伝統文化紹介 Relationship

「周の武王が殷を倒すと箕子を招聘して政治について問い、そのあまりの該博さに驚嘆し、武王は箕子を崇めて家臣とせず、朝鮮に封じた。朝鮮侯箕子は殷の遺民を率いて東方へ赴き、礼儀や農事・養蚕・機織の技術を広め、また犯禁八条を実施して民を教化し箕子朝鮮を建国した。

箕子にはそれなりの歴史的背景が考えられる。中国古代の殷・周金属文化圏では、紀元前10世紀以後、山東の斉の箕族が、殷・周の権威のもとで、朝鮮西部に接する遼寧で活動していた。」(wiki)

箕族の地域を治めたから箕子と呼ばれるようになった。

ここで、高句麗の始祖:「鄒牟」の「鄒」は、山東半島の南側の地域である。はるか昔の箕族の移住が建国神話に取り入れられたのだろうか。

箕子朝鮮の王は41代続いたようである。ぼくは、3代ぐらいかと思っていたが、どうも時間感覚がないようである。

すると最後の準王は、夫余、高句麗の時代になってくる。

それだけ長いと夫余にも影響してくる。

・夫余では、殷の暦が用いられていた。

・白い服を着るが、殷も白である。

・扶余は鹿をトーテムとしているが、殷の鹿台と共通である。

・百済王号は「コンキシ」と言うが「コン」は根本という意味であり、百済王号は「キシ(kisi)」である。(『周書』という中国の歴史書の中に百済の王の称号は「鞬吉支」(こんきし)という)

などなどある。

夫余王は、「われらは、亡国の民」と言ったようだが、その国は殷なのであろうか。

まあ、もしそうだとしても、箕子は、立派な思想を持っていたようであり、問題とするには当たらないと思う。


話が建国神話に脱線するが、

・箕子朝鮮の遺民が扶余に移住したのだろうか。なにせ、殷の暦が用いられていたことはそれくらい重要なことである。

 だとすると建国神話の高麗から来たことは説明できる。

・高句麗の建国神話が夫余の建国神話と似ているのは、長寿王が東扶余を征服した時に、扶余民を解呪するために扶余の建国神話を取り入れたとす  る説がある。

・百済建国神話はほぼほぼ夫余建国神話と状況が似ているのは、ラッキーだった。


韓国の歴史家は、民族主義の観点から檀君朝鮮を支持して箕子朝鮮を否定する傾向にあるが、実際には箕子朝鮮の影響は大きいようである。



미자 조선

「주의 무왕이 은나라를 넘어뜨리면 미자를 초빙 하고 정치에 대해 물어, 그 나머지의 해박함에 경탄 해, 무왕은 미자를 우러러보고 가신으로 하지 못하고, 조선에 봉했다.조선후미자는 은나라의 유민을 인솔하고 동방에 향해, 예의나 농사·요우산·하타오리의 기술을 넓은, 또 범금8죠를 실시해 백성을 교화 해 미자 조선을 건국했다.

미자에게는 그만한 역사적 배경을 생각할 수 있다.중국 고대의 은·주금속 문화권에서는, 기원 전 10 세기 이후, 산토우의 제의 미족이, 은·주의 권위의 아래에서, 조선 서부에 접하는 랴오닝에서 활동하고 있었다.」(wiki)

미족의 지역을 치료했기 때문에 미자로 불리게 되었다.

여기서, 고구려의 시조:「추모」의 「추」는, 산동 반도의 남쪽의 지역이다.하루카 옛 미족의 이주가 건국신화에 받아들여진 것일까.

미자 조선의 왕은 41대 계속 된 것 같다.나는, 3대 정도일까하고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시간 감각이 없는 것 같다.

그러자(면) 마지막 히토시왕은, 부여, 고구려의 시대가 되어 진다.

그 만큼 길면 부여에도 영향을 주어 온다.

·부여에서는, 은나라의 달력이 이용되고 있었다.

·흰 옷을 입지만, 은나라도 흰색이다.

·부여는 사슴을 토템으로 하고 있지만, 은나라의 록대와 공통 이다.

·(쿠다라)백제왕호는 「콘키시」라고 하지만 「콘」은 근본이라고 하는 의미이며, (쿠다라)백제왕호는 「키시(kisi)」이다.( 「주서」라고 하는 중국의 역사서안에 (쿠다라)백제의 왕의 칭호는 「길지」(끈기 해)이라고 한다)

등 등 있다.

부여왕은, 「우리들은, 망국의 백성」이라고 한 것 같지만, 그 나라는 은나라인 것일까.

뭐, 만약 그렇다고 해도, 미자는, 훌륭한 사상을 가지고 있던 것 같고, 문제로 하려면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야기가 건국신화에 탈선하지만,

·미자 조선의 유민이 부여에 이주한 것일까.여하튼, 은나라의 달력이 이용되고 있던 것은 그 정도 중요한 것이다.

 (이)라고 한다고 건국신화의 고려에서 온 것은 설명할 수 있다.

·고구려의 건국신화가 부여의 건국신화와 닮아 있는 것은, 장수왕이 동부여를 정복했을 때에, 부여민을 해주 하기 위해서 부여의 건국신화를 도입했다고 하는 설이 있다.

·(쿠다라)백제 건국신화는 거의 거의 부여건국신화와 상황이 비슷한 것은, 럭키였다.


한국의 역사가는, 민족주의의 관점으로부터 단군 조선을 지지해 미자 조선을 부정하는 경향에 있지만, 실제로는 미자 조선의 영향은 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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