伝統文化紹介 Relationship

朝鮮が東夷を服属させて多くの国々が天子と通じることができないように阻んでいたという 史記の記録と

倭と通じるようになったことは 武帝が朝鮮を滅ぼした以後という後漢書の記録で

中国が 倭という 政治体を初めて認識したことは朝鮮が消えた B.C.108年以後というのが分かる.


山海経と 論衡で 武帝 以前の中国で 倭を認識したような記録が現われるのに,

それらは実際その頃(西周, 春秋戦国時代)に 倭を認識して記録したのではなくて,

倭を認識し始めた 武帝 時代以後に作り出されたことと考えられる.


論衡は 後漢時代に著述されたし,

山海経の場合は, 倭が現われることは 海内北経なのに,

海内北経は, 海外四経と一緒に 漢代 以後に著述された本で,

戦国時代‾前漢時代に著述された 山海経の五蔵山経には 倭が現われない.

同じく 前漢時代に著述された 武帝までの歴史を記録している 司馬遷の 史記にも 倭の存在は現われない.


古代エジプトに日本人はいなかったが現代 Hollywood 映画の中で古代エジプトに日本人の現われる映画があることのようなことだと理解すれば理解しやすいだろう.




倭が歴史時代に進入した以来で初めて主導権を持った勢力で登場したことは朝鮮が消えて 165年がすぎた A.D.57年倭奴国の登場だ.

漢代 外臣 冊封序列順位は 王, 侯, 君, 長の手順で, 倭奴国が王爵を受けたということはどの位の大きい 勢力圏を認められたということを意味する.


倭奴国と言ったら記録では 北 九州に位したことで見えて, 考古学籍で中心地は 佐賀県の yoshinogari 遺跡の勢力だと思う.

実際に 佐賀県の yoshinogari 遺跡は近畿地方の karakokagi 遺跡や ikegamisone 遺跡よりも巨大だ.

倭奴国が 倭の代表で 王爵を受けたことは単純に中国と地理的に近いからだけではなかったのだ.


A.D 1世紀から大型化, 200年頃消えた 彌生銅鐸に対しても元々は近畿地方で始まったことだと思われたが,

最近の研究では 北 九州で始まって近畿地方で伝えたことで思われている.


.この時代は 奴国の時代だったことだ.

だから中国に使臣を送った A.D.107年の倭国王 帥升に対しても 倭奴国の王だったと思うのが自然だと思う. 70年を引き継いだという 邪馬台国の王朝は 帥升とは別個だったろう.


ただ 奴国は 倭で最大の勢力で 倭を代表しているだけ, 近畿地方の 邪馬台国 などを服属させていたのではないだろう.

.この時代までは 環濠 などの防御施設たちを建設していたし, お互いに軍事行為をしている競争勢力だったろう思う. 東夷伝の記録でも 「城柵を積んで置いた」という句節を確認することができる.


それなら 倭の主導権が 奴国で 邪馬台国に移ったことはいつか.

後漢書と三国志東夷伝の記録では A.D.180年頃の 倭国大乱で言っている.


A.D.180年頃の以後は考古学籍でも yoshinogari 遺跡の衰退と 彌生銅鐸の衰退が現われる.

そして奈良県に列島で一番大きい makimuku 遺跡の登場, 全国で広がる makimuku型前方後円墳の出現につながる.


一連の考古学籍事件は 倭国大乱で 倭の主導権が 奴国で 邪馬台国に移った東夷伝の記述と一致すると思うことができるでしょう.

邪馬台国が 倭を平定した以後, 遺跡で 環濠 などの防御施設たちは消えて, 東夷伝の 記述でも 「城がない」という句節が現われ始める.


もう日本書紀の 記述を考古学-中国歴史書の 記述と合致させて見たら,

中心の地域が九州から近畿に移動したという点で 神武東征の基点は 倭国大乱 の中にあった事件でおいてみることが適当だと思う.


고대 일본에 대한 나의 견해

조선이 동이를 복속시켜 여러 나라들이 천자와 통하지 못하게 막고 있었다는 史記의 기록과

倭와 통하게 된 것은 武帝가 조선을 멸한 이후라는 후한서의 기록으로

중국이 倭라는 政治體를 처음으로 인식한 것은 조선이 사라진 B.C.108년 이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山海經과 論衡에서 武帝 이전의 중국에서 倭를 인식했던 것 같은 기록이 나타나는데,

그것들은 실제 그 당시(西周, 춘추전국시대)에 倭를 인식하고 기록한 것이 아니고,

倭를 인식하기 시작한 武帝 시대 이후에 창작된 것으로 생각된다.


論衡은 後漢시대에 저술되었고,

山海經의 경우는, 倭가 나타나는 것은 海內北經인데,

海內北經은, 海外四經과 함께 漢代 이후에 저술된 책으로,

전국시대~前漢시대에 저술된 山海經의五藏山經에는 倭가 나타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前漢시대에 저술된 武帝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司馬遷의 史記에도 倭의 존재는 나타나지 않는다.


고대 이집트에 일본인은 없었지만 현대 Hollywood 영화 중에서 고대 이집트에 일본인이 나타나는 영화가 있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이해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倭가 역사시대로 진입한 이래로 처음으로 주도권을 가진 세력으로 등장한 것은 조선이 사라지고 165년이 지난 A.D.57년 倭奴國의 등장이다.

漢代 外臣 책봉 서열 순위는 王, 侯, 君, 長의 순서로, 倭奴國이 王爵을 받았다는 것은 어느정도의 큰 勢力圈을 인정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倭奴國이라고 한다면 기록에서는 北 규슈에 위치했던 것으로 보여지고, 고고학적으로 중심지는 佐賀縣의 yoshinogari 유적의 세력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佐賀縣의 yoshinogari 유적은 긴키지방의 karakokagi 유적이나 ikegamisone 유적보다도 거대하다.

倭奴國이 倭의 대표로 王爵을 받은 것은 단순히 중국과 지리적으로 가깝기 때문만은 아니였던 것이다.


A.D 1세기부터 대형화, 200년경 사라진 彌生銅鐸에 대해서도 원래는 긴키지방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여겨졌지만,

최근의 연구에서는 北 규슈에서 시작되어 긴키지방으로 전파되었던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 시대는 奴國의 시대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중국에 사신을 보낸 A.D.107년의 倭國王 帥升에 대해서도 倭奴國의 왕이었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70년을 이었다는 邪馬臺國의 왕조는 帥升과는 별개였을 것이다. 


다만 奴國은 倭에서 가장 큰 세력으로 倭를 대표하고 있을 뿐, 긴키지방의 邪馬臺國 등을 복속 시키고 있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

.이 시대까지는 環濠 등의 방어 시설들을 건설하고 있었으며, 서로에게 군사 행위를 하고 있는 경쟁 세력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동이전의 기록에서도 「城柵을 쌓아놨다」라는 구절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倭의 주도권이 奴國에서 邪馬臺國으로 넘어간 것은 언제인가.

후한서와 삼국지 동이전의 기록에서는 A.D.180년경의 倭國大亂으로 말하고 있다.


A.D.180년경의 이후는 고고학적으로도 yoshinogari 유적의 쇠퇴와 彌生銅鐸의 쇠퇴가 나타난다.

그리고 나라현에 열도에서 가장 큰 makimuku 유적의 등장, 전국으로 퍼지는 makimuku型 前方後圓墳의 출현으로 이어진다.


일련의 고고학적 사건들은 倭國大亂으로 倭의 주도권이 奴國에서 邪馬臺國으로 넘어간 동이전의 記述과 일치한다고 여길 수 있을 것이다.

邪馬臺國이 倭를 평정한 이후, 유적에서 環濠 등의 방어 시설들은 사라지고, 동이전의 記述에서도 「城이 없다」라는 구절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제 일본서기의 記述을 고고학-중국 역사서의 記述과 합치시켜서 본다면,

중심의 지역이 규슈에서 긴키로 이동했다는 점에서 神武東征의 기점은 倭國大亂 중에 있었던 사건으로 놓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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