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

기록으로 일본인가 고려를 처음 침범한 것은 고려 高宗10년 1223년 부터이다

몽골 고려 연합군의 1차 일본 침략으로 부터 50년전 일이다

 

고려시대 일본인 출몰은 1223년 부터 1392년 까지 총 529회인데

恭愍王때는 115회 禑王때는 378회로 고려末에 일본인에 의한 노략질이 상당히 심했다고 한다

조선이 건국된 1392년 부터 세종 25년 1443년까지 155회 일본인 출몰이 있었다

 

공민왕 (恭愍王) 연간 1352년 ~1374년) 일본인 침입 상황

 

● 1~~2회  침입 지역

◎ 3~~5회 침입 지역

x    6회 이상 침입 지역

 

1227년 고려는 朴寅을 일본에 사신으로  파견하여 일본인 금지 요청

1263년 洪貯 郭王府를  일본에 사신으로 파견해 일본인 금지 요청

1260년 韓景胤을 사신으로 파견해 일본인 금지 요청

1366년 金逸을 사신으로 파견해 足利幕府 장군에게 일본인 금지를 약속 받았다

 

 

 

東國新續三綱行實圖이다

1617년 光海君 당시 왕명으로 편찬된 책으로 18권 18책으로 목판본으로 완성되었다

조선 초기에 간행된 삼강행실도 續三鋼行圖의 속편으로 임진왜란 이후 충신 효자 열녀 (烈女)

이야기를 중심으로 신라 고려 조선시대 인물들의 행적을 수록하고 그 덕행을 기리는 내용이다

인물의 행적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한문으로 쓰고 한글로 해석하였다

金氏斷頭는 이 책에 수록된 열녀 이야기다

내용은

金氏는 영흥부 사람이니 김윤흠의 아내이다 임진왜란의 도적이 그 집에 이르러 더럽히고자 하니

(겁탈하려고 하니) 金氏가 아이를 안고 버티어 도적이 머리를 베어내고 가니

죽은 얼굴이 살아있는 듯 아이를 품고 앉았더라 ....

왜군으로 부터 정절을 지킨 부인을 기리는 내용인데 왜군의 만행이 잘 나타나 있다

 

 

 

 

三綱行實圖

이 책은 1434년 세종16년 왕명에 의해 편찬되었다

한국이나 중국의 서적에서 군신 父子 부부의 三綱에 모범이 되는 인물들의 행적을 모아 만든 책이다

1481년 한글 번역으로 간행되어 일반 백성들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하였는데

조선시대 백성들의 윤리 도덕 교과서라고 할 수 있다

위에  책은 三綱行實圖의 열녀편에 수록된  林氏斷足이다

 

왜군에 저항하다가 손과 발이 잘리고 죽은 林氏부인을 기리는 내용이다

 

임진왜란 정유재란으로 조선의 全국토는 황폐화 되어 경작지는 1/3이 줄었고 인구도 크게 감소했다  

당시의 인구 감소는 절반 가량 또는 1/3이 감소된 것으로 추정된다

10만에서 20만 정도의 사람들이 포로로 일본에 끌려갔고 문화재 피해는 심각하였다

조선왕조 실록을 보관하던 史庫가 소실되었고 서적 활자 인쇄기 도자기 그림 등 조선의 많은 문화재가

일본에 약탈되었다

 

 

 

 

한편 일본은   조선의 문화가 전해져 문화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특히 조선의 성리학은 일본의 성리학에 크게 기여하였는데 후일 일본의 근대 국가로서의

기틀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다

임진왜란 후 일본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정권이 무너지고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정권이 되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일본 정권은 조선에 사신을 보내고 통교할 것을  여러번 요구하였다

조선은 사명대사를 일본에 보내고 한국인 포로들을 데리고 온 후에 국교를 맺었다

일본의 요청으로 조선 통신사가 파견되었다

 

 

 임진왜란 후 조선과 일본이 국교는 맺었는데 임진왜란으로  양국 사이에  전쟁으로 고통받은   

민중의 상처를 치유하는 역사는 없었습니다

조선 민중이 일본에 나쁜 감정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위 일본에서 잘 팔리고 있는 혐한 서적입니다

일본의 오늘날 이 현상은 어디에서 원인을 찾아야 할까요?

 

吳善花는 侮日論이라는 책을 통해

 

한국의 반일은 反일본 민족이라고 하는 민족주의이며 거기에 한국 내셔널리즘의 기본적인

성격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반일 없는 한국인의 민족 아이텐티티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한국의 侮日論은  李氏  조선시대 500년 사이에 뿌린 내린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吳善花의 말처럼 한국의 侮日論은  조선 500년 사이에 뿌린 내린 것이 맞을까요?

 

 

 


朝鮮の民衆は日本人をどんなに見ただろうか ..

記録で倭寇が高麗を初めて侵犯したことは高麗 高宗10年 1223年からだ

モンゴル高麗連合軍の 1次日本侵略から 50年前仕事だ

 

高麗時代倭寇出沒は 1223年から 1392年まで総 529回なのに

恭愍王の時は 115回 〓王の時は 378回で高麗末に倭寇による盗みがよほどひどかったと言う

朝鮮が建国された 1392年から世宗 25年 1443年まで 155回倭寇出沒があった

 

恭愍王 (恭愍王) 年間 1352年 ‾1374年) 倭寇侵入状況

 

● 1‾‾2回  侵入地域

◎ 3‾‾5回侵入地域

x    6回以上侵入地域

 

1227年煮こもうとする 朴寅を日本に使臣で  派遣して倭寇禁止要請

1263年 洪貯 郭王府を  日本に使臣で派遣して倭寇禁止要請

1260年 韓景胤を使臣で派遣して倭寇禁止要請

1366年 金逸を使臣で派遣して 足利幕府 将軍に倭寇禁止を約束受けた

 

 

 

東国新続三綱行実図だ

1617年 光海君 当時王命に編纂された本で 18冊 18本で木版本に完成された

朝鮮初期に刊行された三綱行実も 続三鋼行図の続編で壬辰の乱以後忠臣親孝行烈女 (烈女)

話を中心に新羅高麗朝鮮時代人物たちの行績を収録してその徳行を称える内容だ

人物の行績を絵で表現して漢文で書いてハングルで解釈した

金氏断頭はこの本に収録された烈女話だ

内容は

金氏は霊興部人だからギムユンフムの妻だ壬辰の乱の盗賊がその家に至って汚そうとしたら

(劫奪しようと思ったら) 金氏が子供を抱いて堪えて盗賊が頭を切り取って行ったら

死んだ顔が生きているように子供を抱いて座ったよ ....

倭軍から貞節を守った奥さんを称える内容なのに倭軍の蛮行がよく現われている

 

 

 

 

三綱行実図

が本は 1434年世宗16年王命によって編纂された

韓国や中国の書籍で君臣 父子 夫婦の 三綱に模範になる人物たちの行績を集めて作った本だ

1481年ハングル翻訳に刊行されて一般民たちも易しく読めるようにしたが

朝鮮時代民たちの倫理道徳教科書と言える

上に  本は 三綱行実図の烈女の方に収録された  林氏断足だ

 

倭軍に抵抗している途中手と足が切られて死んだ 林氏奥さんを称える内容だ

 

壬辰の乱丁酉災乱で朝鮮の 全国土は荒廃化になって耕作地は 1/3が減ったし人口も大きく減少した  

当時の人口減少は半分ほどまたは 1/3が減少されたことに推定される

10万から 20万位の人々が虜で日本に引かれて行ったし文化財被害は深刻だった

朝鮮王朝実録を保管した 史庫が消失したし書籍活字印刷期陶磁器絵など朝鮮の多くの文化財が

日本に掠奪された

 

 

 

 

一方日本は   朝鮮の文化が伝わって文化発展を成すことができた

特に朝鮮の性理学は日本の性理学に大きく寄与したが後日日本の近代国家としての

基礎を用意するきっかけになった

壬辰の乱後日本では豊臣秀吉政権が崩れて徳川家康の

政権になった

徳川家康  日本政権は朝鮮に使臣を送って通交することを  何回要求した

朝鮮は四溟大師を日本に送って朝鮮人虜たちを連れて来た後に国交を結んだ

日本の要請で朝鮮通信社が派遣された

 

 

 壬辰の乱後朝鮮と日本が国交は結んだが壬辰の乱で  両国の間に  戦争で苦痛受けた   

民衆の傷を治癒する歴史はいなかったです

朝鮮民衆が日本に悪い感情を持つことは当たり前ではないか思います

 

上の日本でよく売れている嫌韓書籍です

日本の今日この現象はどこで原因を捜さなければならないでしょうか?

 

呉善花は 侮日論という本を通じて

 

韓国の反日は 反日本民族だと言う民族主義でそこに韓国ナショナリズムの基本的な

性格があると言うことですだから反日ない韓国人の民族アイテンティティは成立されるの

ないです韓国の 侮日論は  李氏  朝鮮時代 500年の間に振り撤いた下ったのです

 

と言ったと言います

 

呉善花の言葉のように韓国の 侮日論は  朝鮮 500年の間に振り撤いた下ったのが当たりましょう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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