この文は、最後に記載したふたつのサイトを参照して作成した。
話を先に進める。
中国が把握しなかった東の南北ルートとして
1.朝鮮半島の東海岸沿いの高句麗~北陸(日本)ルート
半島東側には南北に山脈が伸びており、玄菟郡廃止後には中国側が疎くなった。
高句麗から日本には鉄器が運ばれ、日本から高句麗には塩が運ばれた。
このルートにより、北陸ヒボコ族は、現天皇につながる継体天皇をだし、製鉄が盛んな重要な豪族となった。
2.モンゴル~大興安嶺~夫余ルート
シベリア南部の白人系の青銅器文化であるタガール文化の青銅器が、このルートで夫余にもたらされた。
具体的には、触角式銅剣である。
このルートは、直接西に行けば早いものの、北に大きく迂回している。
おそらく、なんらかの理由で遼河文明との接触を避けたのだろう。
このルートでは、匈奴の領域を突っ切ることになるので、匈奴との接触により鉄文化は、直接夫余にもたらされたと考えられる。
なお、これらの地域では、中国文化の影響も大きかった。
さて、夫余国成立の直接の契機は、漢4郡の設置である。
これに対抗するために国としてのまとまっていった。
武帝が漢4郡を設置した理由は半島の鉄資源を中国に運ぶためであった。
武帝の時代の進んだ製鉄技術であるが、漢4郡との攻防のさいに徐々に習得していった。
さて、夫余の建国神話であるが、その前に夫余は思ったより東側に位置していたようである。
第二松花江当たりだ。高句麗の真北あたりだ。
その北側には、ノン河流域に白金宝文化から漢書二期文化が変化した平洋文化が存在する。
平洋文化は、鮮卑の領域となったようだ。
東明については、韓国側で、白金宝文化から来たとの説があるが、近すぎる気がする。
東明については、モンゴル~大興安嶺~夫余ルートの交易を担った氏族が貴族となり、やがて王になったのではないか。
なので北から来たことが重要である。
高麗からきたというのは、百済建国神話と混交したのではないか。(既往スレ参照)
朝鮮の独自の文明としてのアイデンティティは、中国を介さず、独自に北方の文化と接したという実態をともなったもののようだ。
触角式銅剣 中国北辺 前5~前4世紀
参照サイト
・https://rekihaku.repo.nii.ac.jp/record/1712/files/kenkyuhokoku_151_05.pdf
・https://kousin242.sakura.ne.jp/wordpress021/001-2/古代/日本の製鉄の歴史・動画/鉄を運ぶために生まれてきた海洋民族「倭人」/
이 문장은, 마지막에 기재한 두 사이트를 참조해 작성했다.
이야기를 먼저 진행한다.
중국이 파악하지 않았던 동쪽의 남북 루트로서
1.한반도의 동해안 가의 고구려 호쿠리쿠(일본) 루트
반도 동쪽에는 남북으로 산맥이 성장하고 있어 현토군 폐지 후에는 중국측이 서먹해졌다.
고구려로부터 일본에는 철기가 옮겨져 일본으로부터 고구려에는 소금이 옮겨졌다.
이 루트에 의해, 호쿠리쿠 히보코족은, 현천황으로 연결되는 게이타이 덴노를이고, 제철이 번성한 중요한 호족이 되었다.
2.몽골 대흥안령부여루트
시베리아 남부의 백인계의 청동기 문화인 타가르 문화의 청동기가, 이 루트로 부여에 가져와졌다.
구체적으로는, 촉각식 동검이다.
이 루트는, 직접서쪽으로 가면 빠르기는 하지만, 북쪽으로 크게 우회 하고 있다.
아마, 하등의 이유로 요하 문명과의 접촉을 피했을 것이다.
이 루트에서는, 흉노의 영역을 가로지르게 되므로, 흉노와의 접촉에 의해 철문화는, 직접부여에 가져와졌다고 생각할 수 있다.
덧붙여 이러한 지역에서는, 중국 문화의 영향도 컸다.
그런데, 부여국 성립의 직접적인 계기는, 한 4군의 설치이다.
이것에 대항하기 위해서 나라로서의 결정되고 갔다.
무제가 한 4군을 설치한 이유는 반도의 철자원을 중국에 옮기기 때문에 있었다.
무제의 시대가 진행된 제철 기술이지만, 한 4군과의 공방의 차이에 서서히 습득하며 갔다.
그런데, 부여의 건국신화이지만, 그 전에 부여는 생각했던 것보다 동쪽에 위치하고 있던 것 같다.
제2 송화강 당이다.고구려의 진북 근처다.
그 북측에는, 논 하류역에 백금보물 문화로부터 한서 2기 문화가 변화한 타이라 히로후미화가 존재한다.
타이라 히로후미화는, 선비의 영역이 된 것 같다.
토우메이에 대해서는, 한국측에서, 백금보물 문화나 들 왔다는 설이 있다가, 너무 가까울 것 같다.
토우메이에 대해서는, 몽골 대흥안령부여루트의 교역을 담당한 씨족이 귀족이 되어, 이윽고 왕이 된 것은 아닌가.
그래서 북쪽에서 왔던 것이 중요하다.
고려에서 왔다는 것은, (쿠다라)백제 건국신화와 혼합한 것은 아닌가.(기왕 스레 참조)
조선의 독자적인 문명으로서의 아이덴티티는, 중국을 개좌도, 독자적으로 북방의 문화와 접했다고 하는 실태를 이라고도 되었지만 같다.
촉각식 동검 중국 북변앞 5전 4 세기
참조 사이트
·https://rekihaku.repo.nii.ac.jp/record/1712/files/kenkyuhokoku_151_05.pdf
·https://kousin242.sakura.ne.jp/wordpress021/001-2/고대/일본의 제철의 역사·동영상/철을 옮기기 위해서 태어난 해양 민족 「왜인」/