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九州についての地政学がある。
それは、中国が攻めてきた場合に真っ先に戦場になるということだ。
なので、王としては、そんなところに都を置こうとは思わないだろう。
倭奴国王は、そのために安全な東国に東征して移住したのだろう。(神武天皇)
ただ、伊都国に王がいたのは、倭国へ来る移民の管理のためだろう。
そのために王が現地で全権限をもって対応する必要があったのだろう。
帥升については、単に倭国王としては、不適格と判断されたのだろう。
実際にその後、大乱がおきている。
金印がいつ隠されたのかはわからないが、ぼくとしては、景行天皇の時(ヒボコ族移住)のタイミングではないかと思う。
金印がヒボコ族に見つかっては不測の事態になりかねないと思ったのではないだろうか。
奴国自体は平和的にヒボコ族を受け入れた。井出という人が船で出迎えている。
魏志倭人伝では、九州の奴国以外にもうひとつ、その他の国(遠くに在って国名だけしか分からない国)の最後にも奴国がでてくる。
これは、九州の奴国勢力は大和とともに名古屋(ふたつめの奴国)に移住したことを記述したものだと考える。
この名古屋の奴国が、その後、古代の最終覇者となった天武天皇の軍事力となったのである。
키타큐슈에 대한 지정학이 있다.
그것은, 중국이 공격해 왔을 경우에 맨 먼저에 전장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왕으로서는, 그런 곳에 도를 두려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야마토 나노쿠니왕은, 그 때문에(위해) 안전한 동국에 동정 해 이주했을 것이다.(진무 덴노)
단지, 이토코쿠에 왕이 있던 것은, 야마토국에 오는 이민의 관리를 위해일 것이다.
그 때문에(위해) 왕이 현지에서 전권한을 가지고 대응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수승에 대해서는, 단지 야마토 국왕으로서는, 부적격이라고 판단되었을 것이다.
실제로 그 후, 대란이 규정 있다.
금표가 언제 숨겨졌는지는 모르지만, 나로서는, 게이코 덴노때(히보코족이주)의 타이밍은 아닐까 생각한다.
금표가 히보코족에 발견되고는 불측의 사태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나노쿠니 자체는 평화적으로 히보코족을 받아 들였다.이데라고 하는 사람이 배로 마중나가 있다.
위지왜인전에서는, 큐슈의 나노쿠니 이외에 또 하나, 그 외의 나라(멀리 있어 국명 밖에 모르는 나라)의 마지막에도 나노쿠니가 나온다.
이것은, 큐슈의 나노쿠니 세력은 다이와와 함께 나고야(둘째의 나노쿠니)?`노 이주한 것을 기술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나고야의 나노쿠니가, 그 후, 고대의 최종 패자가 된 텐무천황의 군사력이 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