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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国史記, 三国遺事の敍述は中国の史書, 高句麗墓誌銘は 解慕漱件 だけでなく他の部分でも少しの敍述の差がある.


しかし三国史記, 三国遺事の記録は概して新羅と高句麗側の記録の影響が大きい. 高句麗本紀の記録が百済側の記録に覆われた可能性は低く反対に百済本紀の神話と歴史が高句麗側記録の影響を受けた形態だ. 百済側の 百済三書を直接引用した日本の史書でも 解慕漱という名前は現われないから 解慕漱を百済 大姓八族の 解氏が創作したということは確かに根拠が不足な無理である主張と見える.


中国の史書で高句麗大武神王の名前を莫来」と言って, 三国史記では解朱留」 または無恤」と言っている. 三国史記が著述当時の創作なら解朱留」という名前は実存することができない名前だが, 19世紀発見された 広開土大王陵碑で 大武神王の名前が朱留」だったのが確認されるので三国史記高句麗本紀が A.D.1世紀の歴史までも受け継いでいたことが証明される. 三国史記, 三国遺事の記録で高句麗と百済王朝の 氏は元々 解氏だったが高句麗は 高, 百済は 扶余に変えて 追尊したことで, 三国史記初期高句麗王家の名前も 解憂, 解明, 解朱留 など 解に銘記されていることは相当信頼し得る部分だ.


「解慕漱」という字で現われる名前は三国史記, 三国遺事 から出る表現だが, その以前記録で現われる 神のような 神を表現している名前だ.


最初の記録である 論衡には 「天上にいる卵のような 気」(すなわち太陽を意味する),

高句麗墓誌銘では 「天帝-日」,

日本の史書では 「日神」

三国史記, 三国遺事では皆竝称されてそこに「解慕漱」という表現が追加になっている.

(また他の点があったら高句麗墓誌銘では 天帝=日神だが, 三国史記, 三国遺事ではなぜなのか 天帝の 太子になっている.)


以前スレッドで明らかにしたように 「hemosu」は韓国語で 「日の男」だ.

天帝日神と 解慕漱はただ 音読と 訓読の差というのが普通の 正説だ.

その外 「東明」という名前も太陽を意味することで, 「高麗」という名前も 重義的に, 太陽を意味するということが 衆論だ.





解慕漱はここまで,(離, gori)に対して言えば,

三国史記, 三国遺事 系列の記録だけでなく 隋書にも(離, gori)は 高麗と記録している.

(離, gori)= 高麗というのは勿論高句麗が剛性された以後に変質されたことである可能性が相当だが, 少なくても隋代には(離, gori)= 高麗という認識が存在したことと見える.


が 高麗ではなく夫余城の北に存在したという 説にしたら, 考古学籍で夫余の文化圏である西団山文化の北に存在した白金宝-漢書2期 文化圏を国で見る学説がある.


白金宝-漢書2期 文化やっぱり遼河文明の後継ぎで, 草原北方係の後継ぎではない. その地域に鮮卑と匈奴の文化が直接的に流入されたことは西団山文化が成立された以後だから国や東明は 鮮卑と匈奴とは何の関係がないようだ.





単于 ついて

分かっているが 単于, 〓孤塗単于は 天子を匈奴語で 音借したのだ. 中華 天子に対応する遊牧民族の 天子という意味だ.


中国三国時代, 夫余 だけでなく高句麗の王やっぱり呉で単于と呼称された事がある.

当時中国三国時代までの歴史で一番印象深い異民族帝国は匈奴で,

匈奴の滅亡で単于を自称する遊牧帝国がない時代だから,


北異民族国家の中で当時に大きい勢力である夫余と高句麗に単于 称号に優待して味方で引き入れて,

夫余と高句麗をお互いに争うようにしたかったことだけだ.


夫余と高句麗の王が匈奴族だったという意味ではない.


柔然, 突厥, モンゴル, 満洲はお互いに完全に別個の民族だが, 可汗を称したことも, 突厥, モンゴル, 満洲の王朝が 柔然の血続き的子孫だったからではない.




最後に高句麗の騎馬と地理的位置に中国征服王朝のイメージがあることはできるが詳細な分析比べて見ると性格で相当な差を見せる.

それに対しては多分後ほど


解氏와 夫餘 등

삼국사기, 三國遺事의 서술은 중국의 사서, 고구려 묘지명은 解慕漱件 뿐만 아니라 다른 부분에서도 약간의 서술의 차이가 있다.


하지만 삼국사기, 三國遺事의 기록은 대체로 신라와 고구려쪽의 기록의 영향이 크다. 고구려 본기의 기록이 백제측의 기록에 덮어졌을 가능성은 낮고 반대로 백제 본기의 신화와 역사가 고구려쪽 기록의 영향을 받은 형태이다. 백제쪽의 百濟三書를 직접 인용한 일본의 사서에서도 解慕漱라는 이름은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解慕漱를 백제 大姓八族의 解氏가 창작 했다는 것은 확실히 근거가 부족한 무리인 주장으로 보인다.


중국의 사서에서 고구려 大武神王의 이름을 莫來」라고 하고, 삼국사기에서는 解朱留」 또는 無恤」이라고 하고 있다. 삼국사기가 저술 당시의 창작이라면 解朱留」이라는 이름은 실존할 수 없는 이름이겠지만, 19세기 발견된 廣開土大王陵碑에서 大武神王의 이름이 朱留」였던 것이 확인되므로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가 A.D.1세기의 역사까지도 이어받고 있었던 것이 증명된다. 삼국사기, 三國遺事의 기록에서 고구려와 백제 왕조의 氏는 원래 解氏였으나 고구려는 高, 백제는 扶餘로 바꾸고 追尊한 것이고, 삼국사기 초기 고구려 왕가의 이름도 解憂, 解明, 解朱留 등 解로 명기되어 있는 것은 상당 신뢰할 수 있는 부분이다.


「解慕漱」라는 글자로 나타나는 이름은 삼국사기, 三國遺事 부터 나오는 표현이지만, 그 이전 기록에서 나타나는 神과 같은 神을 표현하고 있는 이름이다.


최초의 기록인 論衡에는 「천상에 있는 알과 같은 氣」(즉 태양을 의미한다), 

고구려 묘지명에서는 「天帝-日」,

일본의 사서에서는 「日神」

삼국사기, 三國遺事에서는 모두 병칭되며 거기에「解慕漱」라는 표현이 추가 되어있다. 

(또 다른 점이 있다면 고구려 묘지명에서는 天帝=日神이지만, 삼국사기, 三國遺事에서는 왜인지 天帝의 太子로 되어있다.)


이전 스레드에서 밝혔듯이 「hemosu」는 한국어로 「日의 남자」이다.

天帝日神과 解慕漱는 단지 音讀과 訓讀의 차이라는 것이 보통의 正說이다.

그 외 「東明」이라는 이름도 태양을 의미하는 것이고, 「高麗」라는 이름도 重義的으로, 태양을 의미한다는 것이 衆論이다.





解慕漱는 여기까지, (槀離, gori)에 대해서 말하면,

삼국사기, 三國遺事 계열의 기록 뿐만 아니라 隋書에도 (槀離, gori)는 高麗라고 기록하고 있다.

(槀離, gori)= 高麗라는 것은 물론 고구려가 강성해진 이후에 변질된 것일 가능성이 상당하지만, 적어도 隋代에는 (槀離, gori)= 高麗라는 인식이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가 高麗가 아니라 夫餘城의 북쪽에 존재했다는 說으로 한다면, 고고학적으로 夫餘의 문화권인 西團山文化의 북쪽에 존재했던 白金寶-漢書2期 문화권을 國으로 보는 학설이 있다.


白金寶-漢書2期 문화 역시 遼河문명의 후계로, 초원 북방계의 후계는 아니다. 그 지역에 鮮卑와 흉노의 문화가 직접적으로 유입된 것은 西團山文化가 성립된 이후이기 때문에 國이나 東明은 鮮卑와 흉노와는 별다른 관계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單于 관해서

알고 있겠지만 單于, 撑犂孤塗單于는 天子를 흉노어로 音借한 것이다. 중화 天子에 대응하는 유목민족의 天子라는 의미이다.


중국 삼국시대, 夫餘 뿐만 아니라 고구려의 왕 역시 吳에서 單于라고 호칭된 적이 있다.

당시 중국 삼국시대까지의 역사에서 가장 인상깊은 이민족 제국은 흉노이고,

흉노의 멸망으로 單于를 자칭하는 유목 제국이 없는 시대였기 때문에,


북쪽 이민족 국가 중 당시에 큰 세력인 夫餘와 고구려에 單于 칭호로 우대해서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고,

夫餘와 고구려를 서로 싸우게 하고 싶었던 것 뿐이다.


夫餘와 고구려의 왕이 흉노족이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柔然, 돌궐, 몽골, 만주는 서로 완전히 별개의 민족이지만, 可汗을 칭했던 것도, 돌궐, 몽골, 만주의 왕조가 柔然의 혈연적 후손이었기 때문은 아니다.




마지막으로 고구려의 기마와 지리적 위치로 중국 정복 왕조의 이미지가 있을 순 있지만 상세한 분석 비교해보면 성격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그것에 대해서는 아마 나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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