원래 한과는 漢果라고 표기했는데 이것은 중국 漢代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근래에 와서
서양식 과자와 전통 과자를 구별하기 위해 韓菓라고 표기 하기도 하지만 漢果 韓菓 모두
사용하고 있다
.jpg)
떡살
떡살을 만드는 나무는 회양목 은행나무 박달나무 대추나무 등 재질이 단단한 나무를 사용하고
귀신을 쫓는다는 속설이 있는 복숭아 나무와 神主로 쓰이는 밤나무 성황木으로 쓰이는
당나무는 사용하지 않았다 다식판의 경우도 마찬가지
.jpg)
조선 후기 도자기 떡살입니다
도자기 떡살은 양반이나 궁중에서 사용했고 나무 떡살은 서민층에서 사용했다
.jpg)
아기가 태어나고 백일을 맞이하는 날에는 물고기 문양 첫 생일을 맞이하는 돌에는 부귀 多男
등 문자 문양
결혼식에는 多産 풍요의 상징 꽃과 나비 원앙 문양
60회 환갑에는 건강 기원의 壽福 문자 문양
추석 설날 등 명절에는 꽃 문양 등
떡살의 문양은 가정 의례 성격에 따라 용도가 다르고 또 같은 종류의 떡이라도 약간의 재료를
다르게 사용하는데
예를들면 시루떡은 일반적으로 붉은 팥고물을 사용하지만 제사에 쓰는 시루떡에는 붉은 팥고물을
사용하지 않는데 이것은 붉은 팥은 귀신을 쫓는다는 속설 때문이다
아이가 태어나고 첫 생일을 맞이하는 돌떡에는 여러가지 색깔의 무지개 떡 인절미 수수경단을
사용하는데 제사의 경우와 반대로 돌떡의 수수경단에는 붉은색 재료를 사용한다 귀신의
접근을 막기 위한 것이다
가정의 길흉화복에 관련되지 않고 두루 사용하는 음식이 떡이지만 의례 성격에 따라 떡의 종류와
제조 방법이 달랐다
그 중에서 절편은 모든 의례에서 사용되는 대표적 떡이며 문양을 찍는 유일한 떡이다
절편은 쌀을 빻아서 시루에 찌고 떡메에 친 다음 모양을 빚어 물기 [수분]을 바르고 도장을 찍는
것처럼 누르면 굳어지면서 문양이 선명하게 나타난다
떡살은 떡에 문양을 부여하는 의미와 거기에 소원을 담는 종교적 주술의 효과까지 기대했던
우리 조상들의 정서와 신념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