記録によれば侍階級の人口は平均で約7%といわれる。
全国平均だから少ない藩(大名地)では3%、多い藩では15%もあった。
特に鹿児島は独特の身分制度で侍が多く、幕末には4人に一人は侍の身分を持っていた。
他に多かったのは長州藩(山口県)、仙台藩(宮城県)、米沢藩(山形県)などがある。
逆に少なかった藩は加賀藩(金沢県)、尾張藩(愛知県)、土佐藩(高知県)など。
昔は藩が一つの国だったので士農工商という身分分類も藩によって違いがあった。
さらに侍の処遇の仕方や扱い方(一カ所に住まわせるなど)も藩によって異なっていた。
侍はヨーロッパや中国のような只の軍人ではなく、文官(行政官)も兼ねており
学問は全ての藩で非常に奨励された。また侍は書画や詩歌などの芸術に親しむのは当然とされていた。
日本の元禄時代から江戸時代の400年間で非常に日本固有の文化が発達したのもそれが理由であり
教育レベルが非常に高かったことが明治維新の改革で元侍が大活躍した理由だ。
日本は侍の時代がおよそ700年も続いた。 日本が独特の歴史と文化を持つと言われる理由である。
기록에 의하면 사무라이 계급의 인구는 평균으로 약 7%라고 한다.
전국 평균이니까 적은 번(오나지)에서는 3%, 많은 번에서는 15%도 있었다.
특히 카고시마는 독특한 신분 제도로 사무라이가 많아, 에도막부 말기에는 4명에게 한 명은 사무라이의 신분을 가지고 있었다.
그 밖에 많았던 것은 쵸우슈번(야마구치현), 선대번(미야기현), 요네자와번(야마가타현)등이 있다.
반대로 적었던 번은 카가번(카나자와현), 오와리번(아이치현), 토사 번(울타리)(코치현) 등.
옛날은 번이 하나의 나라였으므로 사농 공상이라고 하는 신분 분류도 번에 의해서 차이가 있었다.
한층 더 사무라이의 처우의 방법이나 취급하는 방법(1개소에 사게 하는 등)도 번에 의해서 차이가 났다.
사무라이는 유럽이나 중국과 같은 단순한 군인이 아니고, 문관(행정관)도 겸하고 있어
학문은 모든 번으로 매우 장려되었다.또 사무라이는 서화나 시가등의 예술을 즐기는 것은 당연으로 되어 있었다.
일본의 겐로쿠 시대부터 에도시대의 400년간에 매우 일본 고유의 문화가 발달했던 것도 그것이 이유이며
교육 레벨이 매우 높았던 일이 메이지 유신의 개혁으로 전 사무라이가 대활약한 이유다.
일본은 사무라이의 시대가 대략 700년이나 계속 되었다. 일본이 전`니특의 역사와 문화를 가진다고 말해지는 이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